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논쟁에서 두 전문가의 발언이 눈길을 끈다. 한 사람은 회사를 “장기 번영 공동체”라고 말했다. 또 한 사람은 “파업은 국가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와 신제윤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의 말이다. 표현은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삼성전자를 단순한 기업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쪽은 공동체라고 했고, 다른 한쪽은 국가 경제의 기반이라고 했다. 이 두 표현 사이에는 지금 한국 사회가 삼성전자라는 회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가 그대로 담겨 있다.
삼성전자 직원들 입장에서 불만이 커지는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반도체 산업은 극한 경쟁 산업이다. 기술 변화 속도는 빨라졌고 업무 강도는 훨씬 세졌다. 특히 AI 반도체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엔비디아, TSMC, SK하이닉스와의 싸움은 사실상 전쟁 수준이 됐다. 그런데 회사가 사상 최대 수준 이익을 내면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 성과는 누가 만들었는가.”
노조의 논리는 여기서 출발한다. 성과를 만든 주체가 노동자라면 과실 역시 더 적극적으로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한국 사회가 단순 임금보다 “성과 공유” 개념을 훨씬 중요하게 보기 시작한 것도 이런 흐름과 연결된다. 과거에는 연봉 액수 자체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회사가 크게 성장했는데 왜 직원 몫은 제한적이냐”는 질문이 더 강해졌다.
특히 SK하이닉스 사례는 삼성전자 직원들에게 강한 비교 대상이 됐다. HBM 시장에서 급부상한 SK하이닉스는 파격적인 성과 보상 체계로 주목받았다. 삼성전자 직원들 입장에서는 “왜 우리는 안 되느냐”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신장섭 교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그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만 하는 회사가 아니라 파운드리, 시스템반도체, 모바일, 가전까지 가진 복합 기업이라는 것이다. 메모리 중심 구조인 SK하이닉스와는 사업 구조 자체가 다르다고 봤다.
이 발언은 단순한 산업 분석이 아니다. 사실상 “성과급은 기업 구조와 장기 전략까지 함께 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신 교수는 특히 “장기 번영 공동체”라는 표현을 썼다. 이 말은 이번 논쟁의 핵심을 건드린다. 기업은 올해 돈 벌어서 바로 나눠 갖는 조직이 아니라는 의미다. 회사는 장기적으로 살아남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반도체 산업은 대표적인 장치 산업이다. 공장 하나 짓는 데 수십조 원이 들어간다. 한번 투자 타이밍을 놓치면 시장 지위를 순식간에 잃는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경쟁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신 교수는 2010년대부터 이어진 지속적 투자와 연구개발이 지금의 성과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오늘의 이익은 현재 직원들만의 성과가 아니라 과거 투자와 미래 투자 가능성이 함께 만든 결과라는 의미다.
그래서 그는 보상을 두 가지로 나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나는 과거 성과에 대한 보상이다. 실적이 좋으면 더 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미래 성과를 위한 보상이다. 이 부분은 단순 현금이 아니라 투자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RSU, 즉 양도제한조건부주식 같은 장기 주식 보상이다. 일정 기간 팔 수 없는 주식을 지급하면 직원들도 회사의 장기 가치 상승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는 논리다. 신 교수는 최소 5년 이상 장기 보유 제한이 필요하다고까지 말했다.
물론 여기에는 반론도 존재한다. “노동자는 경영권도 없는데 왜 경영 실패 위험까지 함께 떠안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충분히 가능한 비판이다. 실제로 일반 직원은 회사의 대규모 투자나 전략 방향을 결정할 권한이 거의 없다. 그런데 장기 주식 보상 구조가 확대되면 경영진의 판단 실패나 외부 경기 악화에 따른 주가 하락 위험까지 함께 부담하게 된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스톡옵션 문화가 강하다. 하지만 그 전제에는 높은 기본 연봉과 자유로운 노동 이동, 강한 자본시장 문화가 존재한다. 반면 한국은 아직 노동자 참여 구조가 제한적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장기 공동체”라는 말만으로 위험 분담을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신 교수의 문제의식을 가볍게 볼 수도 없다. 그의 핵심은 “노동자에게 위험을 떠넘기자”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노동과 자본이 완전히 분리된 구조 자체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문제 제기에 가깝다.
