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 26대 서울대 총장]
한국의 지방자치는 나라의 민주화와 그 궤적을 함께 한다. 1952년 최초로 지방의회가 구성되었다. 제2공화국은 명실상부한 지방자치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1961년 박정희 군사정부는 지방의회를 해산하고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제정하여 그에 저촉되는 지방자치법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이에 따라 지방의회를 해산하고 지방자치의 부활을 “남북통일 이후로 유보”한다고 결정함으로써 지방자치제도가 사실상 폐지되었다. 제3공화국 헌법에도 지방자치 규정이 있었지만, 부칙 제7조 제3항에서 “이 헌법에 의한 최초의 지방의회의 구성시기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라고 미루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1988년 지방자치법의 전면 개정에 따라 1991년 각급 지방의회가 구성되었다. 무기한 연기되었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1994년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현 공직선거법)의 제정으로 1995년에 실시하였다. 이로써 ‘풀뿌리 민주주의’(grass root democracy) 시대를 열어간다. 이제 ‘위로부터의 민주주의’에서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가 정착한다. 하지만 여전히 지방자치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과 개혁의 목소리가 높다.
첫째, 지방자치단체의 규모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지방은 광역 시·도와 기초 시·군·구로 나누어진다. 원래 광역은 서울을 제외하고는 전부 도 단위였다. 그런데 부산, 대구, 인천, 대전, 광주, 울산이 차례로 광역시로 분할되었다. 정보화 시대에 불어 닥친 인구절벽·지역소멸 현상에 즈음하여 더 이상 분할이 아니라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광역은 숫자도 줄어들고 수도권 1극과의 경쟁력도 제고할 수 있다. 즉 각 시·도를 통합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여 자체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다(성낙인, 한국일보 한국의창, “광역단체 통합, 지방선거 전에 확정하자”. 2026.1.14; “행정통합, 전국을 단일 법률로 제정해야 한다”, 2026.2.11.)
셋째, 정당 공천으로 인하여 지역사회가 중앙정치의 축소판이 되어간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방의 문제는 지방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중앙당의 지휘·통제를 받는 지방자치는 혁파되어야 한다. 하지만 중앙이나 지방 할 것 없이 정치와 결별한 행정은 존재하기 어렵다.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정당 자체가 중앙당 중심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또한 정당의 투명하고 공정한 공천심사로 후보자의 자질을 걸러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유권자는 누군지도 모르는 ‘깜깜이’ 상태에서 현명한 선택이 어렵다. 문제는 중앙당이 지방자치의 본질인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외면한 채 일방적인 공천을 자행하는 데 있다. 대구시장 국민의힘 공천과정에서 여론조사 1, 2위 후보를 트리밍(trimming)한 것이 전형적인 사례다. 민주당의 아성인 전북지사 선거에서도 무소속 후보가 돌풍이다. 중앙당의 비합리적인 컷오프 때문이다. 공천 과정에서 불법 헌금과 관련한 비리가 아직도 넘쳐난다. 공천 비리로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국회의원과 김영 서울시의원이 구속된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게 지배적이다. 지금까지 기초단체의 장과 의원의 공천은 당해 지역구 국회의원이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중앙당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지역구 국회의원의 뜻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공천 비리가 진동한다. 그럼에도 기초단체장 후보 579명 중 40.4%인 234명, 지방의원 후보 35%가 전과 기록이 있다. 만약 정당공천조차 없다면 지방자치 후보자에 대한 사전 검증은 불가능할 것이다. 교육감 후보에 파렴치한 전과자들이 넘치는 것도 정당 공천 부재에서 비롯된다.
넷째, 현실적으로 처해 있는 실존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지역정당제 도입이 필요하다. 현행 정당법은 엄격하게 중앙정치 중심으로 규율된다. 즉 “정당은 5 이상의 시·도당을 가져야 한다.”(정당법 제17조) 그런데 반세기 이상 호남과 영남은 특정 정당이 싹쓸이한다. 민주당이 영남에서 터 잡기 어렵고, 국민의힘이 호남에서 뿌리내리기 어렵다. 과거 영남에서 무소속 또는 자유민주연합이, 호남에서 국민의당이 돌풍을 일으킨 적도 있다. 하지만 이는 양대 정당에 대한 일회성 저항에 불과하다. 실제로 광역의원 무투표 당선자 전체 108명 중 84명(77.8%)이 영호남 지역에서 나왔다. 차제에 광주전남당, 대구경북당 같은 지역정당이 이들의 대안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은 어떨까? 국민통합의 관점에서 보면 지역정당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현실정치에서 특정 정당의 지역할거에 따른 폐해를 시정하기 위하여 과도기적으로 지역정당제가 필요하다.
다섯째, 주민 중심의 삶을 형성해야 한다. 과거 시·도지사뿐만 아니라 시장·군수가 지방은 살펴볼 생각도 하지 않고 중앙정부만 쳐다보던 상황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다. 그런데 선출된 공직자들은 차기 선거를 위한 선심행정이나 전시행정에 치우친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지방재정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그런 와중에도 뜻밖의 좋은 결과물을 내고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여야 한다. 예컨대 강원도 화천의 산천어 축제도 그러하다. 다소 황당한 사례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경우도 있다. 전남 함평의 황금박쥐상은 엄청난 비난 속에 탄생했다. 그런데 고공 행진하는 금값 덕분에 새로운 명물일 뿐만 아니라 430억의 잭팟을 터뜨리면서 황금박쥐의 메카가 되었다. 갖가지 아이디어를 총동원하여 지방의 활성화에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독자적인 개성에 따른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치게 단기적 성과에 매몰되어서도 안 되고, 현실적인 인기에 영합해서도 안 된다.
