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챗GPT는 글을 쓰고, AI는 의사의 진단을 돕고, 로봇은 공장을 움직인다. 금융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자산관리는 알고리즘이 수행하고, 보험 심사는 AI가 대신하며, 고객 상담마저 챗봇이 처리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AI가 금융회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기술 혁명에는 역설이 존재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인간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는 영역이 있다. 보험이 대표적이다. 보험은 계약서와 숫자로 시작하지만 결국 사람의 삶을 다루는 산업이다. 질병과 사고, 노후와 죽음이라는 인생의 가장 불확실한 순간을 함께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은 최근 “AI 시대일수록 고객에게 정서적 만족과 감동을 전할 수 있는 아날로그적 체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객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세심한 손길이 보험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디지털 전환이 거세게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교보생명이 전속 설계사(FP) 중심 체제를 유지하는 이유이자 신창재 경영철학의 핵심이다.
흥미로운 점은 신창재가 결코 기술을 외면하는 경영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보험업계 최초 수준의 마이데이터 사업을 추진했고, 헬스케어 플랫폼을 구축했으며, 그룹 차원의 AI 전략에도 적극 투자하고 있다. 한 손으로는 전통 보험사업을 강화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디지털 혁신을 추진하는 이른바 ‘양손잡이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신창재의 금융기업가정신은 AI와 인간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AI를 적극 활용하되 인간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길을 찾는 데 있다. 그것이야말로 AI 시대 금융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인지도 모른다.
의사에서 보험인으로, 사람을 치료하던 시선은 변하지 않았다
신창재 회장의 경력은 한국 금융권에서 가장 독특하다. 그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산부인과 교수였다. 일반적인 금융인이나 기업인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1996년 부친인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의 권유로 경영에 참여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의사 출신이 보험회사를 제대로 경영할 수 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신창재는 2000년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한 이후 교보생명을 국내 대표 생명보험사로 성장시켰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저금리 시대를 거치면서도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유지했고, 생명보험업계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구축했다.
그의 경영에는 의사 시절의 철학이 깊게 배어 있다. 의사는 환자의 병을 치료한다. 보험인은 고객의 위험을 관리한다. 대상은 다르지만 결국 사람의 삶을 지키는 일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신창재는 보험을 단순한 금융상품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생명보험을 사회안전망으로 인식한다. 실제로 그는 보험이 인생 여정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와 질병으로 역경에 부딪혔을 때 다시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라고 강조한다. 이는 보험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지원하는 것이라는 관점이다.
이러한 철학은 교보생명의 이해관계자 중심 경영으로 이어졌다. 고객뿐 아니라 설계사와 임직원, 지역사회가 함께 성장해야 기업도 지속가능하게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단기 수익보다 장기 신뢰를 중시하는 경영이 가능했던 배경도 여기에 있다.
많은 금융회사가 실적 중심 경영에 집중하는 동안 신창재는 고객 가치와 신뢰를 반복해서 강조했다. 단기적으로는 비효율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AI 시대일수록 인간의 가치가 더 커진다
AI가 금융산업을 바꾸고 있다. 고객 상담은 챗봇이 대신하고, 투자 자문은 알고리즘이 수행한다. 보험 설계 역시 상당 부분 자동화가 가능해졌다. 이런 흐름 속에서 많은 보험사가 설계사 조직을 축소하거나 GA 중심 판매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그러나 신창재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는 AI 시대일수록 인간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보험은 단순한 상품 판매가 아니라 고객과의 신뢰 관계 위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고객은 보험 약관을 사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안심을 산다. 그리고 안심은 기술만으로 제공하기 어렵다.
교보생명이 전속 FP 체제를 유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창재는 FP를 단순한 영업사원이 아니라 고객 인생의 페이스메이커로 본다. 보험 가입부터 유지, 보험금 지급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는 구조가 장기적인 고객 신뢰를 만든다고 믿는다.
실제로 교보생명의 계약 유지율은 업계 최고 수준이다. 설계사 정착률 역시 경쟁사 대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영업 성과가 아니라 신뢰 기반 관계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AI는 위험을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고객의 불안을 위로하지는 못한다.
AI는 최적의 보험 상품을 추천할 수 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객의 슬픔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AI는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신뢰를 형성하지는 못한다.
신창재는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이 제공할 수 있는 공감과 정서적 가치가 더욱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보험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앞으로 AI가 확산될수록 인간만이 제공할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모든 산업의 핵심 과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양손잡이 경영, 보험회사를 AI 기업으로 진화시키다
신창재를 단순히 인간 중심 경영자로만 평가하는 것은 절반만 보는 것이다.
