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토요타자동차가 차세대 전기차(EV) 개발을 중단하면서 부품 협력사에 손실 일부를 보상하기로 했다. 보상 규모는 수백억 엔(약 수천억원)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 토요타가 최신 기술을 집약한 차세대 EV 프로젝트를 중도에 접고 협력사 손실 보전까지 나서는 것은 이례적이다. 일본 완성차 업계가 전동화 전략을 재정비하는 가운데, 토요타도 판매 확대보다 수익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상품 전략을 손보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토요타가 고급차 브랜드 렉서스의 세단형 EV 'LF-ZC' 개발 중단에 따라 부품업체들의 손실 일부를 보전할 방침이라고 2일 보도했다. 중단 방침은 지난 5월 27일까지 관련 협력사들에 통보됐고, 같은 달 29일 외부에 알려졌다. LF-ZC는 2023년 공개된 콘셉트카로, 신형 고성능 배터리와 대형 알루미늄 주조 설비로 차체 부품을 한 번에 찍어내는 '기가캐스트' 기술을 적용할 예정이었다. 토요타가 차세대 EV 경쟁을 위해 내세운 상징적 모델이었다.
개발 중단의 여파는 협력사로 번지고 있다. 닛케이에 따르면 토요타 계열 주요 부품사들은 각각 수십억 엔 규모의 손실을 떠안을 전망이다. 손실 규모가 최대 100억 엔(약 960억원) 안팎에 이르는 업체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토요타가 이 중 일부를 보상하면 전체 보전액은 수백억 엔 규모로 불어날 수 있다.
협력사 손실이 커진 것은 LF-ZC가 기존 차량과 전혀 다른 제조 방식을 전제로 했기 때문이다. 기가캐스트는 여러 금속 부품을 용접해 차체를 만드는 기존 방식과 달리, 초대형 주조 장비로 대형 부품을 한 번에 성형하는 공법이다. 한 토요타 협력사 간부는 이를 "큰 기계로 붕어빵처럼 차를 만드는 방식"이라고 표현했다.
기가캐스트는 미국 테슬라가 EV 생산에 본격 도입한 뒤 차세대 제조 기술로 주목받았다. 부품 수를 줄이고 차체를 가볍게 해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대량 생산이 어렵고 불량률이 높다는 단점이 있다. 한 협력사 간부는 "차세대 제조 방식이 앞으로 주류가 될 것으로 보고 많은 공급업체가 뒤처지지 않기 위해 거액을 투자해왔다"고 말했다. 일부 대형 부품사는 전용 설비와 생산 라인 신설은 물론 공장을 아예 새롭게 짓는 작업까지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LF-ZC 개발 중단은 4월 출범한 토요타 새 경영진의 수익성 중시 노선과 맞물려 있다. 곤 겐타 신임 사장은 '손익분기 대수'라 불리는 경영지표를 중시한다. 이익을 내는 데 필요한 최소 판매 대수로, 이를 낮춰 판매가 줄어도 이익이 나는 체질을 만드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그는 5월 결산 기자회견에서 손익분기 대수를 낮추기 위해 생산 차종을 줄이는 방안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LF-ZC 개발 중단은 그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진다.
수년간 공들인 차세대 모델 개발이 무산되면서 토요타 내부의 충격도 컸다. 나카지마 히로키 부사장 겸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닛케이 등에 "LF-ZC 개발에 관여해 온 직원 중에는 눈물을 흘리며 아쉬움을 삼킨 기술자가 많이 있다.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LF-ZC에서 축적한 기술은 그대로 후속 차량에 적용할 것이다. 기술 개발은 계속한다"고 덧붙였다.
토요타 관계자는 닛케이에 협력사들이 양산 설비 투자까지 진행한 단계에서 개발을 접은 것은 토요타 역사상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하이브리드차 '프리우스'나 수소연료전지차 '미라이' 같은 차세대 차종을 투입할 때는 초기 채산성을 따지지 않고 내놓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닛케이는 이번 중단을 두고 채산을 따지지 않고 신기술 차종을 먼저 내놓고 보던 토요타의 상품 전략이 수익성 우선으로 바뀌고 있다고 짚었다.
일본 자동차 업계에서는 EV 개발 속도 조절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혼다는 지난 3월 플래그십 EV '제로 시리즈' 2개 차종을 포함해 3개 차종의 개발·판매를 중단하고 부품사 보상 협상에 들어갔다. 관련 보상비와 손상차손 등으로 2025회계연도에는 1조 2000억 엔 손실이 발생해 상장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냈다. 2026회계연도에도 5000억 엔 손실을 예상하고 있다. 부품업계는 채산성을 앞세운 토요타의 상품 전략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고 긴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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