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목표로 세운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의 2030년 완공'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기존의 순차적 행정 절차에서 벗어나 '원스톱 패스트트랙'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공장 부지 확보부터 전력·용수망 구축, 인재 확보와 정주 여건 조성까지 모든 과제를 동시에 추진하지 않으면 목표로 잡은 2030년 양산이 사실상 어렵다는 지적이다.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성공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는 참석자들이 한목소리로 '속도전'을 강조했다. 기존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과정에서 발생했던 행정·인프라 병목이 반복되면 안된다는 것이 골자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상묵 한국광기술원 본부장은 "용인은 부지, 보상, 환경, 전력, 용수 등을 순차적으로 처리하면서 거의 7년이 지났지만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이라며 "서남권은 부지 보상과 환경영향평가, 전력, 용수망, 도로, 건축 절차를 병렬적으로 진행하는 원스톱 패스트트랙으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서남권 클러스터는 기존 팹 건설 속도보다 더욱 촉박한 시간표에 맞춰야 한다. 전남·광주 통합특별시 측은 올해 7월부터 관련 절차에 착수해 3년 6개월~4년 안에 4개의 팹을 완공하고 2030년 양산에 들어가는 일정을 목표로 세웠다.
정부도 기존 사업 방식으로는 이 같은 시간표를 맞추기 어렵다는 데 공감했다. 김성열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성장실장은 "최근 부지가 빠르게 선정된 만큼 산업단지 조성 작업 등 이후 절차를 신속히 진행할 계획"이라며 "전력과 인력 등 모든 것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해 과거에 걸렸던 시간을 2배, 3배 단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날 일본 구마모토의 TSMC 공장이 대표적인 속도전 사례로 언급됐다. 정부 보조금과 중앙정부·지자체의 인프라 지원을 병행하면서 착공 후 22개월 만에 완공했다. 하지만 구마모토 2공장 건설 과정에서 교통과 기반시설 부족 문제가 불거졌다. 구마모토와 용인 등 기존 사례들을 교훈으로 삼아 서남권은 초기 단계부터 4개 팹 전체를 감당할 수 있는 인프라를 세심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력과 용수 문제가 최대 선결 과제로 꼽혔다. 김 본부장은 "중요한 것은 전력량 자체보다 팹 가동 시점에 맞춰 전력망을 구축하는 것"이라며 "345㎸급 송전선로와 변전소 확충을 비롯해 이중화된 전력 공급망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공장은 24시간 가동되는 데다 순간적인 전압 불안정에도 생산 차질이 발생할 수 있어 이중·삼중의 안정장치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인력 확보 역시 공장 건설과 동시에 풀어야 할 필수 과제다. 최첨단 반도체 팹은 초기 장비 반입과 생산라인 세팅 과정에서 숙련 엔지니어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수도권 인력의 이전 없이는 정상적인 가동이 어려운 현실이다.
김 본부장은 "200조원 규모 팹의 장비 가격만 150조원에 달할 수 있는데 이를 신입사원만 뽑아 돌릴 수는 없다"며 "초기 인재 확보의 핵심은 양성보다 정착"이라면서 정주여건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숙련 엔지니어가 가족과 함께 내려올 수 있도록 주거와 교육, 의료, 보육, 교통까지 묶은 정주 지원 패키지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지역 인재 양성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 서남권에는 최첨단 메모리 공정에 대응할 교육·연구 인프라가 아직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4개 팹의 직접 고용 인력은 총 3만명으로 예상되는데, 단기적으로 인력 미스 매칭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맹종선 전남대 반도체공동연구소 교수는 "대학이 연합해 공용 팹을 구축하고 기업 수요에 맞춘 현장형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이 필요하다"면서 "또 반도체 계약학과 확대와 기업 연계형 교육과정, 병역특례 등 우수 인재를 끌어들일 제도적 유인책도 고려돼야 한다"고 밝혔다.
지자체에서는 법·제도적 지원을 요청했다. 조현호 전남·광주 통합특별시 AI반도체과장은 "통합특별법과 반도체 특별법 등 관련 법 개정을 통해 기업별 전담 지원 체계와 상설 사무국 설치 근거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면서 "전력·용수·도로·폐수처리 등 핵심 기반시설에 대한 국가 지원을 강화하고 투자 기업과 협력사에 대한 인센티브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더불어민주당 당권주자인 정청래 전 대표는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는 한국 미래를 여는 핵심 동력이고 여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국가와 기업, 국민이 손잡고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사업"이라면서 "당에서 적극 지원할 뿐만 아니라 속전속결로, 시간이 늦춰져 차질을 빚는 일이 없도록 적극 협력해야 할 것이고 저 또한 발 벗고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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