그는 동시에 디지털 혁신을 강하게 추진해 온 경영자다.
신창재는 오래전부터 보험산업의 미래가 데이터와 AI에 있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물이 마이데이터 사업과 헬스케어 플랫폼, 디지털 보험사 육성 전략이다.
교보생명은 보험업계 최초로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출시하며 고객 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서비스를 강화했다. 이를 통해 단순 보험 판매를 넘어 자산관리와 건강관리까지 아우르는 플랫폼 구축에 나섰다.
헬스케어 사업도 마찬가지다. 교보생명은 헬스케어 자회사 교보다솜케어를 설립하고 건강관리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보험금을 지급하는 회사에서 고객의 건강을 관리하는 회사로 변신하려는 시도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AI가 있다.
고객 데이터를 분석하고, 건강 상태를 예측하며,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AI는 핵심 기술이 된다. 신창재는 보험의 미래를 단순한 보장 산업이 아니라 데이터 기반 플랫폼 산업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교보생명이 디지털 전문 보험사인 교보라이프플래닛을 꾸준히 지원해 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단기 실적만 본다면 어려운 선택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디지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라고 볼 수 있다.
신창재는 기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만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더 잘 돕는 방향으로 사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그의 디지털 전략은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가치 창출을 목표로 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AI 시대, 상부상조 정신을 디지털로 확장하다
신창재 경영철학의 핵심은 상부상조다.
그는 기업이 주주만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라 고객과 임직원, 지역사회가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라고 본다.
최근 교보생명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AI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 것도 같은 철학의 연장선에 있다. 상대적으로 AI 교육 기회가 부족한 중소기업들에게 생성형 AI 활용 교육을 제공하며 디지털 격차 해소에 나선 것이다.
이는 단순한 사회공헌 활동이 아니다.
AI는 앞으로 생산성과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인프라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은 빠르게 적응하겠지만 중소기업은 그렇지 못할 수 있다. 신창재는 이러한 격차를 줄이는 것이 결국 사회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교보생명이 운영하는 다윈서비스 역시 같은 맥락이다. ‘함께 성장하고 함께 발전한다’는 의미를 담은 다윈은 이해관계자 중심 경영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신창재는 AI를 단순한 기술 혁신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더 많은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드는 도구로 본다.
AI 시대의 상부상조는 결국 기술을 공유하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
신창재는 전통적 보험인의 역할을 넘어 AI 시대 사회적 리더십의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AI 혁명은 이미 시작됐다.
앞으로 금융산업은 더욱 빠르게 디지털화될 것이다. 보험 심사와 고객 상담, 자산관리의 상당 부분이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가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신창재 회장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일찍 이해한 경영자다.
그는 AI를 도입하면서도 인간을 포기하지 않았다.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면서도 고객과의 신뢰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남겨두었다. 보험회사를 데이터 기업으로 변화시키면서도 인간의 온기를 지키려 했다.
어쩌면 이것이 신창재 금융기업가정신의 본질일 것이다.
AI 시대의 승자는 가장 뛰어난 기술을 가진 기업이 아닐 수도 있다. 기술을 활용하면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기업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
신창재가 보여주는 실험은 바로 그 미래를 향하고 있다.
:SWOT 분석:
Strengths(강점)
국내 생명보험업계 유일의 오너 CEO로서 장기 전략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다. 전속 FP 중심 영업망과 높은 계약 유지율은 강력한 경쟁력이다. 마이데이터, AI, 헬스케어 등 미래 사업에 대한 선제적 투자도 강점이다. 이해관계자 중심 경영과 높은 브랜드 신뢰도 역시 차별화 요소다.
Weaknesses(약점)
의사결정이 다소 신중해 대형 M&A 기회를 놓쳤다는 평가가 있다. 디지털 사업 부문의 수익화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점도 과제다. 일부 신사업은 아직 성과가 제한적이며 투자 부담이 지속되고 있다.
Opportunities(기회)
초고령사회 진입으로 건강관리와 헬스케어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AI, 마이데이터, 디지털 보험, 금융지주 전환은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SBI저축은행 인수를 계기로 종합금융그룹 도약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Threats(위협)
저출산과 인구 감소는 생명보험업 성장 기반을 약화시킨다. 빅테크와 플랫폼 기업의 금융 진출도 위협 요인이다. 보험산업의 저성장 구조와 금리·시장 변동성 확대 역시 지속적인 부담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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