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성에 균열이 날 것인가?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비정규직 고용불안정성의 보상”을 반복해서 촉구하면서 적어도 공공부문에서는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가 조만간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노동시장은 흔히 ‘중층적 이중구조’로 분단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성별, 기업 규모별, 학력별 이중구조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고용형태별 이중구조가 다시 겹쳐 있는 구조이다.
한국 사회에서 산발적으로 존재하던 비정규직이 일반화된 것은 1998년 외환위기가 직접적인 계기였다. 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당시 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시행된 대대적인 신자유주의 ‘개혁’의 일환이었던 노동시장 유연화의 핵심내용이었다. 평생고용(평생직장)이 당연시되던 당시의 고용관행은 ‘노동시장의 경직성’으로 폄하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비정규직 도입의 취지는 기업이 경영상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고용규모를 확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고용규모를 확대하거나 축소할 필요에 대응한다는 것이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홍보되었다. 외환위기 직후의 상황에서는 그럴듯한 명분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같은 일자리에서 계속 고용, 상시고용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다시 비정규직으로 대체함으로써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확산되자 비정규직 철폐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비정규직이 징검다리가 아니라 ‘함정’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의 접근방식은 비정규직 제도의 당면한 폐해가 고용기한보다 열악한 처우에 있음을 짚었다는 점에서 실용적인 적확한 진단이라 할 수 있다. 정규직 전환은 고용불안과 처우개선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겠지만 그동안 무기계약직이라는 ‘중규직’의 탄생이 보여주듯이 현실적으로 지난하므로 처우개선을 통해 실질적인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당초 비정규직 도입의 의도가 결과적으로 ‘해고의 자유’보다 ‘새로운 저임금 부문의 창설’에 있었음이 확연해진 이상 비정규직을 축소 내지 해소한다는 목표 역시 차별철폐를 목표로 비정규직 처우개선에 나서는 것이 실질적으로 효과적인 대안일 것이다. 고용기한이 아니라 임금차별을 시정하는 데 노력이 집중되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제안은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에서 일종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비정규직의 불안정 상태에 저임금이 지급되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이중 차별’에 해당한다는 진단이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비정규직에게는 정규직보다 오히려 더 높은 임금이 지급되어야 한다는 발상이다. 불안정성의 상태에 대해서는 고임금으로 물질적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논리이다. 임금을 결정할 때 노동의 결과뿐만 아니라 노동이 이루어지는 여건, 노동자의 생활상태에 대한 고려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포괄적인 논리이다. 사용자 관점뿐만 아니라 노동자 관점도 반영되는 임금결정 방식이다. 사용자에게는 비용이지만 노동자에게는 소득이라는 임금의 이중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논리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불안정성 보상” 방안은 비정규직 처우개선에서 공정의 가치를 더하였으므로 이제는 ‘경제적’ 타당성의 논리에 입각하여 처우개선의 지속가능성까지 보강할 필요가 있다. 고용불안정에 대한 보상이라는 사회적 명분 역시 처우개선의 강력한 명분이 될 수 있지만, 근무하는 동안 당연히 기대되는 비정규직의 생산성 향상에 대한 시장소득 보상의 논리가 보강된다면 더욱 튼튼한 제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시장소득 향상의 형태로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는 제도가 독일에서 오래 전부터 시행되고 있는 “사회적 직무급제”(한국노동연구원 박명준 박사)이다. 이는 정부가 노조와 직접 교섭을 통해 매년 ‘보수체계표’를 작성함으로써 공공부문에서도 비정규직을 ‘숙련노동’으로 양성하고 대우하는 제도이다. 이 표는 횡축에서는 경력 연수에 따라 임금이 상승하고, 종축에서는 학력(학위), 자격증 등을 기준으로 노동자의 생산성을 평가함으로써 누구든지 자신의 예상임금을 표에서 찾을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작성된다. 그러므로 ‘생산성 임금체계’라 불릴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 경우 정부가 노동자와 노동계약을 직접 체결하게 되므로 노동자들의 지위가 정규직 공무원이 된다는 사실이 증원에 경직적인 정부부문에서 이 체계를 도입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비정규직 제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면 중간사업자와의 계약에서 ‘중간착취’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예산 증액 없이 즉각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이 바로 중간착취 해소이다. 중간착취로 인해 공공부문에서 초단기 노동자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것은 모든 분야에서 노동자보다 사업자를 우선 배려하는 정부의 오랜 관행이 빚은 참상이다.
생산성 임금체계는 노동자에게 자신의 노력과 역량에 따라 임금을 받는다는 자존감을 높여주는 비금전적 보상을 수반할 것이다. 일자리의 잦은 변경으로 인해 묶여 있던 비숙련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됨으로써 경제 전반의 숙련도가 높아질 수 있다. 노동조직 내에서 지휘체계를 자발적으로 구성하는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위한 공공부문의 선도는 당연히 민간부문에게 모범을 보여주는 효과도 가져올 것이다. 끝으로 비정규직 처우개선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자극하는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 비정규직 처우개선으로 임금격차가 작아진다면 사용자 입장에서도 ‘해고의 자유’가 무색해질 만큼 비정규직 고용형태가 오히려 단점이 되는 반전이 있을 수 있다. 정규직 전환을 통해 고용안정에 따른 생산성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생산성 임금체계를 직무별로 갖추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과 시행착오가 불가피할 것이다. 그것을 도입하는데 사회적 합의 역시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지속가능한 비정규직 처우개선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비정규직이 사실상 최저임금에 묶여 있는 현상을 유지하면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완화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다시 이 이중구조를 타파하지 않고서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완화도 기대할 수 없으며, 결국 ‘불평등을 완화하지 않고서는 경제성장을 논하지 말라’는 OECD, IMF 등의 해묵은 진단에 귀를 기울일 틈도 없을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노동시장의 ‘정상화’를 향한 직행버스라면 차별 해소는 완행버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 처우개선은 소득향상으로 이어져 높은 한계소비성향 덕분에 내수활성화에 기반한 경제성장에도 기여할 것이다. 국민경제의 성장과 주권자의 생활수준의 향상이 합치되는 경제의 선순환에 물꼬를 트는 ‘정상화’ 효과 역시 기대할 수 있다.
김호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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