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가 또다시 벼랑 끝에 섰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대표팀은 1승 2패로 A조 3위에 머물렀다. 32강 진출 여부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다른 조 경기 결과를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선수들은 “대가리 박고 뛰겠다”고 했다. 그 절박함은 이해된다. 그러나 한국 축구가 여기까지 밀린 책임을 선수들의 투지 부족으로 돌릴 수는 없다. 더 큰 문제는 그라운드 밖에 있다. 대한축구협회의 구조와 운영 방식이다.
대표팀 성적은 경기장에서 드러나지만, 실패의 뿌리는 행정에서 자란다. 감독 선임 과정, 전력 강화 시스템, 이사회 운영, 책임 소재가 모두 불투명하면 어떤 감독이 와도 같은 논란은 반복된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과 경질, 파리올림픽 진출 실패, 홍명보 감독 선임 논란, 승부조작 관련 징계자 사면 추진까지 최근 몇 년간 축구협회가 보여준 모습은 일관됐다. 판단은 폐쇄적이었고, 설명은 부족했으며, 실패 뒤에는 책임이 사라졌다.
문화체육관광부 감사에서도 감독 선임 절차의 문제가 지적됐다. 절차가 흔들리면 대표팀의 권위도 흔들린다. 팬들이 분노한 이유도 성적 하나 때문이 아니다. 공정하지 않은 과정, 납득할 수 없는 의사결정, 책임지지 않는 조직 문화가 누적됐기 때문이다.
축구협회는 한국 축구의 최고 행정기관이다. 대표팀만 관리하는 곳이 아니다. 유소년 육성, 지도자 교육, 심판 시스템, 여자축구, 생활축구, K리그와의 협력, 국제 경쟁력 강화까지 한국 축구의 토대를 책임지는 조직이다. 그런 기관이 특정 인맥과 관행, 내부 논리에 갇혀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면 한국 축구의 미래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행정이 전문화되지 않으면 경기력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2002년 한일월드컵의 성공은 히딩크 감독 한 사람의 능력만으로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었다. 당시 대표팀은 이름값보다 실력, 관행보다 기준, 체면보다 준비를 앞세웠다. 체력과 조직력, 과학적 훈련, 공정한 선수 선발이 결합됐다.
대한축구협회 개혁은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니다. 첫째, 감독 선임 절차를 공개 가능 범위 안에서 제도화해야 한다. 후보군 구성, 평가 기준, 회의 기록, 의사결정 권한을 명확히 해야 한다. 둘째, 전력강화위원회가 형식적 기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독립성과 전문성을 보장해야 한다. 셋째, 협회 이사회 구성과 의결 구조를 개방해야 한다. 축구인 출신뿐 아니라 행정, 법률, 회계, 스포츠 과학, 팬 대표성이 반영돼야 한다. 넷째, 실패에 대한 책임 체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대표팀 실패 때마다 감독만 바꾸고 협회는 그대로 남는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독 한 사람의 교체가 아니다. 대한축구협회 운영 구조의 전면 개편이다. 한국 축구의 미래는 선수들의 투지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공정한 절차, 전문적 행정, 책임지는 리더십이 함께 있어야 한다. 대한축구협회가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한국 축구의 미래도 없다. 지금의 위기는 성적 부진이 아니라 신뢰 붕괴의 문제다. 축구를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려놓는 일은 협회 개혁에서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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