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6세기 마하비라가 체계화한 자이나교는 2천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도 사회 곳곳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왕조를 세우거나 제국을 건설하지도 않았고, 다른 종교처럼 대대적인 선교 활동을 벌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자이나교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가장 철저한 실천으로 답한 종교였다. 바로 그 실천이 인도의 경제와 문화, 그리고 사회윤리를 바꾸는 원동력이 되었다.
자이나교는 인간이 가진 가장 큰 자산을 재산이 아니라 신뢰라고 보았다. 돈은 벌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지만, 신뢰는 한순간에 무너지면 다시 세우기가 어렵다. 그래서 자이나교 신도들은 정직을 최고의 경쟁력으로 여겼다. 거래에서는 거짓을 멀리하고, 약속은 반드시 지키며, 부당한 이익을 경계하는 것이 곧 수행이었다. 이러한 윤리는 자연스럽게 상업과 금융, 보석, 직물, 무역 분야에서 자이나 공동체의 높은 평판으로 이어졌다.
오늘날에도 인도 경제를 이야기할 때 자이나 공동체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인구 비중은 크지 않지만, 기업가와 상인, 금융인, 보석업 종사자 가운데 자이나교 신도가 적지 않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능력 때문만이 아니라 오랜 세월 축적된 신뢰와 윤리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계약을 지키고, 정직하게 거래하며, 사회에 환원하는 문화는 공동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가장 큰 자산이었다.
최근 세계 경제의 중요한 화두인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는 자이나교의 전통을 떠올리게 한다. 환경은 자연을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생명의 공동체로 바라보는 자이나교의 세계관과 연결된다. 사회는 약자를 보호하고 모든 생명을 존중하며 공동체의 신뢰를 지키려는 자이나교의 윤리와 닮아 있다. 지배구조는 정직과 책임, 투명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자이나교의 경제철학과 깊은 공통점을 지닌다.
오늘날 많은 기업들이 ESG를 새로운 경영전략으로 채택하고 있지만, 자이나교는 이미 2천500년 전부터 이를 삶 속에서 실천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은 이윤만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사회와 자연을 함께 책임지는 공동체라는 생각은 자이나교의 오래된 지혜였다.
기후위기 또한 자이나교를 다시 주목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그 대가로 지구 생태계는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이상기후와 생물다양성의 감소, 산림 파괴와 해양오염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초래한 결과이기도 하다. 자이나교는 오래전부터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을 해치는 것은 결국 인간 자신을 해치는 일이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생명존중 사상은 자이나교의 엄격한 채식주의에서도 잘 드러난다. 채식은 단순한 식생활의 선택이 아니라 비폭력과 자비를 실천하는 수행이다. 가능한 한 다른 생명의 희생을 줄이려는 노력은 오늘날 환경보호와 동물복지, 건강한 식문화라는 가치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현대 사회가 새롭게 발견한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은 자이나교에서는 오래전부터 일상의 수행이었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윤리는 더욱 중요해진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양심은 더욱 큰 시험대에 오른다. 자이나교는 발전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발전이 인간의 탐욕을 키우는 방향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고 공동체를 풍요롭게 하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세계가 지속가능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찾고 있는 오래된 지혜이다.
문명의 수준은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보다 얼마나 절제할 줄 아느냐에 달려 있다. 국가도 기업도 개인도 끝없는 성장만을 추구한다면 결국 자연과 인간 모두를 소진시키게 된다. 그러나 절제를 바탕으로 한 성장은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자이나교가 오늘날에도 미래지향적인 종교로 평가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풍요보다 품격을, 속도보다 지속가능성을, 경쟁보다 공존을 먼저 생각하는 문명이야말로 인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라는 사실을 2천500년 전부터 일깨워 왔기 때문이다.
경전이 전하는 영혼의 자유ㅡ AI 시대가 다시 만나는 자이나교의 지혜
자이나교는 수행을 중시하는 종교이지만, 수행은 결코 경험만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스승에서 제자로, 제자에서 다시 다음 세대로 전해진 가르침은 오랜 세월 구전을 거쳐 경전으로 정리되었다. 이 경전들은 단순한 교리집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욕망을 다스리고 영혼을 자유롭게 할 것인지를 가르치는 삶의 교과서였다.
