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석좌교수/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반도체 수퍼 사이클에 힘입은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서 내려오지 않는 기현상이 장기화하고 있다. 올해 1~4월 경상수지 흑자는 1026억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240억달러)의 4.3배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다. 이렇게 달러를 많이 버는데도 환율이 고공 행진하고 있다.
우선 경상수지 포괄범위가 한 국가가 외국과 상품 및 서비스를 사고팔거나 자본을 투자하여 벌어들인 돈과 지급한 돈의 차이를 뜻하는 종합적인 경제 지표이기는 하지만 과거와 조금 달라진 점을 이해 해야 한다.국제통화기금(IMF)은 2010년 1월 국제수지매뉴얼 제6판(BPM6 :Balance of Payments Manual 6th ed.)을 공표하면서 해외생산을 통한 가공무역과 중계무역의 계상방법을 변경했다. 가장 큰 차이는 한국의 해외기업이 한국에서 원재료를 가져가서 가공해서 수출하는 경우 한국에서 원재료가 나가는 시점 즉 통관기준에 수출로 잡는 것이 아니고 해외에서 가공해서 수출할 때 수출로 잡게 된다. 이로 인해 중국 미국 인도 등 해외 기업활동이 많은 한국의 경우에는 경상수지가 한국의 통관기준 수출입 통계보다 많이 계상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지금 통계상의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와 환율을 연결하는 데는 큰 흐름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일부분 무리가 따른다.
그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막대한 수출과 경상수지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의 뉴노멀을 지속하는 데는 그 만한 문제점이 있다. 과거 2000~2020년 평균 원·달러 환율은 1128.9원이었는데 이 수준이 2021년 이후 1300원대로 상승한 후 지금은 지난달 15일 1500원 선을 넘은 뒤 14거래일 연속 15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최장 기간이다. 1500원대가 뉴노멀이 된 것이다. 그런데 반도체 수퍼 사이클에 힘입은 한국의 수출은 금년에 1조 달러를 내다보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고환율로 수출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미국 빅테크들의 한국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 수입의 폭발적인 증가로 수출이 큰 폭 증가하고 있는데도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의 뉴노멀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기업들이 수출 대금을 국내로 들여와 원화로 바꾸지 않고 해외에 재투자하려고 쌓아두는 것도 원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미국 관세 압박으로 기업들이 해외 현지 투자를 늘린 영향도 있지만, 노란봉투법 등 반기업·친노조 정책이 국내 투자를 가로막은 측면도 있다. 환율은 경제 펀더멘털(기초 체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다. 원화 가치 하락은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경고로 봐야 한다.
수출기업 국민연금 서학개미 등 거주자의 달러 해외보유 급증에 따른 달러 수요 급증이 환율상승의 가장 큰 원인이다. 국민연금 서학개미 기업이익해외보유를 합하면 8272억 달러 수준으로 파악되고 있다. 환율 상승으로 환차익을 예상한 외화예금도 증가하고 있다. 거주자의 달러 투자 급증 배경으로는 한미 간 성장률 격차가 중요한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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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간 잠재성장률도 한국은 하락을 지속하는 반면 미국은 상승 중 이다. 한편 국가채무 (돈풀기)는 급증하고 있다. 통화량도 증가율이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다. 미국은 총통화(M2) 증가율이 4~5% 수준인데 비해 한국은 8~9% 수준에 이르고 있다. 한미 간 금리격차도 지속되고 있다. 소규모 개방경제임에도 코로나 극복기에 미국의 금리인상 보다 낮은 금리인상의 여파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환율이 시장의 심리적 저항선을 돌파할 경우 단기간에 급등할 우려가 있다. 1997년 12월 경우 1500원 돌파 하루만에 1700원 돌파하고 13일 만에 1900원 돌파한 적이 있다. 이 경우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투자자 투자금 급격한 회수, 단기외채와 장기외채 중 1년 내 만기가 돌아오는 외채 (이를 합해 유동외채라고 함)의 만기연장이 안되면서 외환부족 사태 발생 우려 (1997년 외환위기)도 배제할 수 없다.
