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반도체 계약학과, '계약' 떼고 문호 활짝 열어야

의과대학과 반도체학과. 최근 대입에서 최상위권 이과생들이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는 두 선택지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반도체 산업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의대와 반도체학과를 함께 지원하는 사례도 빠르게 늘고 있다. 반도체가 대한민국 미래 산업이라는 인식이 그만큼 확고해졌다는 의미다.

다만 인재 육성 시스템은 산업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국내 주요 대학의 반도체학과 상당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취업을 전제로 한 계약학과 형태다. 계약학과는 글로벌 반도체 인력난 속에서 기업이 대학과 손잡고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도입됐다. 등록금 지원과 취업 연계라는 장점 덕분에 산학협력의 성공 사례로 평가받는다.

문제는 AI 시대에 이 같은 방식의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를 넘어 AI 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 첨단 패키징, 팹리스, 설계자동화(EDA), 소재·부품·장비를 아우르는 생태계 경쟁으로 재편되고 있다. 반도체 인재가 필요한 곳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이 아니다. 수백 개의 팹리스와 소부장 기업들도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중다. 계약학과라는 이름 자체가 특정 기업 취업을 전제로 하는 만큼 산업 생태계 전체에 인재를 공급하는데 제약이 있다.  

인력 규모도 경쟁국에 뒤처진다. 중국은 반도체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며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반도체 관련 전공 졸업생을 연간 수십만명씩 배출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대만도 정부와 TSMC를 중심으로 대학·연구기관을 긴밀히 연결해 매년 5만명 이상 공학계열 인재를 길러내고 있다. 반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경쟁력을 갖추고도 반도체 인재 배출 규모는 산업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공장은 늘어나는데 사람은 부족한 기형적 구조가 이어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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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챗GPT]

국가 차원의 인재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업 맞춤형 인재를 육성은 지속하되 정식 반도체학과 확대에 주력해야 한다. 수도권뿐 아니라 지방 거점국립대와 지역 혁신대학에도 반도체학과를 적극 신설해 인재 저변을 넓혀야 한다. 교육 과정도 메모리 중심에서 벗어나 AI 반도체 전반을 아우르도록 개편할 필요가 있다.


특정 기업에 대한 채용 통로로 여겨지는 계약학과 명칭의 재검토도 논의 대상이다. 반도체는 미래 전략산업이다. 반도체 인재 역시 국가 산업 생태계를 떠받칠 공공 자산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AI 시대 반도체 패권 경쟁의 승부는 결국 사람에게 달려 있다. 수백조원 규모의 투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투자를 성과로 만들어낼 인재다. '기업이 필요한 인재'를 넘어 '국가가 키우는 반도체 인재'로의 시스템 전환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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