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도 칼럼] 공장 짓는 지역 투자는 그만 …이제는 '상생 생태계'

  • 지역투자의 새로운 성공 공식, 「투자→공급망→인재→혁신→지역성장」  

김학도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김학도 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논설고문] 


 
정부는 '5극 3특' 국가균형성장 전략을 통해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역을 국가 성장의 새로운 축으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 핵심과제로 반도체, 피지컬 AI, AI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한 메가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수천조 원 규모의 지역투자는 단순히 입지 지정에서 끝나지 않고, 대한민국 산업지도를 새롭게 그리는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이다. 메가프로젝트의 성공은 투자 규모나 입지 선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진정한 성패는 투자의 과실이 지역 산업생태계 전체로 얼마나 확산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지역사회가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필자는 정부에서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담당하며 지역과 성장전략을 고민했고, 전국의 수많은 중소기업을 만나 산업 현장을 경험했다. 정책과 현장을 오가며 얻은 결론은 분명하다. 정부의 균형성장 정책만으로는 지역발전이 완성되지 않는다. 지역에 투자하는 기업의 동반성장이 함께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산업생태계가 구축된다는 사실이다.
 
정부의 역할은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제도와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반면 기업의 역할은 지역을 단순한 생산 거점이 아니라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갈 파트너로 인식하고,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동반성장을 실천하는 데 있다. 첨단산업은 대기업 하나가 아니라 협력 중소기업과 공급망, 지역 인재와 대학, 연구기관이 함께 만드는 산업생태계의 경쟁력으로 승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정부는 금년 1월 '대·중소기업 상생성장전략'을 발표했다. 해외 대규모 수주와 첨단산업 투자의 성과가 대기업에만 머무르지 않고 중소기업과 지역 산업생태계 전반으로 확산되도록 하겠다는 전략이다. 정부의 상생정책은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 성과공유와 협력이익 공유, 기술보호 및 기술협력, 판로·수출·금융 지원, 그리고 지역·산업생태계 기반의 상생이라는 5대 축으로 추진되고 있다. 특히 메가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는 마지막 축인 '지역·산업생태계 기반의 상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 기업의 지역투자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첫째,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은 사회공헌 활동을 넘어 지역의 미래경쟁력을 키우는 데 있다. 지역 대학과의 산학협력, 청년 인재 양성, 창업기업 육성, 문화·교육에 대한 투자는 지역을 살리고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가치 있는 투자다.
 
둘째, 대·중소기업 상생을 기업 경쟁력의 핵심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 첨단산업은 수백~수천 개 협력기업의 기술력이 모여 완성된다. 협력기업의 경쟁력이 곧 원청기업의 경쟁력이며, 공급망의 안정성이 글로벌 경쟁력이다. 대기업은 협력사를 단순한 납품업체가 아니라 혁신 파트너로 인식하고 공동 연구개발, AI기반 생산혁신, 디지털 전환과 ESG 대응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셋째, 지역 혁신역량을 하나로 연결하는 동반성장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메가프로젝트는 기업 혼자 성공시킬 수 없다.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 혁신기관, 금융기관이 참여하는 ‘지역 동반성장 협의체'를 구축해 인재양성, 연구개발, 공급망을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해야 한다. 메가프로젝트의 성과를 지역 전체의 성장으로 확산시키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한 이유다.
 
넷째, 지역 혁신역량을 키우는 미래 생태계 투자로 확대해야 한다. 기업의 지역투자는 공장을 짓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 중소·중견기업, 지방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지·산·학·연 협력체계를 강화하고, AI 기반 공동연구와 실증을 위한 혁신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앵커사업(전 RISE사업)과 연계해 대학은 산업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고, 기업은 교육과 연구개발 단계부터 적극 참여해야 한다. 지역에서 필요한 인재를 지역에서 키우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될 때 지역투자의 효과도 극대화될 것이다.
 
다섯째, 규제혁신과 ESG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활용해야 한다. AI와 첨단산업은 빠른 기술혁신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정부는 규제샌드박스를 적극 활용해 신기술 실증을 지원하고, 기업은 이를 혁신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ESG와 탄소중립도 규제가 아니라 공급망 경쟁력을 높이는 투자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대기업이 협력사의 에너지 효율화와 탄소저감, 디지털 전환을 함께 지원할 때 공급망 전체의 경쟁력도 한층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상생 노력이 현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동반성장위원회의 역할도 확대되어야 한다. 앞으로는 단순한 평가와 협약을 넘어 산업별·지역별 특화된 상생모델을 발굴하고 메가프로젝트와 연계한 협력 생태계를 확산하는 정책플랫폼으로 발전해야 한다.
 
정부의 균형성장 정책이 지역발전의 토대를 만드는 일이라면 기업의 동반성장은 그 토대 위에 산업생태계를 완성하는 일이다. 메가프로젝트의 성패는 투자 규모가 아니라 지역에 얼마나 많은 혁신기업이 성장했고, 얼마나 많은 지역 중소기업이 공급망에 참여했으며,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지역에서 미래를 찾게 되었는가로 평가받아야 한다.
 
앞으로 기업의 지역투자는 공장을 짓는 투자에서 산업생태계를 만드는 투자로 진화해야 한다. 지역 대학과 함께 인재를 키우고, 중소기업과 함께 기술을 개발하며, 연구기관과 함께 혁신을 만들고, 지역사회와 함께 일자리를 창출하는 투자야말로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만드는 길이다.
 
이제 지역투자의 새로운 성공 공식은 분명하다. '투자→공급망→인재→혁신→지역성장'의 선순환 구조다. 기업의 투자가 지역 공급망을 키우고, 공급망이 인재를 모으며, 인재가 혁신을 만들고, 혁신이 다시 지역경제의 성장으로 이어질 때 메가프로젝트는 비로소 성공한다. '대기업-중소기업-지역'의 삼각 상생구조가 완성될 때 대한민국의 균형성장도 현실이 될 수 있다.
 
상생은 더 이상 시혜가 아니다. 상생은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전략이자 국가 산업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전략이다. 정부가 균형성장의 길을 만들고 기업이 동반성장으로 그 길을 완성할 때 메가프로젝트는 지역의 성공을 넘어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모델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김학도 필자 주요 이력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 정치경제학 박사 △전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 통상교섭실장 △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 △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 △현 충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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