여섯째, 지방의원의 이권개입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비상근직인 의원의 무급원칙은 맞다. 하지만 무급이다 보니 의회는 지방 토착세력과 자영업자의 아성이 된다. 그들은 자신의 직업과 관련된 사안에서 이권을 챙긴다. 국회의원은 겸직이 금지되지만, 지방의원은 ‘무급 명예직’으로부터 출발하여 2006년부터 유급제가 실시되지만 겸직은 여전히 허용된다. 광역의원 평균 연봉은 6885만원, 기초의원은 4794만원이다. 서울시 의원은 7500만원을 받지만, 겸직의원은 40% 이상에 이른다. 의원의 겸직 정보를 공개한 지방의회는 12%에 불과하다. 이제 전업 지방의원이 본격적으로 나설 때이다. 의원의 출결 상황도 엄격하게 체크하고 급여에 반영해야 한다. 의장 선출은 요지경이라는 비판이다. 특히 기초의회는 소수의 의원으로 구성되다 보니 의장 선출 등에서 매관매직의 유혹에 쉽게 휩쓸린다. 이런 현상은 이미 교육감 간선제를 통하여 잘 드러난 바 있다. 과거 교육감 당선자 과반수가 사법처리되면서 직선제로 선회했다.
일곱째, 지방자치의 고비용 문제이다. 광역 기초 할 것 없이 독립적인 지방의회 건물을 두고 있다. 지방에 가면 자치단체와 병렬적으로 지방의회의 건물과 간판이 보인다. 비상근이라 매일 회의를 하는 것도 아닌데 독립 건물에 회의실까지 두는 것은 전형적인 고비용이다. 지방자치단체 회의실을 지방의회가 겸용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해외에서는 회의실을 같이 쓰고 야간에 여는 사례가 많다. 단체장이나 의원들의 해외연수에 대한 합리적 통제가 필요하다. 해외출장 비용공개가 17%에 불과한 실정이다. 특히 연수인지 외유인지 구분이 안 된다. 한때 중남미 공직자의 출장에는 페루의 마추픽추 관광이 유행이었다. 하루 정도 잉카 제국이 건립한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 시찰을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차제에 출장 일정 일부를 문화유산이나 산업시찰로 채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 이상에 치우친 규제만 할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인정하자. 다만, 외유 이후 반드시 보고서를 제출하여 이를 엄격하게 검증하여야 한다. 외유 결과를 주민들과 공유하기 위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
여덟째, 지방자치의 실질화는 지방재정의 독립성과 안정성 확보에 있다. 지방재정의 건전성 확보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지방재정의 독자성과 건전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폭넓은 지방재정 이양이 필요하다. 반면에 지방자치단체의 방만 경영에 대한 엄격한 통제가 필요하다. 광역의원 877명이 심의한 예산은 234조원에 이른다. 1인당 2668억원의 예산을 심의한다. 지방자치단체의 파산선고라는 매우 높은 제재 대신 재정진단제를 시행한다. 지방교부세법에 따라 우수한 단체에 특별교부세를 교부할 수 있다. 하지만 제재규정 미흡 등으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자체 정화나 감사로는 한계가 있음이 드러난다. 이에 감시체제의 실질화 작업이 필요하다. 국가 차원의 감사기구를 지방에 실시하는 것도 필요하다. 프랑스에서는 회계검사원을 지방에도 설치한다. 우리도 이를 참고하여 감사원 시·도 분원이 그 역할을 수행하는 방안도 있다.
결론적으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민토착형, 주민참여형 지방자치가 필요하다. 주민의 삶을 위한 지방자치가 의원과 관료를 위한 놀이터로 전락해서는 아니 된다. 법적으로 주민투표, 조례의 제정과 개폐 청구, 주민감사청구, 주민소송, 주민소환 등 주민결정과 주민참여 제도를 보장한다. 하지만 주민들이 자신의 삶과 직결된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민주주의를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선거구 307곳에서 504명(기초단체장 3명, 지역구 광역의원 108명, 지역구 기초의원 305명, 비례대표 기초의원 88명)의 무투표 당선자가 나온다. 전체 당선정수 4227명의 12%다. 등록한 후보 수는 7782명으로, 평균 경쟁률은 1.841대 1로 역대 가장 낮다. 풀뿌리의 핵심인 기초의원은 3035명 정원에 5074명이 등록해 1.7대 1, 933명을 뽑는 광역의원은 2011명이 나서 2.2대 1에 불과하다. 2회 연속 최저 경쟁률이다. 주민들이 지방자치를 외면하고 있지 않은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다만 여성 후보는 2453명(31.5%)으로 역대 지방선거 최초로 여성 출마자 비율이 30%를 넘어섰다는 점은 다행스럽다. 지방자치가 지방의 살림살이인 만큼 여성의 섬세한 손길이 필요하기에 여성의 참여가 더 강력히 요구된다.
향후 헌법개정에 따라 지방자치 규정의 개정이 있을 때에는 지방자치 보장을 위해 보다 구체적인 규정을 헌법에 담아야 한다. 무엇보다 지방자치단체는 독자적인 법규범 제정권에 한계가 있다. 현행 헌법에서는 지방자치단체는 헌법, 법률, 명령 아래에서 조례와 규칙만 제정할 수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와 같은 특수한 경우에는 자체적으로 지방자치법률의 제정도 가능한 경우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명령과 동위의 자치법규 제정권은 가져도 무방할 것이다.
▷파리2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한국공법학회 회장(2005~2007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2009년 1월~2012년 12월)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2010~2013년) ▷동아시아연구중심대학협의회 의장 ▷제26대 서울대 총장(2014년 7월~2018년 7월) ▷서울대 명예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