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JP 데스크 칼럼] '자유의 바다' 이후 — 호르무즈가 바꾼 질서와 에너지 빈국의 생존 공식

바다는 더 이상 ‘자유롭다’고 말하기 어려워졌다. 

중동 전쟁이 촉발한 충격은 단순한 에너지 가격의 문제가 아니다. 한 세기 넘게 유지돼 온 국제 교역의 전제, 즉 ‘공해에서의 자유항행’이라는 질서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그 균열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폭 50㎞ 남짓한 이 해협은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의 약 20%가 통과하는 핵심 통로였다. 전쟁 이전에는 하루 100척이 넘는 선박이 이곳을 지났고, 글로벌 공급망은 이 전제를 기반으로 효율성을 극대화해왔다. 그러나 지금의 호르무즈는 전혀 다른 공간이다. 

선박 통행은 급격히 줄었고, 통과 자체가 조건부로 바뀌었다. 하루 10여 척 수준으로 제한된 운항은 사전 승인과 지정된 항로를 따라야 한다. 기존의 항로는 ‘위험 구역’으로 분류되고, 선박들은 이란 라라크섬 인근으로 우회하도록 요구받는다. 사실상 해협의 ‘운영 방식’이 바뀐 것이다. 

이 변화의 본질은 단순한 통제 강화가 아니다. 질서의 성격이 ‘개방’에서 ‘선별’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누가 통과할 수 있는지, 어떤 조건에서 이동이 가능한지는 더 이상 국제 규범이나 시장 논리로 결정되지 않는다. 정치적 관계, 지정학적 이해관계, 그리고 군사적 통제력이 결합된 새로운 기준이 작동하고 있다. 일종의 ‘해상 톨게이트’가 현실화되는 흐름이다. 

이러한 변화는 호르무즈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미 세계 주요 해상 루트 전반에서 유사한 현상이 관측되고 있다.
 

홍해에서는 후티 반군의 공격 이후 항로가 사실상 재편됐고, 흑해에서는 전쟁으로 곡물 수송이 상시적인 위험에 노출돼 있다. 남중국해 역시 해양 주권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면서 ‘자유항행’ 원칙이 점점 더 정치화되고 있다. 바다는 더 이상 중립적 공간이 아니라, 힘이 작동하는 전략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 변화는 에너지 시장의 성격 자체를 바꾼다. 

과거 에너지는 ‘가격’의 문제였다. 가장 싸고 안정적인 공급선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접근 가능성’이 더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통과할 수 있는가, 제때 도착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가가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이 변화의 충격은 에너지 빈국에 집중된다. 

한국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원유 수입의 약 7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정성은 곧바로 국가 경제의 리스크로 연결된다. 실제로 이번 사태에서도 약 2,000척의 선박이 해협 인근에 묶였고, 이 중 한국 관련 선박과 유조선도 포함되면서 공급망 취약성이 현실로 드러났다. 

더 큰 문제는 ‘대체의 한계’다. 

정부와 기업은 이미 대응에 나섰다. 카자흐스탄,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공급선을 다변화하려는 시도가 그것이다. 특히 오만은 호르무즈를 통과하지 않고 아라비아해로 직접 연결되는 두큼(Duqm), 소하르(Sohar) 항만을 통해 수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전략적 가치가 부각되고 있다. 카자흐스탄 역시 파이프라인을 통해 러시아 노보로시스크 항을 거쳐 흑해로 연결되는 우회 경로를 제공한다. 

실제로 국내 정유업체는 카자흐스탄산 원유를 도입하며 이러한 경로를 시험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대안은 어디까지나 ‘부분적 해법’에 그친다. 물량이 제한적일 뿐 아니라, 운송 거리가 길어지고 비용이 상승하며, 다른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에 다시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즉, 기존 질서를 대체할 수 있는 완전한 해법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더 중요한 변화가 드러난다.

에너지가 다시 ‘전략 자산’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유항행이 보장되던 시대에는 에너지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었다. 그러나 해협이 통제되고 통행이 조건화되는 순간, 에너지는 권력과 안보의 문제로 재편된다. 통행료, 보험료, 우회 비용이 누적되면서 가격 구조 자체가 상승 압력을 받게 되고, 이는 곧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진다. 

결국 지금의 변화는 단순한 공급망 교란이 아니라, ‘효율 중심의 세계’에서 ‘안전 중심의 세계’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환 속에서 에너지 빈국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점점 더 복합적이 될 수밖에 없다. 

첫째, 수입선 다변화는 기본 조건이 됐다. 특정 지역 의존도를 낮추고, 서로 다른 지정학적 리스크를 가진 공급선을 병행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둘째, 항로의 다변화와 물류 전략의 재설계가 요구된다.  홍해, 아프리카 희망봉 우회 등 비용이 증가하더라도 안정성을 확보하는 경로를 병행해야 한다. 

셋째, 국내 에너지 구조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원전 가동률 조정, 재생에너지 확대, 전략 비축 강화 등 공급 외부가 아닌 내부 구조의 안정성이 중요해지고 있다. 

넷째, 에너지 안보를 외교·안보 전략과 통합해야 한다. 단순한 구매 계약이 아니라, 국가 간 관계 속에서 에너지 접근성을 확보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전쟁이 종료되더라도, 이미 한 번 깨진 규칙은 완전히 복원되기 어렵다. 항로는 재편됐고, 위험 프리미엄은 가격에 반영됐으며, 각국은 자국 중심의 에너지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더 이상 단순한 통로가 아니다. 그곳은 세계 질서의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자유의 바다’가 전제였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이제 바다는 선택과 비용, 그리고 힘의 균형 위에서 작동한다.

에너지 빈국의 과제는 분명하다. 변화를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맞는 생존 공식을 설계하는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 지도와 3D 프린팅된 송유관 모형이 함께 표현된 일러스트레이션 2026년 3월 23일 촬영된 자료 사진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 지도와 3D 프린팅된 송유관 모형이 함께 표현된 일러스트레이션. 2026년 3월 23일 촬영된 자료 사진. (사진=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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