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이란전쟁 이야기 | 진리·정의·자유] 항해사 출신 정태순 장금상선 회장의 호르무즈 돌파 : 피격된 HMM 나무호와 갈린 한국 해운의 운명

중동의 바다가 다시 불타고 있다. 그러나 이번 불길은 단지 이란과 미국, 혹은 이스라엘 사이의 군사 충돌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세계 경제의 혈관을 태우는 불길이며, 산업문명의 심장을 흔드는 충격이다. 세계 원유 수송량의 5분의 1이 지나가는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바닷길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 자본주의 문명의 대동맥이다. 이곳에서 총성이 울리면 뉴욕 증시가 흔들리고, 서울의 환율이 요동치며, 유럽의 공장 가동률과 중국의 제조업 원가까지 영향을 받는다. 

세계는 이미 AI와 반도체, 금융 알고리즘으로 연결된 시대에 들어섰지만, 문명의 가장 기초적인 에너지 흐름은 여전히 바다와 유조선 위에 놓여 있다.

바로 그 호르무즈 해협에서 최근 한국 해운업계의 운명을 갈라놓는 두 개의 장면이 동시에 펼쳐졌다. 하나는 장금상선의 초대형 유조선(VLCC) ‘바스라 에너지’가 위치추적장치(AIS)를 끈 채 위험한 해협을 통과해 원유 200만 배럴을 안전하게 이송한 사건이다. 다른 하나는 HMM 소속 나무호가 미상 비행체의 공격을 받아 선체가 뚫리고 화재까지 발생한 사건이다. 

같은 바다였다. 같은 전쟁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극명하게 달랐다.
이 차이는 단순한 우연이나 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해운이라는 산업을 바라보는 철학의 차이이며, 리스크를 읽는 능력의 차이였다. 더 깊이 들어가면 인간과 조직, 그리고 경영의 본질에 대한 이해의 차이였다.

호르무즈 해협은 원래부터 인간 문명의 욕망이 부딪히는 장소였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 시절부터 이곳은 실크로드와 인도양 무역을 연결하는 핵심 관문이었다. 페르시아인들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길목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DNA에는 게이트키핑 전략이 깊숙이 새겨져 있다. 미국은 압도적인 군사력과 항공모함 전단을 가지고 있지만, 이란은 좁은 해협과 비대칭 전력을 이용한다. 드론과 기뢰, 소형 고속정과 미사일, 전자전과 심리전으로 상대를 피로하게 만든다. 정면승부가 아니라 긴장과 공포를 이용하는 전략이다.

손자병법은 “병자는 국지대사(兵者 國之大事)”라고 했다. 전쟁은 국가의 중대한 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손자는 동시에 “병자는 궤도야(兵者 詭道也)”라고도 했다. 전쟁은 속임수의 길이라는 의미다. 이란은 바로 이 궤도의 전략을 사용한다. 거대한 미국 함대를 정면으로 상대하지 않는다. 대신 선박 한 척을 공격하고, 드론 하나를 날리고, 보험료를 폭등시키고, 시장에 공포를 퍼뜨린다. 그러면 세계 금융시장이 먼저 흔들린다. 그것이 바로 호르무즈 전쟁의 본질이다.

이번 나무호 피격 사건 역시 단순한 해상 사고가 아니다. 선체 하단 폭 5m, 깊이 7m 규모의 파공은 사실상 군사 공격 수준이었다. 정부 조사 결과도 미상 비행체의 외부 타격으로 결론 났다. 호르무즈 해협 안쪽에 대기 중인 한국 선박 26척과 한국인 선원 158명은 지금 극도의 긴장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두 달 넘게 사실상 바다에 갇혀 있는 상황이다. 선원들은 매일 레이더를 확인하고, 밤이면 드론 소리에 긴장하며, 언제 다시 공격이 올지 모른 채 대기한다. 바다는 원래 외로운 공간이지만 전쟁의 바다는 인간 정신을 갉아먹는다.

그런데 바로 이 와중에 장금상선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장금상선의 ‘바스라 에너지’는 UAE ADNOC 터미널에서 원유를 선적한 뒤 위치추적기를 끄고 호르무즈를 통과했다. 그리고 결국 푸자이라 터미널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이 장면은 세계 해운업계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왜냐하면 지금 호르무즈를 지나가는 일 자체가 사실상 목숨을 건 항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장금상선의 정태순 회장이 항해사 출신이라는 점이다. 바다를 몸으로 경험한 사람은 숫자만 보는 경영자와 다르다. 파도의 흐름과 조류, 선박의 무게 중심과 선원의 공포를 이해한다. 위험 해역의 공기를 안다. 선장이 밤에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알고, 폭풍 속에서 배가 어떻게 흔들리는지도 안다. 그것은 책상 위 데이터로 배울 수 없는 감각이다.

