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당국이 중국 2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화훙(華虹)에 대한 장비 수출을 차단하며 인공지능(AI) 칩 기술 경쟁에서 견제 수위를 높이고 있다. 5월 예정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을 앞둔 민감한 시점에 나온 움직임이다.
화훙 첨단 반도체공정 ‘경계’…美 장비 수출 봉쇄
28일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최근 램리서치,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KLA 등 자국 장비업체들에 화훙으로 향하는 특정 장비의 선적을 중단하라는 서한을 발송했다.
해당 서한에는 화훙이 중국 내에서 가장 정교한 칩을 생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 두 제조 시설을 대상으로 반도체 장비와 기타 재료 수출을 규제하는 내용이 담겼다. 로이터는 이를 두고 "중국의 첨단 칩 개발 속도를 늦추기 위한 미국의 최신 조치"이자 "AI 및 기타 첨단 칩 제조 분야에서 미국의 기술적 우위를 지키려는 정책의 연장선"이라고 평가했다.
이 같은 조치의 배경에는 화훙의 기술 진전이 자리 잡고 있다. 화훙은 중국 최대 파운드리인 SMIC에 이어 두 번째 규모 업체로, 최근 AI 반도체 등 첨단 칩 제조 기술을 개발했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특히 계열사인 화리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상하이 공장에서 7나노(㎚) 공정 도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중국에서 7나노 공정을 구현할 수 있는 기업은 SMIC가 사실상 유일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화훙까지 첨단 공정 상용화에 성공할 경우, 중국의 반도체 자립 속도가 크게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미국의 이번 조치로 이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화웨이가 SMIC를 통해 생산해온 AI 칩 물량 일부를 화훙으로 이전하기 위해 협력 중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美 수출통제 입법 강화…대중 견제 ‘제도화’
이번 조치는 미국의 대중(對中) 기술 견제 정책의 연장선에 있다. 미국은 그동안 국가 안보를 이유로 AI와 첨단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으로의 기술 및 장비 수출을 지속적으로 통제해왔다. 최근에는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가 동맹국과 공조해 대(對)중국 기술 수출 통제를 강화하는 ‘하드웨어 기술 통제 다자 동조법(MATCH법)'을 포함한 법안 패키지를 통과시키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특히 오는 5월로 예상되는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일부 대중 수출 규제를 완화할 가능성을 시사하자 의회가 이를 견제하고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2018년 이후 수출 통제 정책을 개편하려는 가장 중요한 입법 시도”라며 행정부의 소극적 대응에 대한 의회의 불만이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중 압박은 반도체에만 그치지 않는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 수십 명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국 자동차 기업의 미국 내 생산과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기존 관세 유지와 함께 중국 업체의 현지 생산시설 설립 금지도 요구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중국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짓고 고용을 창출한다면 진출을 허용할 수 있다”고 밝힌 이후, 미·중 정상회담에서 중국 전기차 업체의 미국 시장 진입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과 맞물린 조치다.
'마누스 사태'까지...AI 첨단기술 정상회담 의제로?
이처럼 반도체와 자동차를 포함한 첨단 기술 산업 전반에서 긴장이 고조되면서, 5월 미중 정상회담 역시 협력보다는 경쟁 의제가 중심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중국계 AI 스타트업 마누스를 둘러싼 갈등도 이러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빅테크 메타는 지난해 12월 약 20억 달러(약 2조9700억원)에 마누스를 인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중국 정부는 해당 거래가 기술 수출 관리 대상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검토하겠다며 제동을 걸고 지난 27일 최종적으로 투자 금지 결정을 내렸다. AI 인재와 기술 자산의 해외 이전을 막으려는 중국의 본격적인 움직임으로 풀이됐다.
다만 일각에서는 양국 정상이 첨단기술 갈등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보잉 항공기 구매나 농산물 거래 등 비교적 실무적인 사안에 집중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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