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기본·원칙·상식] 의대보다 반도체, 대한민국 인재 지도가 바뀌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 입시 지형에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계약학과 합격선이 서울대 자연계열을 넘어섰고 일부 학과는 지방권 의대보다도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한양대 반도체공학과는 지방 의대를 앞질렀고 고려대 반도체공학과 역시 의대 수준에 근접했다. 의대가 최상위권 학생들의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였던 시대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난 것이다. 대한민국 산업 구조와 인재 지형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지나친 의대 쏠림 현상을 겪어 왔다. 우수한 이공계 인재들이 연구실과 공장보다 병원을 선택했고, 국가 전략산업은 인재 부족을 걱정해야 했다. 개인에게는 합리적 선택이었지만 국가적으로는 아쉬움이 남는 구조였다. 

반도체 계약학과의 약진은 이러한 흐름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학생과 학부모는 누구보다 현실적이다. 미래가 있는 산업과 안정적인 일자리,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를 선택한다. 반도체 계약학과의 인기는 결국 AI 시대를 이끌 핵심 산업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시장의 평가다.

반도체 계약학과의 성공은 시작일 뿐이다. 이제는 국가 차원에서 미래 산업 인재 양성 체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켜야 한다. 반도체에 이어 방위산업, 피지컬 AI, 로봇, 우주항공, 양자기술 등 국가 전략산업으로 계약학과 모델을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근 세계 산업 질서는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AI 혁명은 반도체를 넘어 피지컬 AI 시대로 확장되고 있다. 공장과 물류창고, 병원과 건설현장, 국방 분야에서 인간처럼 움직이고 판단하는 지능형 로봇이 등장하고 있다. 

제조업 강국인 한국은 피지컬 AI 시대에 오히려 더 큰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와 배터리, 자동차, 조선, 기계 산업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AI 기술이 결합하면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문제는 결국 사람이다. 산업의 미래는 인재가 결정한다.

방산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한국 방산은 세계 시장에서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다. K2 전차와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각종 미사일 체계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방산은 더 이상 단순한 무기 생산 산업이 아니다. AI와 로봇, 반도체, 드론, 우주기술이 결합되는 첨단 산업의 집합체다.

그런데도 한국 대학 입시 구조는 여전히 과거 산업 시대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계약학과가 성공했다면 이제는 방산 계약학과, 피지컬 AI 계약학과, 첨단 제조 계약학과 등으로 확대하는 논의가 필요하다. 산업계와 대학, 정부가 함께 인재 양성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대만에는 TSMC와 대학이 연결된 인재 생태계가 있다. 한국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넘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LIG넥스원, HD현대, 현대차 등 미래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들과 대학이 함께 인재를 키우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반도체 계약학과가 서울대 자연계열을 넘어섰다는 사실은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의대 열풍을 비판하는 데 그칠 일이 아니다. 국가가 미래 산업 인재에게 더 큰 기회를 제공하고, 대학이 새로운 산업 수요에 맞춰 변화하며, 기업이 인재 양성에 적극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는 반도체 하나로 완성되지 않는다. 반도체 위에 방산이 있고, 방산 위에 피지컬 AI가 있으며, 그 위에 새로운 산업혁명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인재 정책도 그 속도에 맞춰 달라져야 한다. 국가 경쟁력은 결국 가장 우수한 청년들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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