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 칼럼] 대한민국의 방향을 바꾸는 '강호축의 X축프로젝트'

더불어민주당 신용한 충북도지사 후보와 정청래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최근 “2030년까지 강릉~목포 4시간 시대를 열겠다”며 강호축 고속철도망 구축을 전면에 내세웠다. 강릉에서 원주·제천·오송·익산을 거쳐 목포까지 이어지는 초광역 철도망을 국가 핵심 프로젝트로 추진하겠다는 선언이다.
 
 
지방선거를 앞둔 공약이다. 그러나 조금만 깊게 들여다보면 이것은 단순한 SOC 사업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성장 구조 자체를 바꾸겠다는 국가 재설계 구상에 가깝다.
흥미로운 것은 이 논의의 출발점이다. 강호축이라는 개념은 하루아침에 나온 선거용 아이디어가 아니다. 그 출발점에는 오랫동안 “대한민국은 경부축 하나로는 지속될 수 없다”고 주장해온 이시종 전 충북지사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를 비롯한 시도지사 후보자들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강호축 철도망 합동 공약 발표 기자회견에서 공약을 설명한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신용한 충북도지사 후보 우상호 강원도지사 후보 정 대표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후보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를 비롯한 시도지사 후보자들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강호축' 철도망 합동 공약 발표 기자회견에서 공약을 설명한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신용한 충북도지사 후보, 우상호 강원도지사 후보, 정 대표,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후보. [사진=연합뉴스]

 
그는 2014년 처음 ‘강호축’을 제기했다. 당시만 해도 많은 이들은 이를 지방의 희망사항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그는 집요했다. 강원과 충청, 호남을 연결하는 새로운 국가 성장축이 필요하다고 끊임없이 주장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 시절 충북선 고속화 사업이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에 포함되면서 강호축은 비로소 국가 전략 의제로 올라섰다.
 
이시종이 던진 질문은 단순했다.
“대한민국은 왜 서울과 경부축만으로 움직여야 하는가.”
그러나 그 질문은 한국 사회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었다.
 
 
경부축의 성공, 그리고 수도권의 과잉
 
 
대한민국 산업화는 철도 위에서 이루어졌다. 경부선과 경부고속도로, 그리고 KTX는 한국 경제의 동맥이었다. 서울-수원-대전-대구-부산으로 이어지는 축을 따라 산업단지와 기업, 대학과 인구가 움직였다.
 
 
박정희 시대 압축 성장 전략은 분명 성공했다. 세계 최빈국 수준이던 한국은 불과 반세기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모든 성공 모델은 부작용을 만든다.
경부축 중심 성장은 결국 수도권 일극 체제를 낳았다. 인구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몰렸다. 기업 본사, 금융, 병원, 대학, 문화, 언론, 정치 권력까지 서울로 향했다.
반면 지방은 빠르게 쇠퇴했다. 청년은 떠난다. 학교는 폐교된다. 병원은 사라진다. 산업 기반은 약화된다.
‘지방 소멸’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과장이 아닌 시대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흡입 성장 모델’이라고 부른다. 중심부가 인구와 자본, 인재를 모두 빨아들이는 구조다. 초기에는 효율적이다. 그러나 일정 단계가 지나면 오히려 국가 전체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서울은 과밀 비용으로 고통받는다. 집값 폭등, 출퇴근 지옥, 과도한 경쟁, 저출산 문제가 대표적이다. 지방은 공동화된다. 결국 국가 전체 활력이 떨어진다.
 
이시종 전 지사는 이 구조를 누구보다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는 아주 ABC방송 ‘리더에게 듣는다’ 인터뷰에서 “경부축은 산업과 경제의 80%가 집중됐고 강호축은 20%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 말은 단순한 지역 불균형 지적이 아니다. 대한민국 성장 모델 자체의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이시종 전 충북지사가 아주ABC방송 리더에게 듣는다 프로그램에서 강호축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아주ABC방송 화면캡쳐
이시종 전 충북지사가 아주ABC방송 '리더에게 듣는다' 프로그램에서 강호축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아주ABC방송 화면캡쳐]

 
 
강호축, 대한민국의 ‘X축 국가론’

강호축의 핵심은 이름 그대로다. 강원(江原)과 호남(湖南)을 연결하는 축.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서울-부산 중심의 ‘I축 국가’였다. 그러나 강호축은 이를 ‘X축 국가’로 바꾸자는 전략이다. 목포에서 익산·오송·청주공항·제천·원주·강릉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국가 네트워크가 형성되면 지금까지 비어 있던 국토의 중심축이 살아난다.
 
