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화, 조직위원장에서 선수로…세계마스터즈 무대서 다시 증명한 '승부사의 DNA'

  • XIOM 2026 강릉세계마스터즈탁구선수권대회 예선 3전 전승 본선 진출…"축제의 무대지만 승부는 끝까지 최선"

현정화 집행위원장이 다시 선수로 코트에 섰다 현역 시절 세계를 주름잡던 빠른 전진속공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사진XIOM 2026 강릉세계마스터즈탁구 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현정화 집행위원장이 다시 선수로 코트에 섰다. 현역 시절 세계를 주름잡던 빠른 전진속공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사진=XIOM 2026 강릉세계마스터즈탁구 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1988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한국 탁구의 살아있는 전설 현정화 XIOM 2026 강릉세계마스터즈탁구선수권대회 집행위원장이 다시 선수로 코트에 섰다. 대회를 총괄하는 조직위원장이면서도 참가 선수로 직접 출전한 그는 예선 전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며 여전한 경쟁력을 과시했다.
 
현 위원장은 7일 강릉 오벌(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55~59세부 단식 예선 4그룹 경기에서 덴마크의 피아 톨회이, 한국의 임혜숙, 아일랜드의 쿽 추이 린을 차례로 꺾고 3전 전승으로 본선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압도적인 전승이었다. 그러나 경기 내용은 결코 쉽지 않았다. 세계 정상에 섰던 현역 시절의 전진속공 스타일은 여전히 위력을 발휘했다. 상대보다 한발 먼저 파고드는 빠른 발놀림과 순간적인 타이밍 공략, 코너를 찌르는 정교한 공격은 수많은 팬들이 기억하는 ‘세계 챔피언 현정화’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하지만 세계마스터즈 무대는 국가대표 시절과는 또 다른 세계였다. 엘리트 선수들과의 경기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생활체육 특유의 다양한 구질과 예측하기 어려운 경기 운영은 오히려 새로운 변수로 다가왔다.
 
특히 임혜숙 선수와의 경기에서는 예상치 못한 고전이 이어졌다. 두 번째 게임을 내준 데 이어 세 번째 게임에서도 리드를 허용하며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수많은 국제대회에서 단련된 집중력과 경기 운영 능력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침착하게 흐름을 되찾은 현 위원장은 결국 경기를 뒤집으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경기 후 현정화 위원장은 "생각보다 많이 깎이고 밀리는 공이 들어오고 박자도 달라 당황했다"며 "선수들과 하는 경기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선수들은 서로 공격을 주고받는 패턴이 많은데 생활탁구는 연결이 길고 예상하지 못한 구질이 많다"며 "이제는 내가 다 치려고 하기보다 연결도 하면서 적응해야 할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날 경기장에서는 세계마스터즈만의 독특한 풍경도 연출됐다.
 
덴마크의 피아 톨회이와 맞붙은 경기에서는 국제탁구연맹(ITTF) 회장이자 이번 대회 참가 선수인 페트라 쇠링 회장이 직접 상대 벤치에 앉아 응원에 나섰다. 피아 톨회이는 페트라 회장의 복식 파트너로도 활동하고 있다.
 
반면 한국 벤치에는 박상준 한국마사회 감독과 함께 열성 탁구인으로 알려진 채문선 전 대한탁구협회 부회장이 자리해 현 위원장을 지원했다. 경기장 주변에는 이태성 조직위원장을 비롯한 대회 관계자와 국내외 동호인들이 모여 현정화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박수와 탄성을 보냈다.
 
현정화라는 이름이 갖는 상징성은 특별하다. 그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개인단식, 복식, 혼합복식, 단체전 우승을 모두 차지한 이른바 '풀하우스'를 달성한 세계 탁구사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이날 경기장에서는 과거의 영광보다 현재를 함께 즐기는 분위기가 더 강했다. 세계적인 탁구 스타와 생활체육 동호인이 같은 코트에서 땀을 흘리고, 승패를 떠나 웃으며 교류하는 모습은 세계마스터즈가 추구하는 가치와 의미를 그대로 보여줬다.
 
현 위원장과 접전을 펼친 임혜숙 선수 역시 잊지 못할 경험을 전했다.
 
경남 양산 네오탁구장에서 활동하는 생활체육 동호인인 임 선수는 "같은 조에 현정화 감독님이 계신 것을 보고 솔직히 부담이 됐다"며 "그런데 막상 경기를 해보니 편안하게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고, 어려운 서브보다는 랠리를 이어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 생겼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 출전은 현 위원장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는 이번 대회 참가 신청을 가장 먼저 한 '1호 선수'다. 집행위원장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으면서도 직접 선수 등록을 하고 코트에 나섰다.
 
대회 개막 전부터 그는 "세계마스터즈는 우승만을 위한 대회가 아니라 전 세계 탁구인들이 함께 즐기고 교류하는 축제의 장"이라고 강조해 왔다.
 
그럼에도 승부사 기질은 여전했다.
 
개막 전 인터뷰에서 "그래도 1등을 해야겠다는 생각부터 든다"고 웃으며 말했던 그는 이날 경기 후에도 "우승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올라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제 진짜 승부가 시작된다.
 
현 위원장이 출전하는 여자 55~59세부 단식 본선은 128강 토너먼트 방식으로 오는 9일부터 진행된다. 예선을 무패로 통과했지만 우승까지 가는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이번 부문에는 국내 생활탁구 최강자로 평가받는 노미화 선수와 세계마스터즈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금메달을 획득한 방정화 선수 등 강력한 우승 후보들이 대거 출전해 있다. 여기에 생활탁구 특유의 다양한 구질과 예측 불가능한 경기 운영 역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올림픽 금메달과 세계선수권 제패라는 화려한 경력도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 무대. 하지만 현정화는 여전히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대회를 이끄는 집행위원장이자 한 명의 선수로 다시 라켓을 든 그의 발걸음은 세계마스터즈가 추구하는 도전과 화합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편, 예선 일정을 마친 XIOM 2026 강릉세계마스터즈탁구선수권대회는 본격적인 토너먼트에 돌입하며 세계 각국 생활체육 탁구인들의 열전 속에 대회 열기가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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