외환시장 안정 방안으로는 △기업 투자환경 획기적 개선 (정책기조 대전환) 즉 시장이 신뢰할 수 있도록 투자환경 획기적 개선으로 기업이 국내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업 증권사 금융회사 국민연금 등 압박하는 대증요법으로는 해결 난망이다. △선심성 돈풀기중단, 제한된 재정은 성장동력 확충에 투자해야 한다. △한미간 통화스왑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마스가 필요, 한국은 통화스왑필요) 단기적으로는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비중을 줄이는 대신 국내 투자를 확대할 필요도 있으나 이러한 정책은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의 수익률 하락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지금처럼 위급한 시기에 단기에 한정해야 한다.
과거 환율이 1500원을 넘었던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국가 부도 위기가 고조돼 나라 전체가 패닉에 빠졌지만 지금은 위기감이 덜한 것이 사실이다. 경제 위기 상황이 아닌 데다 반도체 등 주력 산업의 수출 호조로 기업 실적이 개선되고 주가가 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환율은 방심해선 안 된다는 신호다. 고환율은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고물가와 고금리라는 악순환을 낳고, 경제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환율 상승의 혜택은 일부 수출 기업에 집중되는 반면, 고환율의 비용은 모든 국민이 나눠지게 된다. 특히 저소득층과 자영업자, 영세 중소기업 등 취약 계층이 물가 상승의 직격탄을 맞는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1% 올라 26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고물가 압력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이 역시 고환율 부작용이다.
정부는 고환율 불안이 더 커지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고환율·고물가를 심화시킬 수 있는 재정 확장은 신중해야 한다. 수입 물가 급등이 인플레이션으로 번지지 않게 물가를 관리하고, 다가올 금리 인상이 한계 기업과 자영업자 연쇄 부실로 이어지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노동·규제 개혁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을 키워야 한다. 마침 지방선거가 끝나고 다음 총선까지는 2년 가까운 시간이 남았다.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 유혹에서 벗어나 경제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골든타임’으로 사용했으면 한다.
최근 금융시장은 △저성장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폭등하고 △주가 폭등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은 급등하는 지속하기 어려운 저성장 고주가 고환율의 건전하지 못한 심각한 불균형 현상이 노정되고 있는 모습이다. 저성장기에는 주가 하락, 주가 상승기에는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으로 원·달러 환율 하락이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지금은 그 반대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원·달러 환율이 시장의 심리적 저항선을 돌파할 경우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 외채 만기 연장 어려움 증대로 외환부문에서 큰 위기 발생도 우려되는 상황인데 그러한 현상으로 발생한 위기가 1997년 12월 외환위기다. 최근 성장률은 위기 기간을 제외하고는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잠재성장률도 하락을 지속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의 고공행진으로 정부의 '물가 안정 총력전'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이미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로 올라선 가운데 연일 치솟는 환율이 수입물가상승을 통해 추가로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어서다. 특히 그동안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던 외식물가도 소비 개선세와 원가 상승으로 오름폭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7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1%로 2024년 3월(3.1%) 이후 2년 2개월 만에 최대 폭 상승했다. 중동전쟁 장기화로 고유가 상황이 계속되고 있어 이달에는 물가 상승률이 더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지난달 계란값이 전년 동월 대비 10% 넘게 오르는 등 상승세가 계속되고 있는 데다 이른 폭염으로 채소 가격까지 오르면 물가 상승률은 더 치솟을 수 있다.
이에 정부는 '물가 총력전'을 선언하고 민생물가 안정을 위해 할인 지원과 공급 확대 등 가용수단을 총동원할 방침이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4일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정부는 불확실성이 상수가 된 시기에 비상한 각오로 민생물가 안정에 선제적으로 총력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고공행진하는 환율이 물가 불안을 더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고환율은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국내 소비자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수입물가는 통상 한두 달 정도의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되는 점을 고려하면 하반기 중 물가는 더 오를 전망이다.
