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민전 사건' 故 김남주 시인, 46년 만에 재심서 무죄

  • 法 "증거 없이 자백만으로 공소사실 유죄로 인정할 수 없어"

  • 강제 연행 후 구금 상태 수사…고문 후유증 겪다 1994년 사망

故 김남주 시인 사진연합뉴스
고(故) 김남주 시인 [사진=연합뉴스]

박정희 정권 시절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중형을 선고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고(故) 김남주 시인이 46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한대균 부장판사)는 2일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김 시인의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시인이 수사 과정에서 불법 체포·구금됐을 뿐만 아니라 폭행과 협박 등 가혹 행위를 당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봤다. 이에 따라 수사기관이 확보한 대부분의 증거는 위법하게 수집돼 증거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공판 과정에서 이뤄진 자백에 대해서도 불법 수사로 인한 심리적 위축과 영향이 지속됐을 가능성이 커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객관적이고 명백한 증거 없이 자백만으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남민전'은 1976년 민족일보 기자 출신 이재문, 신향식, 김병권 등이 중심이 돼 결성한 단체다. 이들은 유신 체제 비판과 반제국주의 민족해방운동을 목표로 활동하던 중 1979년 유인물 배포 등을 계기로 조직원과 관련자 80여명이 검거됐다.

김 시인은 1978년 한국민주투쟁위원회(민투)를 거쳐 남민전 준비위원회에 가입해 기관지에 저항시를 게재하고, 유신 반대 유인물을 제작한 혐의로 1979년 영장 없이 강제 연행됐다. 이후 48일간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수사를 받고, 1980년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았다.

9년 2개월간 복역한 김 시인은 1988년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됐다. 하지만 고문 후유증 등으로 여러 질병을 앓았고, 1994년 췌장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그는 감옥 안에서도 칫솔을 날카롭게 갈아 우유갑과 은박지에 시를 눌러 쓰는 등 끊임없이 투쟁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시인이 감옥에서 쓴 250여편의 시는 1984년 발간된 첫 시집 '진혼가'를 시작으로 '나의 칼 나의 피', '조국은 하나다' 등을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김 시인은 2006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유신 체제에 항거한 공로를 인정받았으나, 사법적 명예 회복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유족들은 2024년 6월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이 불법 구금 사실을 인정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린 지 약 2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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