생각해보면 지금 한국 사회는 기업 이익이 발생하면 “함께 나누자”고 말하지만, 손실이 발생하면 대부분 주주가 마지막 책임을 진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침체로 실적이 급감했던 시기를 떠올려보자. 직원 임금이 대폭 삭감되지는 않았다. 협력업체가 이미 받은 돈을 토해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주가는 급락했고 손실은 주주가 감당했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잔여청구권’이다. 기업은 임금과 납품대금, 이자와 세금을 먼저 지급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는 이익을 가져가는 존재가 주주다. 반대로 손실이 발생했을 때 가장 마지막까지 손실을 떠안는 존재 역시 주주다. 신 교수의 장기 공동체론은 결국 이 구조를 함께 보자는 이야기다. 회사가 잘될 때만 공동체가 아니라, 어려울 때도 함께 책임을 나누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제윤 의장의 발언 역시 같은 문제의식 위에 있다. 그는 사내 게시글에서 “파업이 시작되면 노사 모두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국가 기반 산업인 반도체 사업은 타이밍과 고객 신뢰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반도체 산업은 단순 제조업이 아니다. 한번 고객 신뢰가 흔들리면 공급망 자체가 재편될 수 있다. 특히 지금 AI 반도체 경쟁은 속도전이다. 고객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개발 일정이 밀리고 생산 차질이 발생하면 글로벌 고객은 곧바로 경쟁사로 이동할 수 있다.
신 의장이 “국가 경제에도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삼성전자는 이미 한 기업의 범위를 넘어섰다. 수출과 세수, 주식시장과 협력업체 생태계 전체와 연결된 산업 플랫폼이 됐다. 실제로 삼성전자 실적은 원·달러 환율과 증시, 연기금 수익률까지 흔든다. 삼성전자가 흔들리면 한국 경제 전체가 충격을 받는 구조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나온다.
“국가 경제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노동자 요구를 억눌러도 되는가.”
이 질문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한국 사회는 종종 국가 경제 논리를 노동자 희생 요구로 연결시켜 왔다. “나라가 어려우니 참아라”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갈등을 잠재울 뿐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결국 이번 논쟁은 어느 한쪽이 완전히 틀렸다고 보기 어렵다. 노조는 성과를 낸 만큼 더 정당한 보상을 요구한다. 회사와 일부 경제학자들은 단기 현금 중심 구조가 장기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양쪽 모두 일정 부분 맞는 말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한국 사회가 아직 “장기 성과를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현금 보상과 장기 주식 보상을 함께 사용한다. 엔비디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은 핵심 인재에게 회사 성장의 과실을 장기적으로 공유한다. 회사가 성장하면 직원도 함께 부자가 된다.
하지만 동시에 미국은 노동 이동도 훨씬 자유롭고 자본시장 문화도 다르다. 한국 기업이 이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쉽지 않다. 결국 한국형 모델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번 삼성전자 논쟁은 단순한 임금 협상이 아니다.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노동은 어디까지 공동체 구성원인가.
주주는 왜 마지막 이익을 가져가는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이 질문들이 모두 동시에 튀어나오고 있다.
신장섭 교수는 “장기 공동체”를 말했다. 신제윤 의장은 “국가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말했다. 둘의 표현은 달랐지만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삼성전자를 단기 분배의 장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노동자의 요구가 가벼운 것도 아니다. 반도체 경쟁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회사 미래를 위해 참으라”는 말만 반복해서는 지속 가능한 조직이 될 수 없다.
결국 필요한 것은 균형이다. 단기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장기 경쟁력을 유지하는 구조. 노동의 기여를 인정하면서도 미래 투자 여력을 지키는 구조. 주주의 위험 부담을 인정하면서도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 구조다.
지금 삼성전자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결국 한국 자본주의 전체가 어디로 갈 것인가를 묻고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단순한 성과급 숫자보다 훨씬 크고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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