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이 멈췄다. 귀가 열렸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주한인도대사관이 처음 연 '인디아 데이(India Day)' 현장이었다. 행사장 양편으로 부스가 길게 늘어섰다. 인도의 28개 주를 상징하는 숫자였다. 북인도와 남인도, 동과 서, 히말라야 산록의 문화와 벵골만 연안의 문화가 한 강변에 펼쳐졌다. 사프란빛과 코발트블루, 진홍과 황금빛 천들이 5월의 바람에 흔들렸고, 무대 위에서는 각 지역 출신 인도인들이 꾸민 전통 춤과 노래가 이어졌다.
향신료 냄새를 따라 들어온 사람들은 어느 순간 박수를 치고 있었다. 처음 보는 리듬에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인도는 인구 14억 7천만 명의 나라다. 단일한 나라가 아니다. 28개 주, 수백 개 부족, 수십 개의 공용 언어, 수천 년의 층위를 가진 문명이 하나의 국경 안에 공존한다. 힌두교와 이슬람, 불교와 시크교가 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문명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나라에서 태어났다.
그런 나라를 우리는 지금까지 어떻게 이해해왔는가.
커리와 요가. 볼리우드와 IT 개발자. 한국 사회가 인도를 소비하는 방식은 오랫동안 그 정도에 머물렀다. 반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도인들에게 한국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그리고 K팝의 나라였다. 거대한 두 문명이 서로를 몇 개의 키워드로 환원해온 세월이었다.
그 거리는 숫자로도 드러난다. 한국에 거주하는 인도인은 약 1만 8천 명. 인도에 사는 한국 교민은 그보다도 적다. 교역 규모는 빠르게 커졌지만, 서로를 제대로 읽어낼 언어와 인재는 여전히 부족하다. 얼마 전 한·인도 정상회담에서 힌디어 통역사가 없어 이중통역으로 진행됐다는 사실은 그 현실을 조용하지만 선명하게 드러냈다. 경제는 이미 손을 잡았지만, 사람과 문화는 아직 악수를 나누지 못한 셈이다.
세계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지금, 인도는 더 이상 먼 나라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추로 부상한 나라, 세계 최대 인구를 가진 나라, 한국 기업들이 다음 십 년을 걸고 들어가는 시장. 지정학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인도는 이미 한국의 핵심 파트너가 됐다. 그러나 진정한 파트너십은 협약서와 무역 통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서로의 역사를 읽고, 서로의 음식을 먹어보고, 서로의 리듬에 몸을 맡겨본 경험이 그 아래 깔려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날 한강의 풍경은 외교 문서보다 더 오래 기억될 장면들을 만들었다.
나무 그늘 아래 모여 인도 전통악기 소리를 듣던 시민들. 처음 맡아본 향신료 냄새에 눈을 크게 뜨던 아이. 손등에 메헨디 문양을 그려 넣고 웃던 젊은 연인. 비리야니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인도인 부스 운영자와 더듬더듬 대화를 나누던 중년 남성. 그 장면들은 어떤 공식 성명보다 더 깊은 방식으로 두 나라 사이에 새겨진다.
문명과 문명이 처음 만나는 방식은 언제나 이렇게 소박하다. 냄새와 소리, 맛과 몸짓으로 시작된다. 거창한 선언보다 한 그릇의 커리가, 정상 간 악수보다 메헨디를 그려주는 손이 먼저 다리를 놓는다.
고랑랄 다스 대사는 이날 "마음이 통한다는 말처럼, 오늘 이 자리는 한국과 인도 두 문화가 한마음이 되는 자리"라고 말했다. 아주미디어그룹 곽영길 회장도 "단순한 문화행사가 아니라 두 나라가 서로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미래의 혁신과 우정을 함께 만들어가는 자리"라고 했다.
한강은 원래 열린 공간이다. 누구든 지나가고, 머물고, 뒤섞이는 장소다. 서울 시민만의 강이 아니라, 이 도시를 지나는 모든 사람들의 강이다. 그 열린 강변 위로 서울과 델리가, 부산과 뭄바이가, 김치와 커리가, K팝과 볼리우드가 상징적으로 나란히 흘렀다.
두 문명은 어쩌면 이제야 비로소 서로를 발견하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늦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5월의 한강에서 향신료 냄새를 처음 맡고 발걸음을 멈춘 그 아이가 자라 인도를 찾아갈 날을 생각하면, 오늘이 그리 늦은 시작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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