 
여기서 핵심은 오송이다.
오송은 경부고속철과 호남고속철이 만나는 유일한 지점이다. 여기에 강호축까지 연결되면 충청권은 단순한 중간 통과 지점이 아니라 대한민국 교통과 산업의 핵심 허브가 된다.
청주공항 역시 달라진다. 지금까지는 인천공항의 보조 공항 정도로 인식됐지만 강호축이 연결되면 중부권 국제 관문 공항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열린다.
 
 
그러나 강호축의 진짜 의미는 철도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 철학이다. 이시종 전 지사는 강호축을 단순한 교통망이 아니라 산업·물류·인구·문화 이동축으로 봤다. 철도가 놓이면 산업이 움직이고 기업이 따라오며 사람이 이동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역사는 늘 그랬다.
미국의 대륙횡단철도는 서부 개척을 완성했고, 중국의 고속철도망은 내륙 경제를 일으켜 세웠다. 프랑스 TGV는 파리 중심 구조를 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철도는 단순 교통 인프라가 아니다. 국가 구조를 바꾸는 힘이다.
 
 
세계는 이미 ‘다핵 국가’로 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세계 주요 국가들이 이미 수도권 일극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은 대표적인 다핵 국가다.
수도는 베를린이지만 금융은 프랑크푸르트, 제조업은 뮌헨과 슈투트가르트, 물류는 함부르크가 맡는다. 특정 도시 하나가 모든 기능을 독점하지 않는다.
독일 연방주의의 핵심은 ‘분산된 강국’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뉴욕은 금융, 실리콘밸리는 기술, 보스턴은 바이오, 오스틴은 반도체와 스타트업, 시애틀은 클라우드와 항공 산업 중심이다.
 
 
중국 역시 최근에는 베이징·상하이 중심 구조를 넘어 청두-충칭 경제권, 광둥-홍콩-마카오 대만구(大灣區)를 육성하고 있다. 중국의 고속철 전략은 단순 교통망 확장이 아니라 지역 경제 재편 전략이다.
 
 
일본은 더 절박하다.
도쿄 일극 체제가 지방 소멸을 낳자 일본 정부는 ‘지방창생’ 정책을 국가 전략으로 추진 중이다. 후쿠오카 스타트업 도시 육성, 오사카 국제금융도시 전략, 홋카이도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이 대표 사례다.
 
 
반면 한국은 아직도 서울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모든 정책의 출발점이 수도권이다. 지역은 지원 대상 정도로 인식된다.
그러나 AI와 반도체, 바이오 시대에는 오히려 분산형 네트워크 국가가 더 강해진다.
 
 
강호축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충북 오송 바이오, 청주 반도체, 강원 관광·에너지, 호남 미래차와 재생에너지 산업이 강호축을 중심으로 하나의 산업 벨트로 연결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지방 발전이 아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축을 만드는 일이다.
 
 
강호축의 본질은 ‘국가 구조 개혁’이다
 
이시종 전 지사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그는 수도권 집중의 원인 중 하나로 “인구 중심 단원제 국회”를 지적한다.
수도권 인구가 늘수록 국회의원 수도 수도권에 집중되고, 결국 정책과 예산도 수도권 중심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미국식 상원제 도입 필요성까지 주장한다. 지역 대표형 상원을 통해 지방의 목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다.
찬반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문제의식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단순한 지방 지원 정책 몇 개로 해결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할 정도로 수도권 집중이 심각해졌다는 현실 인식이다.
강호축은 결국 질문이다.
 
 
서울 하나만 강한 나라를 계속 만들 것인가.
아니면 지역이 함께 살아 움직이는 다핵 국가로 갈 것인가.
청년들이 서울로 가야만 성공하는 나라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지역에서도 기회와 삶이 가능한 나라를 만들 것인가.
 
 
철도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다.
철도는 국가 철학이다.
박정희 시대 경부축이 압축 성장의 철학이었다면, 강호축은 균형 성장의 철학이다.
과거 대한민국은 한 축 집중으로 성공했다. 그러나 다음 50년은 여러 축이 살아야 지속 가능하다.
 
 
강호축은 지방만 살리자는 사업이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를 다시 살리자는 국가 전략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철길 하나를 놓는 일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방향을 바꾸겠다는 결단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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