정태순 회장은 최근 수년 동안 공격적으로 VLCC를 확보했다. 업계에서는 “과도한 베팅”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가장 중요한 자산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유조선이 아니었다. “움직일 수 있는 저장 공간”이었다. 호르무즈가 막히면 산유국들은 원유를 내보내지 못한다. 육상 저장 시설은 한계가 있다. 결국 초대형 유조선 자체가 바다 위 저장고가 된다. 실제로 최근 일부 VLCC들은 원유 운송보다 해상 저장 역할을 하며 막대한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바로 해운산업의 본질이다. 해운은 단순한 물류업이 아니다. 해운은 금융이며 동시에 지정학이다. 유조선 한 척에는 원유 가격, 환율, 보험료, 군사 리스크, 선물시장과 글로벌 금융 흐름이 모두 얽혀 있다. 그래서 세계 최고 해운사들은 단순 운수업체가 아니다. 그들은 거대한 금융 플레이어다.

대표적인 기업이  머스크라인과 MSC다. 덴마크의 머스크는 작은 북유럽 국가에서 출발했지만 세계 물류 시스템 전체를 장악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단순히 배만 운영하지 않는다. 항만과 창고, 공급망 데이터와 금융, 보험까지 통합한다. 스위스의 MSC 역시 공격적 선단 확대 전략으로 세계 최대 컨테이너 선사가 되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위기 속에서 더 커졌다는 점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 1980년대 불황, 2008년 금융위기, 코로나 팬데믹 때마다 해운업은 무너질 듯 흔들렸다. 그러나 살아남은 기업들은 더 거대한 지배력을 얻었다. 왜냐하면 해운은 결국 규모와 자본력, 그리고 리스크 감당 능력이 핵심인 산업이기 때문이다.

도덕경은 “큰 나라는 낮은 곳에 머문다”고 했다. 바다 역시 가장 낮은 곳이다. 그러나 가장 낮은 곳이 결국 세계를 연결한다. 해운은 문명의 가장 낮은 곳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산업이다.

오늘날 세계는 AI 혁명에 열광하고 있다. 반도체와 생성형 AI, 양자컴퓨터와 로봇이 미래 산업의 중심이 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AI가 발전해도 원유와 LNG, 철광석과 곡물은 결국 배로 움직인다. AI는 문명의 두뇌일 수 있지만, 해운은 문명의 혈관이다. 혈관이 막히면 두뇌도 멈춘다.

이번 호르무즈 사태는 세계 경제에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남기고 있다. 첫째,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점이다. 한국과 일본, 중국은 중동 원유 의존도가 높다. 따라서 미국 셰일오일과 호주 LNG, 아프리카와 남미 자원 개발이 더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둘째, 해운산업은 앞으로 더욱 전략산업이 될 것이다. 국가 안보와 에너지 확보, 공급망 유지가 모두 바다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셋째, 해운의 군사화 가능성이다. 앞으로는 민간 해운과 군사 안보의 경계가 점점 흐려질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해상 패권을 국가 전략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남중국해와 대만해협, 호르무즈와 홍해는 모두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다.

넷째, AI 기반 해상 리스크 관리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다. 위성 정보와 드론 감시, 보험 데이터와 군사 정보를 AI가 통합 분석해 최적 항로를 계산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의 결정은 결국 인간이 한다. 왜냐하면 극단적 위기 상황에서는 숫자보다 직관과 용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천부경은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이라 했다. 인간 안에 천지가 있다는 뜻이다. 바다를 읽는 것도 결국 인간이다. 공포를 견디는 것도 인간이며, 마지막 결단을 내리는 것도 인간이다.

정태순 회장의 장금상선이 보여준 호르무즈 돌파는 단순한 해운 뉴스가 아니다. 그것은 현대 산업문명에서 무엇이 진짜 경쟁력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기술도 중요하다. 금융도 중요하다. 그러나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통찰과 책임감, 그리고 위험을 감당하는 용기다.

반면 나무호 피격 사건은 세계화 시대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세계 공급망은 효율성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평화와 질서가 무너지면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이 바다다.

성경은 말한다.
“깊은 물은 사람의 마음과 같다.”
지금 호르무즈 해협의 검은 바다 위에서 세계는 다시 오래된 질문과 마주하고 있다.

누가 이 위험을 읽을 것인가.
누가 세계의 혈관을 지킬 것인가.
그리고 누가 끝까지 살아남을 것인가.
 
호르무즈 해협 통과하는 유조선 사진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 통과하는 유조선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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