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즈라 이먼 WAN-IFRA AI 미디어 총괄은 2일(현지시간) 기조 세션에서 "어떤 언론사도 지도를 갖고 있지 않다"며 AI 시대 언론산업이 직면한 불확실성을 진단했다.
인터넷 시대에는 디지털 전환이라는 방향성이 있었고, 모바일 시대에는 모바일 퍼스트 전략이라는 공통된 목표가 있었다. 소셜미디어 시대에도 플랫폼 활용이라는 비교적 명확한 전략이 존재했다. 그러나 AI 시대는 다르다. 정보 생산과 유통, 소비 방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재편되면서 기존 성공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환경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먼은 "새로운 세상은 기존 지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며 "문제는 단순히 AI 도구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사람들의 정보 접근 창구가 되는 시대에 저널리즘이 어떻게 살아남고 성장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글로벌 언론사들은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하고 있다.
이먼이 소개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언론사의 56%는 AI 기업의 크롤링 봇 접근을 차단하는 방어 전략을 택했다. 반면 31%는 AI 기업과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거나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어느 전략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다"며 "각 언론사의 규모와 상황에 따라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분명한 것은 AI 생태계 안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먼은 "통제권이 없으면 시장도 없고, 가치를 확보할 방법도 없다"고 강조했다.
과거 언론사들이 독자들의 관심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했다면 이제는 AI 시스템 안에서 존재감을 유지하기 위한 경쟁이 시작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특히 언론이 AI 생태계에서 단순한 '재료(ingredient)'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생성형 AI가 기사 내용을 요약하고 설명하며 추천하는 과정에서 언론 콘텐츠가 AI 서비스의 부품처럼 소비될 위험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먼은 "재료가 아니라 목적지(destination)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AI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데 그친다면 독자와의 관계, 구독 수익, 광고 수익을 모두 잃을 수 있지만 독자들이 직접 찾는 차별화된 서비스와 경험을 제공한다면 유통 방식이 바뀌더라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AI 이용 행태를 이해하고, 상품화된 콘텐츠를 피하며, 희소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독자적인 지식과 역량을 축적해 AI 에이전트 시대에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AI가 범람할수록 오히려 독점적 정보와 신뢰성, 진정성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시장은 독점적이고 구체적이며 진정성 있는 콘텐츠를 선호하게 될 것입니다."
이날 패널 토론에 참석한 글로벌 언론사 경영진들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지도 없는 시대'를 헤쳐 나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파브리스 바쿠슈 프랑스 시파 우에스트프랑스 그룹 최고경영자(CEO)는 "AI가 조직 내 역할과 업무 프로세스, 경영 구조에 미칠 영향은 이제 막 드러나기 시작했다"며 "아직 그 영향력을 명확히 그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나친 신중론보다는 현장 중심의 실험을 강조했다.
바쿠슈 CEO는 "아래로부터의 접근(bottom-up approach)이 중요하다"며 "너무 보수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불확실성이 해소되기를 기다리기보다 실제 실험을 통해 답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영국 스카이뉴스 역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조너선 레비 스카이뉴스 대표는 언론산업이 "동시에, 끊임없이, 그리고 가속화된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워싱턴포스트 전 편집국장 마티 배런의 표현을 인용해 현재 상황을 "어지러울 정도로 빠른 미디어 소비 변화"라고 설명했다.
스카이뉴스는 디지털·영상 중심 뉴스룸으로 전환을 추진하면서도 저널리즘의 본질은 유지한다는 전략을 택했다.
레비 대표는 "우리는 신뢰받는 저널리즘을 제공하는 동시에 비행 중인 항공기를 개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모든 답을 알고 있는 척하지 않는 정직한 리더십이 중요하다"며 변화 과정에서 구성원들에게 방향성과 신뢰를 제공하는 것이 경영진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로이터는 보다 체계적인 접근법을 선택했다.
제인 배럿 로이터 AI 전략 총괄은 AI 도입의 핵심이 기술보다 조직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녀는 "변화의 10%는 AI, 20%는 기술, 70%는 사람과 프로세스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는 AI 활용 가이드라인과 거버넌스 위원회, 데이터 보안 체계 등 이른바 '비계(scaffolding)'를 구축해 실험과 혁신이 신뢰 훼손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배럿 총괄은 "실패는 곧 학습"이라며 조직 차원의 실험 문화를 강조했다.
이먼은 발표를 마무리하며 "어떤 언론사도 지도를 갖고 있지 않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대신 지금 필요한 것은 완벽한 정답이 아니라 실험과 관찰, 그리고 협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로의 신호를 공유하고 실패 경험을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AI 시대의 언론사들은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지만, 그곳으로 향하는 길은 각자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상황이다.
마르세유에서 나온 결론은 분명했다.
지도가 없다는 사실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이유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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