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아세안 국가들을 향한 협력 카드로 AI를 전면에 내세웠다. 반도체부터 모델, 서비스까지 AI 전 주기를 자체적으로 갖춘 몇 안 되는 나라라는 강점을 앞세워, 아세안 국가들의 AI 생태계 구축과 인재 양성을 돕겠다는 구상이다.
외교부는 조현 장관이 22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29차 한-아세안 외교장관회의에 공동의장으로 참석해 이런 내용의 신규 협력 사업을 소개했다고 밝혔다. 한-아세안 외교장관회의는 1997년 시작돼 해마다 열린다. 올해는 대화조정국인 태국이 공동의장을 맡았고, 아세안 11개 회원국과 사무국이 모두 자리했다.
새 사업의 이름은 '한-아세안 AI 동행 이니셔티브'. AI로 아세안 국가들의 사회 문제를 풀고 지속 가능한 AI 생태계를 함께 만들자는 것이다. 외교부는 아세안 국가들의 AI 협력 수요가 높다며, 생태계 구축과 연구·인재 양성, 안전한 확산을 위한 세부 사업을 이어서 추진하겠다고 했다.
인구 6억8천만 명의 아세안은 지금 미국과 중국의 기술 공세 사이에 서 있다. 한국이 내미는 것은 제3의 선택지다. AI 학습에 쓰이는 메모리 반도체부터 자체 개발 모델, 그 위에 얹히는 서비스까지 한 나라 안에서 전부 만들어내는 역량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이번에 내놓은 것은 AI만이 아니다. 조 장관은 디지털 시대 문화창조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한-아세안 문화창조산업 이니셔티브'와 함께, 양측 관계에서 처음 시도되는 치안 협력 사업 두 건을 소개했다. 하나는 한-아세안 최초의 경찰·해경 협력사업인 '한-아세안 스캠 관련 범죄 대응 및 단속을 위한 협력사업'이다. 워킹그룹 회의와 피해자 구출 작전 논의, 국가별 안티스캠센터 방문, 보이스피싱 등 스캠 범죄 데이터베이스 구축 논의, 역량 강화 훈련까지 담겼다. 동남아 스캠 단지가 한국인을 포함한 취업 사기 피해자를 가두고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벌여 온 것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다른 하나는 한-아세안 해양안전 아카데미다. 해양법 집행과 수색구조, 오염방제 분야 전문 과정을 운영한다.
이 사업들을 하나로 묶는 틀이 '한-아세안 CSP 비전'이다. 2024년 양측 관계가 아세안 최고 단계인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올라선 뒤 한국이 마련한 이행 청사진으로, 올해부터 본격 이행에 들어갔다. 꿈과 희망을 이루는 조력자, 성장과 혁신의 도약대, 평화와 안정의 파트너. 이 세 축으로 짜였다.
목표치도 내걸었다. 상호 인적 교류 1,500만 명, 연간 교역액 3,000억 달러다. 현재 교역액이 2,000억 달러 안팎이니 절반을 더 늘리겠다는 얘기다. 지렛대는 지금 개선 협상이 진행 중인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이다. 조 장관은 CSP 비전이 아세안이 지난해 5월 채택한 20년 장기 전략인 '아세안 공동체 비전 2045'와 긴밀히 맞물려 추진될 것이라며,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급속한 기술 전환 속에 한국과 아세안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핵심 파트너가 됐다고 말했다.
아세안 국가들은 CSP 비전을 환영했다. 지난해 채택된 '2026-30년 한-아세안 행동계획'을 바탕으로 경제·통상, AI·디지털, 사이버 보안, 문화산업 등에서 실질 협력이 넓어지고 있다는 점도 높이 평가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비전을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한국과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는 뜻도 밝혔다.
조 장관은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며 함께 성장하는 한반도를 만들기 위한 정부의 노력을 설명하고 아세안 국가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협조를 당부했다. 아세안 국가들은 정부의 한반도 정책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역내 평화·안정에도 중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조 장관은 2029년 한-아세안 대화관계 수립 4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정상회의를 한국에서 열 수 있도록 지지와 협력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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