물가가 오르면서 일자리구하기가 어려운 바닥 민생경제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수출이 잘되고 경제가 성장한다는데 자영업자들을 손님이 끊겨 저녁 장사를 공치는 날이 허다하다며 외환위기 때보다 더 살기 퍽퍽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외형적으로는 성장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특정 산업만 독주하고 나머지는 고사하는 K자형 양극화의 짙은 그늘에 가려져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KDI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높게 잡은 배경에는 인공지능(AI) 열풍에 따른 반도체 수요 폭발이 자리 잡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필두로 한 반도체 기업들이 역대급 실적을 갈아치우며 증시와 수출을 강력하게 견인한 결과다.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37%를 돌파하며 단일 품목에 대한 의존도가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수출 회복세와 무역수지 흑자의 대부분이 반도체 한 곳에서 발생한 착시인 것이다. 주식시장 역시 기술주 중심의 랠리가 이어지며 온기가 도는 듯 보이지만, 정작 이러한 온기는 경제 전반으로 퍼지지 못하고 반도체와 관련 대기업이라는 한정된 영역에만 머물고 있다. 통계학적 착시가 민생의 고통을 가리고 있는 셈이다.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 제조 분야와 내수 시장은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다. 고물가로 인해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떨어지면서 소비 부진의 늪에 빠진 모습이다. 자영업자들은 불어난 대출 이자와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해 최근 몇 년 새 폐업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2024년 폐업 신고 사업자는 100만8282명으로 처음 100만명을 넘어섰다. 아울러 지난해 자영업자 실업급여 수급자는 3820명, 지급액은 205억2600만원으로 각각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중소기업 가동률 역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외형상 경제는 커졌는데 국민의 지갑은 더 얇아지는 양극화 불황이 지속되는 모습이다.
반도체 중심의 성장이 가진 또 다른 한계는 고용 유발 효과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반도체와 AI 산업은 대규모 장치와 기술이 중심이 되는 자본집약적 산업이다. 수조원의 투자가 이뤄져도 실제 창출되는 직접 고용 인원은 전통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KDI에 따르면 생산액 10억원이 증가할 때 발생하는 취업자 수는 반도체 산업이 2.1명으로 전체 제조업 평균(6.2명)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대기업의 막대한 수익이 가계 소득 증대와 고용 확대로 이어지는 낙수효과는 사실상 소멸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반도체 등 일부업종의 수출 호황에도 제조업은 5만5000명, 건설업은 8000명 줄며 각각 22개월, 24개월 연속 감소했다.
이 같은 고용 구조의 변화는 청년 세대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4월 고용동향을 보면 지난 4월 15세 이상 취업자는 2896만1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7만4000명(0.3%) 증가했다. 그러나 청년층 취업자는 1년 전보다 19만4000명 감소했다. 이는 2022년 11월부터 42개월 연속 감소세다. 청년층 고용률 역시 1년 전보다 1.6%포인트 하락한 43.7%로 2024년 5월 이후 24개월 연속 하락세다. 결과적으로 소수의 첨단 산업 종사자들은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반면, 대다수 청년과 서민들은 일자리조차 구하지 못해 소득 양극화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K자형 노동시장이 고착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가는 급등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조선 방산 바이오 등 글로벌 경쟁력으로 선전하고 있는 산업 주가가 급등하고 있는 가운데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선임 3% 룰, 배당증액, 자사주 소각 등 대주주는 압박하고 소액주주 권리는 강화하는 등 인위적 주가 부양 정책도 한 몫 하고 있다.
지금 한국의 금융시장은 저성장 고주가 고환율의 건전하지 못한 불균형 현상이 노정되면서 잘 못하면 제2의 외환위기를 우려할 정도의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의 신뢰가 회복되어야 해외에 막대한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수출기업들이 한국에 투자하려고 돌아올 것이고 국민연금 서학개미들도 국내투자로 회귀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 정부의 엄청난 정책기조의 대전환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만약 제2의 외환위기가 온다면 선진국 초입까지 도약해 있는 한국경제가 추락하게 되어 국민이 도탄에 빠짐은 물론 현 정부도 실패한 정부가 되어 역사에 큰 죄를 짓는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될 것이므로 지금은 지체 없이 시장을 압박하는 정책에서 시장의 신뢰를 얻는 정책으로 대전환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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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제학과 ▷맨체스터대 경제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석좌교수 ▷한국국제금융학회장 ▷고려대 경제학과·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 ▷자유시장연구원장 ▷서울지방시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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