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윤의 증시라운지] '팔천피' 축배에 가려진 '천스닥'의 눈물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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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잘 나가던 상권이 있었다. 가게만 내면 무조건 대박이 난다는 기대감에 사람들이 몰려들던 곳이었다. 손님은 넘쳐났고,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는 가게도 흔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빈 점포가 늘어나고, 간판만 남은 가게들이 거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손님 한 명 없이 파리만 날리는 식당도 많아졌다. 그나마 가장 장사가 잘되는 생선가게 사장은 결국 결심했다. “이 상권에 더 있다간 나도 같이 망하겠다.” 그는 유동인구가 훨씬 많은 옆 동네 핵심 상권으로 가게를 옮기려 했다. 그러자 상인회가 다급하게 붙잡았다. “당신까지 떠나면 우리는 어떡하느냐”고.

요즘 코스닥 시장을 보고 있으면 꼭 이런 풍경이 떠오른다. '그나마 장사가 잘 되는 생선가게’는 알테오젠이다. 시가총액 20조원에 육박하는 코스닥 대표기업인 알테오젠이 코스피 이전 상장을 공식화하자 코스닥 시장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코스닥협회와 벤처기업협회까지 공개적으로 “제발 코스닥에 남아달라”고 호소하고 나섰다. 단순한 상장시장 이동 문제가 아니다. 코스닥의 마지막 간판마저 빠져나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사실 이런 장면은 처음이 아니다. 과거 NHN, 카카오, 셀트리온 등이 코스피로 옮겨갔다. 이후에도 포스코DX, 엘앤에프 같은 대표 기업들이 줄줄이 이탈했다. 처음에는 이를 “코스닥 기업의 성공 스토리”라고 불렀다. 하지만 비슷한 일이 반복되면서 시장엔 냉소가 자리 잡았다. 이제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성공한 기업은 결국 코스피로 떠난다”는 인식이 너무도 자연스럽다. 코스닥이 ‘코스피 2중대’ 혹은 ‘2부 리그’라는 자조 섞인 평가를 듣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기업 입장에서 코스피 이전은 너무도 합리적인 선택이다. 코스피는 연기금과 글로벌 패시브 자금 접근성이 압도적으로 크고, 코스피200 편입에 따른 수급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와 유동성 규모 역시 코스닥과 비교하기 어렵다. 특히 최근처럼 글로벌 자금이 AI·반도체·초대형 성장주 중심으로 움직이는 시대에는 ‘코스피 소속’ 자체가 밸류에이션을 좌우한다. 결국 성장기업 입장에서 코스닥은 장기적으로 머물 시장이 아니라, 잠시 거쳐가는 시장이 돼가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그 결과다. 대표 기업들이 빠져나간 코스닥에는 무엇이 남았나. 상장기업 수는 1800개를 넘지만 시장의 질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주당 1000원 미만 동전주가 넘쳐나고, 거래가 거의 없는 종목과 장기 적자기업, 테마성 기업들이 시장을 채우고 있다. 혁신기업 시장이라기보다 단기 투기와 테마 순환의 무대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장주가 빠져나가면 ETF 자금과 기관 수급도 약해지고, 거래대금과 시장 신뢰 역시 함께 흔들린다. 결국 시장엔 변동성만 남는다. 코스피가 지난 1년 새 3배 넘게 오르는 동안, 코스닥은 여전히 1100선을 벗어나지 못하는 게 그 결과물이다.

지지부진한 코스닥에도 ‘화양연화’는 있었다. 1999~2000년 닷컴버블 시절이다. 당시 코스닥엔 쟁쟁한 기업들이 포진해 있었다. 다음커뮤니케이션, 옥션, 한글과컴퓨터, 새롬기술 등은 코스닥을 넘어 대한민국 혁신의 대표주자였다. 이들 기업 주가는 대기업보다 뜨거웠고, 투자자들에게는 최우선 선택지로 꼽혔다. 코스닥 열풍의 정점은 2000년 3월 10일이었다. 그날 코스닥 지수는 장중 2925.20을 찍었다.

코스닥의 화양연화를 다시 불러오기 위해 정부는 갖은 처방전을 내놨다. 동전주 퇴출과 승강제(리그제) 도입 등이다. 시장 신뢰를 위해 부실기업 정리가 필요하다는 데 이견은 없다. 지나치게 많은 좀비기업이 시장 전체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이것만으로 코스닥의 경쟁력을 되살릴 수 있느냐다. 현재 코스닥의 위기는 단순히 부실기업이 많아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성공한 기업은 결국 코스피로 떠난다’는 구조 타파에 있다. 코스닥이 성장기업을 키워내지만, 시장의 과실은 코스피가 가져가는 구조로는 코스닥이 지속가능할 수 없다. 대장주가 빠져나가면 ETF 자금과 기관 수급이 약화되고, 시장 전체의 거래대금과 신뢰도도 함께 떨어진다. 결국 남는 것은 변동성이 큰 중소형 테마주뿐이다.
 
글로벌 유동성 환경 변화도 유심히 봐야 한다. 지금 글로벌 자금은 AI·반도체 같은 일부 초대형 성장주에만 집중된다. 외국인 자금은 코스피 대형주로 몰리고, 코스닥 다수 종목은 소외된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유동성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충격을 받는 곳은 대개 변동성이 큰 성장주 시장이다.

미국의 엔비디아와 테슬라는 성장해도 나스닥에 남아 시장 자체의 경쟁력을 키운다. 하지만 한국은 대표 성장기업이 코스피로 이동하면서 코스닥의 정체성과 경쟁력이 함께 약해지고 있다. 성장기업을 키워낸 시장이 그 과실을 지속적으로 누리지 못하는 구조인 셈이다.

코스닥 구조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하지만 동전주 몇 개를 정리하는 수준의 처방으로는 부족하다. 우량 기업과 장기 투자자금이 계속 머물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지 못한다면, 코스닥은 앞으로도 ‘혁신기업 시장’이 아니라 ‘코스피로 가기 전 잠시 머무는 경유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된다면 한국 증시는 앞으로도 ‘팔천피의 축제’와 ‘천스닥의 침체’라는 기형적 양극화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1년이 되어가는 시점이다. 그 사이 코스피는 '5천피'를 넘어 '팔천피'를 넘보고 있다. 하지만 코스닥은 여전히 '천스닥'이다. 그렇기에 한국 자본시장 활성화라는 현 정부의 정책목표 달성률은 50%, 절반의 성공이다. 이제 '2천스닥', '3천스닥'을 위한 정부의 의지를 더 강하고, 빠르게 다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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