자이나교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 전통은 《아가마(Āgamas)》이다. 이는 마하비라의 설법과 초기 교단의 가르침을 토대로 전승된 문헌으로, 수행자의 계율과 공동체의 운영 원칙, 명상과 윤리, 해탈의 길을 폭넓게 담고 있다. 특히 흰옷파(Śvētāmbara)는 이를 가장 권위 있는 정전으로 존중하며 오늘날까지 이어 오고 있다. 다만 나체파(Digambara)는 원래의 아가마가 전승 과정에서 소실되었다고 보아 별도의 문헌 전통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차이는 있지만, 양 전통 모두 마하비라의 근본 가르침인 비폭력과 무소유, 자기 절제를 자이나교의 핵심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자이나교 철학을 가장 체계적으로 정리한 고전은 《타트바르타 수트라(Tattvārtha Sūtra)》이다. 이 책은 자이나교 양대 전통이 모두 권위를 인정하는 드문 경전으로 평가된다. 여기에는 영혼(Jīva)과 비영혼(Ajīva), 업(Karma), 윤회, 해탈(Moksha)의 원리가 논리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특히 "참된 실재를 올바르게 아는 것이 해탈의 시작"이라는 사상은 이 경전 전체를 관통한다. 인간은 세상을 바꾸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이해해야 하며, 자신의 탐욕과 분노, 집착을 이겨낼 때 비로소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널리 알려진 《칼파 수트라(Kalpa Sūtra)》는 마하비라의 생애와 수행, 초기 교단의 역사, 수도승 공동체의 규율을 담은 문헌이다. 마하비라의 탄생과 출가, 깨달음, 교화 활동, 열반에 이르는 과정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자이나교 신자들이 가장 친숙하게 읽는 경전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자비와 절제, 공동체를 위한 삶을 강조하는 내용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이들 경전은 서로 성격은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된 메시지를 품고 있다. 인간의 가장 큰 적은 외부의 경쟁자가 아니라 자기 안의 탐욕과 분노, 교만이라는 것이다. 남을 이기는 것보다 자신을 이기는 일이 어렵고도 위대한 수행이며, 영혼은 타인을 지배할 때가 아니라 자신을 다스릴 때 자유로워진다는 가르침이다.
이 점에서 자이나교는 오늘날 인공지능 시대에도 놀라운 시사점을 던진다. 생성형 AI는 인간의 능력을 크게 확장하고 있지만, 동시에 인간에게 새로운 윤리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기술은 어디까지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가. 효율성과 생명 존중이 충돌할 때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알고리즘은 인간의 양심을 대신할 수 있는가.
자이나교는 이러한 질문에 분명한 기준을 제시한다. 기술은 생명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인간의 존엄을 높이는 방향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탐욕과 폭력을 확대하고 인간성을 훼손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발전이 아니다. 발전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으로 평가되어야 하며, 문명은 힘이 아니라 책임으로 완성된다는 것이 자이나교의 일관된 철학이다.
오늘날 세계는 기후위기와 자원 고갈, 사회적 양극화와 윤리의 위기라는 복합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자이나교의 오래된 가르침은 오히려 새로운 미래의 언어가 된다. 절제 없는 소비 대신 지속가능한 삶을, 무한 경쟁 대신 공존을, 지배 대신 상생을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인류가 나아갈 길이라는 통찰이다.
기업은 이윤만을 추구하는 조직이 아니라 사회와 자연에 책임을 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정치는 권력을 위한 경쟁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봉사가 되어야 한다. 언론은 속보 경쟁보다 사실과 진실을 우선해야 하며, 교육은 지식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인격과 양심을 함께 키워야 한다. 과학은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AI 역시 생명을 존중하는 윤리 위에서 발전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도 쉽게 불안해하며, 빠르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깊이 고독한 시대를 살아간다. 자이나교는 이러한 시대를 향해 조용하지만 단호한 메시지를 전한다. 행복은 더 많이 갖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덜 집착하는 데 있으며, 자유는 더 큰 권력을 얻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욕망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데 있다는 것이다.
비폭력은 약자의 선택이 아니라 가장 강한 용기이며, 무소유는 가난을 미화하는 사상이 아니라 어떤 욕망에도 지배당하지 않는 정신의 독립이다. 절제는 성장을 멈추게 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여는 출발점이다.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기술의 부족이 아니라 지혜의 부족이다. AI는 인간의 손을 대신할 수 있지만, 인간의 양심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기계는 계산할 수 있지만 자비를 실천할 수는 없고, 알고리즘은 답을 제시할 수 있지만 선과 악을 스스로 선택하지는 못한다. 결국 미래 문명의 수준은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인간의 품격이 결정하게 될 것이다.
마하비라는 2천500여 년 전 "세상을 바꾸려면 먼저 자신을 이겨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 한마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문명의 기준이다. 생명을 존중하고, 욕망을 절제하며, 진실을 실천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인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자이나교는 오래된 종교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과 자연, 기술과 윤리가 함께 공존해야 하는 미래 문명을 비추는 가장 오래된 등불이다. 인류가 AI 시대의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는 지금, 자이나교가 남긴 영성은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더 많이 가질 것인가, 아니면 더 바르게 살아갈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국 미래 문명의 방향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