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규의 AI 픽] "전국민 무료 AI" 몰타의 실험

  • 블록체인 실패했지만 AI 시대 준비, 디지털전환이 유일한 생존도구

  • 우려 많은 '소버린 AI' 정책, 정부도 정책 실패 두려워 하지 말고 도전해야

오픈AI 인공지능AI 모델 GPT-55사진오픈AI
오픈AI 인공지능(AI) 모델 'GPT-5.5'[사진=오픈AI]

지중해의 작은 섬나라 몰타가 오픈AI와 협력해 약 54만명에 달하는 모든 국민에게 1년간 '챗GPT 플러스'를 무료 제공하고 나섰다. 놀랍기에 앞서 관광 외에는 별다른 수입원이 없는 몰타 정부의 고뇌가 느껴진다. 섬 곳곳에 널려 있는 중세의 흔적만으로는 'AI 시대'에 생존은 불가능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범국민의 AI 역량 강화일 것이다.

이탈리아 최남단, 시칠리아 섬을 지나 지중해 한가운데 몰타가 있다. 공용어로 몰타어가 있지만 대부분 영어를 쓴다. 한때 유럽 여행 가기 좋다며 어학연수지로 인기 있던 곳이다. 국토도 좁고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농업은 어렵다. 섬나라답게 참다랑어 양식이 핵심 산업이지만 국내총생산(GDP)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관광이 유일한 먹거리다.

그리스 로도스섬에서 오스만 제국에게 패한 성 요한 기사단(십자군)은 유럽을 떠도는 골칫거리였다. 갈 곳 없는 그들을 위해 교황 클레멘트 7세가 매년 매 한 마리를 바치는 조건으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를 설득해 몰타를 내줬다.

정착할 곳이 생긴 기사단은 기독교 세계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이교도인 아랍인들을 대상으로 해적질을 벌인다. 오스만 제국이 군사 4만 명을 동원해 정벌에 나섰지만 500여 명의 기사단과 민병대만으로 이들을 막아냈다. 기사단의 승리가 오늘날의 몰타를 만들었다. 기독교를 수호한 기사단에게 유럽 각지의 후원이 쏟아졌다. 성곽과 요새를 짓고 화려한 건물들이 섬 전체를 장식하게 됐다.

지금도 몰타는 유럽의 주요 휴양지 중 하나다. 작은 섬에 빼곡히 들어선 바로크 양식의 건물과 성당들은 중세 시대를 체감하고 싶은 이들을 불러들인다. 하지만 전국민의 80%가 서비스업에 종사하다 보니 경제 전반의 리스크가 크다.

관광 외에는 이렇다 할 산업이 전무한 몰타 정부가 선택한 해법은 디지털 전환이다. 국민 수가 작아서 할 수 있는 일이라지만 전국민에게 유료 AI 서비스를 1년간 무상으로 제공하는 나라는 몰타가 최초다. 서비스를 무상으로 이용하려면 정부의 AI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부족한 인력도 해결하고 AI로 인한 윤리를 국민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행정 효율을 최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국민이 AI를 자유롭게 활용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전자, 중공업 산업은 전무하지만 AI 시대에 새로운 디지털 기회를 잡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몰타의 디지털 실험은 처음이 아니다. 불과 몇 년 전 몰타는 '블록체인의 섬'을 표방하며 파격적인 가상자산법을 통과시켰다.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를 비롯해 글로벌 자본들이 몰타로 몰려들었다. 당시 제도 안착을 위해 몰타는 2년간 규제를 유예했는데 이것이 함정이 됐다. 검증되지 않은 스캠(사기) 세력과 부실 기업들이 횡행하며 국가 신용도마저 추락했다.

국가 신용도 추락에 유예했던 규제마저 시작하자 거래소와 글로벌 기업들은 몰타를 떠났다. 단물만 빨아먹고 떠난 셈이다. 주저 앉는 대신 몰타 정부는 국가 전체를 'AI 실험실'로 만들겠다고 나섰다. 과거였다면 AI 스타트업을 유치하겠다며 규제 완화에 나섰겠지만 이번에는 AI를 국가 차원에서 내재화하는 실용적 생존 전략을 택했다. 실패에서 배우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기본 체력부터 다지자는 결정인 셈이다.

몰타가 해외의 선진 기술을 빠르게 수입해 인프라로 다지는 '수요자형 시험장'이라면, 우리나라는 '소버린 AI'역량 구축에 나선 '공급자형' 국가다. 기술 종속을 피하고 데이터 주권을 수호하기 위해서다. 반도체, 전자, 중공업 역량을 통해 피지컬 AI까지 발을 넓힐 수 있는 AI 경쟁력을 갖췄다.

경쟁력 대비 갈 길은 멀다.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에서 수행 중인 정책 과제는 300여 개에 달한다. 만 300여개에 달한다. 누구나 AI를 말하지만 정작 AI 업계는 아직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갖추지 못했다. 시행착오 없이는 발전할 수 없다. 몰타와 한국의 체급과 전략은 다르지만 자원이 부족하고 인구가 제한적인 국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AI 시대의 생존을 위해서는 정부 주도의 과감하고 정교한 정책 실험이 필수라는 점에 두 나라가 공감대를 형성한 이유다. 빅테크들의 데이터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아직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주변에서 '국가대표 AI'에 대한 우려가 많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역시 초기 반짝 흥행에 그칠까 우려한다.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해 규제하고 산업을 정체시켜서는 안 된다. 소버린 AI 고도화와 공공·민간의 파격적인 AI 융합 실험에 국가적 명운을 걸고 속도전을 벌여야 할 때다. 주저하는 자에게는 혁신의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이 IT 잔혹사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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