[진정자의 이란전쟁 이야기 | 진리·정의·자유] 보름간 휴전 합의는 과연 지켜질까

  • — 호르무즈 해협과 핵 원자로의 숨은 비밀

전쟁은 멈춘 듯 보이나 실제로는 더 정교해진다. 총성이 잦아든 자리에서 말과 문장, 해석과 의도가 서로를 겨눈다. 이번 미국과 이란 간 ‘보름간 휴전 합의’ 역시 겉으로는 긴장 완화의 신호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더 치열한 힘겨루기의 서막에 가깝다. 휴전이 시작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양측이 서로를 향해 합의 위반을 주장하고, 호르무즈 해협의 개방 여부를 놓고 엇갈린 메시지를 내놓는 장면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은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합의를 깨면 대가가 따른다는 것이다. 협상 대표를 맡은 부통령은 휴전과 협상은 동시에 진행되는 구조이며, 이란이 조건을 지키지 않을 경우 미국 역시 다른 선택지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전쟁 재개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반면 이란은 전혀 다른 논리를 내세운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은 휴전 합의 위반이며,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호르무즈 해협 재봉쇄까지도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같은 합의를 두고도 서로 다른 현실을 해석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의 핵심은 ‘휴전의 범위’에 있다. 미국은 이번 휴전이 이란과의 직접 충돌에 국한된 것으로 해석한다. 레바논, 특히 헤즈볼라와 관련된 전선은 별개의 문제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란은 자신을 중심으로 한 ‘저항 축’ 전체를 하나의 전략 공간으로 본다. 따라서 레바논에서 벌어지는 군사 행동 역시 휴전의 적용 대상이라는 주장이다. 이 차이는 단순한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전쟁을 바라보는 구조적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이 지점에서 이란을 단순한 국가로 이해하는 것은 부족하다. 이란은 스스로를 5천 년 문명의 계승자로 인식하는 국가다. 엘람 문명에서 시작해 아케메네스 제국, 파르티아와 사산 왕조를 거치며 형성된 역사적 기억은 단절되지 않고 오늘의 외교와 전략 속에 이어져 있다. 그 핵심에는 하나의 일관된 원리가 자리 잡고 있다. 곧 ‘길의 지배’다.

페르시아는 역사적으로 영토보다 통로를 중시했다. 아케메네스 제국의 ‘왕의 길’은 단순한 도로가 아니라 제국의 혈관이었다. 그 길을 따라 군대가 이동했고, 세금이 걷혔으며, 정보가 오갔다. 이후 실크로드 시대에 페르시아는 동서 교역의 중간 지점에서 가격과 정보를 통제하며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모든 것을 생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흐름을 지배했다. 그리고 흐름을 지배하는 자가 결국 질서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체득했다.

오늘의 호르무즈 해협은 그 연장선에 있다. 세계 에너지의 상당 부분이 이 좁은 해협을 통과한다. 이란이 이곳을 완전히 봉쇄하지 않더라도 봉쇄 가능성만으로도 국제 유가와 금융시장은 크게 흔들린다. 이는 과거 실크로드를 통해 상대를 압박하던 전략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전면전 없이도 세계 경제를 흔들 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이란이 쥐고 있는 전략 자산이다.

그러나 이 문제의 본질은 단순한 해상 통로에 그치지 않는다. 그 아래에는 핵 문제라는 더 깊은 층위가 놓여 있다. 미국이 진정으로 우려하는 것은 해협의 통제력이 아니라 이란의 핵 개발 능력이다. 이란은 우라늄 농축이 자국의 권리라고 주장하지만, 미국은 권리보다 실제 행동을 문제 삼는다. 이 충돌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질서의 문제이며, 규범의 문제이자 힘의 문제다. 핵 능력을 확보한 이란은 더 이상 지역 강국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 전략 균형을 흔드는 변수로 부상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휴전은 일종의 시간 확보 전략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손자병법』은 “兵者, 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라 하였다. 전쟁은 국가의 존망이 달린 일이므로 깊이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上兵伐謀, 其次伐交, 其次伐兵”이라 하여 싸우지 않고 상대의 계략을 꺾는 것이 최상이라 하였다. 지금의 미국과 이란은 바로 이 단계에 서 있다. 직접 충돌을 피하면서 협상을 통해 상대의 의도를 시험하고, 동시에 자신의 지렛대를 극대화하려 한다.

노자의 『도덕경』 또한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知足者富”라 하여 만족할 줄 아는 자가 부유하다고 했으며, “大國者下流”라 하여 큰 나라는 낮은 곳에 머물러야 한다고 했다. 이란의 전략은 겉으로는 절제와 인내에 기반한다. 전면전을 피하고 긴장을 유지하며 상대가 소모되기를 기다린다. 손자의 말대로 “以逸待勞”의 형국이다. 그러나 이러한 절제는 단순한 소극성이 아니라 계산된 선택이다. 필요할 때는 해협을 카드로 꺼내고, 필요할 때는 협상 테이블로 이동한다.

그렇다면 이번 휴전은 유지될 것인가. 단기적으로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양측 모두 전면전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동에서의 부담을 줄이려 하고, 이란 역시 경제와 제재의 현실을 고려할 때 전면 충돌은 부담스럽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매우 불안정하다. 휴전의 범위에 대한 근본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언제든지 작은 충돌이 전체 구도를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레바논 전선은 가장 큰 변수다.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겨냥한 공격을 지속할 경우 이란은 이를 묵과하기 어렵다. 반대로 미국은 이를 휴전 위반으로 보지 않는다. 이 간극은 협상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될 것이다. 여기에 호르무즈 해협과 핵 문제까지 결합되면 협상은 단순한 휴전 연장을 넘어 질서 재편의 문제로 확장된다.

한국의 입장에서 이 사안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은 곧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산업 비용과 민생 부담으로 직결된다. 환율과 금융시장 역시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우리는 이 문제를 외교적 사건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경제 구조와 직결된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결국 이번 사태의 본질은 분명하다. 이는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라 통로를 둘러싼 전쟁이며, 질서를 둘러싼 전쟁이다. 누가 길을 열고 누가 길을 막는가, 누가 흐름을 통제하고 누가 그 흐름에 의존하는가의 문제다. 이란은 오랜 역사 속에서 길을 통해 세계를 상대해 왔고, 오늘도 그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는 이미 변했다. 공급망은 다변화되었고, 정보는 실시간으로 공유되며, 질서는 다극화되었다.

따라서 이란의 힘은 분명하지만 절대적이지는 않다. 과거의 성공 경험이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제국의 기억은 자산이지만, 현실의 제약을 무시하는 순간 그것은 오히려 판단을 흐리게 하는 요인이 된다. 『도덕경』의 또 다른 구절 “知止不殆”는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고 일러준다. 전략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현재의 조건 위에서 완성된다.

보름간의 휴전은 짧은 숨 고르기에 불과할 수 있다. 그 뒤에는 더 큰 협상과 더 깊은 갈등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여전히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과연 누가 이 시대의 ‘길’을 지배할 것인가.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흐름은 이어진다. 그 흐름을 읽는 자만이 다음 질서를 설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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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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