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의 기업진단] 위기의 정용진, '악질 장사치의 패륜행위'라는 대통령의 질책

  • 위기는 실수가 아니라 반복에서 커진다  

위기는 사고 자체보다 반복될 때 치명적이 된다.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 데이’ 논란이 그랬다. 처음에는 단순한 SNS 마케팅 사고처럼 보였다. 그러나 경찰 수사가 시작되고 정치권이 총공세에 나서면서 사안은 기업 위기를 넘어 사회적 논쟁으로 번졌다. 여기에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과거 세월호 10주기 당시 스타벅스코리아의 ‘사이렌 클래식 머그’ 출시 사례까지 언급하면서 상황은 더 커졌다.
 
 
대통령은 “악질 장사치의 패륜 행위”라는 강한 표현까지 썼다. 단순 실무 사고가 아니라 반복적 역사의식 부재라는 것이다. 특히 5·18 ‘탱크 데이’ 논란과 세월호 추모 시기의 ‘사이렌’ 마케팅을 연결하며 “우발적 사건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용진 신세계 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정용진 신세계 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여기서 기업은 매우 불편한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과연 기업 총수는 조직 내부에서 발생한 모든 마케팅 사고에 대해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정용진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SNS 시대 모든 대기업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다.
 

과거 기업 위기는 공장에서 터졌다. 제품 결함과 안전사고, 회계 부정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지금 위기는 디지털 플랫폼 위에서 발생한다. 짧은 문구 하나, 이미지 한 장, 이벤트 이름 하나가 기업 전체를 흔든다. 속도가 생명인 SNS 마케팅은 실무진 중심으로 움직이고, 조직은 클릭과 바이럴, 화제성과 체류시간에 민감해진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사회적 맥락과 역사적 감수성이 쉽게 탈락한다는 점이다.
 
 
총수 책임론과 마녀사냥 사이
 
 
냉정하게 봐야 한다.
현재까지 공개된 사실만 놓고 보면 정용진 회장이 해당 문구를 직접 지시했다는 근거는 없다. 현실적으로도 수만 명 규모 조직에서 총수가 디지털 마케팅 문구 하나하나를 직접 승인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나는 몰랐다”로 끝낼 수도 없다.
기업에서 일어난 일은 결국 기업 총수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책임과 처벌을 구분하는 일이다.
 
한국 사회는 종종 이 둘을 혼동한다.
책임은 조직 운영의 최종 관리자라는 의미다. 반면 처벌은 직접적 위법 행위나 고의성이 입증될 때 논의되는 영역이다. 두 개는 다르다.
 
예를 들어 토요타는 대규모 리콜 사태 때 창업 가문 출신인 아키오 토요타 회장이 직접 미국 의회 청문회에 나갔다. 그는 모든 결함을 직접 설계하지 않았지만 최고경영자로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법적 책임과 형사 책임은 별도로 판단됐다.
 
 
미국의 위기관리 교과서로 불리는 존슨 앤 존슨(Johnson & Johnson)의 타이레놀 사건도 마찬가지다. 회사는 독극물 혼입이 외부 범죄 가능성이 컸음에도 전량 리콜과 공개 소통에 나섰다.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다.
 
 
기업 총수는 조직의 모든 실수를 다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조직이 어떻게 움직였는가에 대한 최종 책임은 져야 한다.
 
이번 논란의 핵심도 거기에 있다.
왜 이런 문구가 아무 제동 없이 통과됐는가. 왜 조직 안에서 “이건 위험하다”는 목소리가 작동하지 않았는가. 왜 역사와 사회적 맥락을 검토하는 시스템이 부실했는가.
이 질문에 답해야 하는 사람은 결국 최고경영자다.
 
 
문제는 의도보다 조직 문화다
 

이번 사건을 지나치게 정치적으로만 해석하는 것도 위험하다.
정용진 회장은 과거 ‘멸공’ 논란 등으로 이미 강한 정치적 이미지를 가진 기업인이다. 그 때문에 이번 사건 역시 더 큰 정치적 해석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핵심은 정치보다 조직 문화다.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은 거대한 의도보다 평범한 무감각 속에서 탄생한다”고 말했다. 거대한 음모보다 조직의 둔감함과 무사안일이 더 위험하다는 뜻이다.
 
 
현대 플랫폼 경제는 ‘주의(attention) 경제’다.
기업은 제품만이 아니라 관심을 판다. 클릭과 화제성, 팬덤과 인증이 매출을 움직인다. 스타벅스코리아 역시 단순 커피 브랜드를 넘어 굿즈와 이벤트 중심 플랫폼으로 진화해 왔다.
문제는 속도가 철학을 압도하기 시작할 때다.
 
원래 스타벅스(Starbucks)의 창업자 하워드 슐츠는 스타벅스를 “제3의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집과 직장 사이에서 사람들이 쉬고 연결되는 공간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오늘날 스타벅스는 팬덤과 희소성, 굿즈 소비가 브랜드 핵심 수익 구조 중 하나가 됐다. 물론 그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현대 소비자본주의는 원래 그렇게 움직인다. 나이키도 팬덤을 만들고, 애플도 희소성과 감성 마케팅을 활용한다.
 
 
그러나 브랜드 철학보다 이벤트 속도와 화제성이 우선되기 시작하면 조직은 점점 “무엇이 옳은가”보다 “무엇이 뜨는가”에 민감해진다. 이번 논란은 그 경고에 가깝다.
 
 
정용진이 지금 해야 할 일
 
 
지금 정용진 회장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억울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방어 논리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조직을 어떻게 바꾸냐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됐는가
검수 시스템은 어떻게 작동했는가
역사·사회 감수성 검토 체계는 있었는가
디지털 마케팅 윤리 기준은 무엇인가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이뤄질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특히 이번 사건은 단순 실무 사고를 넘어 “기업은 사회 속에 존재한다”는 점을 다시 보여준다. 기업은 시장만 상대하는 조직이 아니다. 역사와 문화, 사회적 기억과도 연결돼 있다. 대기업일수록 더 그렇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 역시 냉정해야 한다.
모든 조직 실패를 곧바로 총수 개인의 범죄나 악의로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것은 책임과 응징을 혼동하는 일이다. 기업 비판은 필요하지만 마녀사냥이 돼서는 안 된다.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한국 사회에도 필요한 말이다. 기업의 무감각은 분명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정치적 응징으로만 해결하려는 사회 역시 건강하지 않다.
 

결국 중요한 것은 수습 능력이다.
 

위대한 기업은 위기 때 본질로 돌아간다. 그리고 위대한 리더는 그 순간 숨지 않는다.
정용진 회장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단순 사과 반복이 아니다.
조직의 실패를 인정하고, 시스템을 고치고, 사회적 신뢰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그것이 총수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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