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남 칼럼] 2027 AI 대전망… HUMAN DRIVE "운전대는 인간이 잡는다"

  • 세상을 바꿀 10대 AI 혁신 키워드

문형남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한국AI교육협회 회장
[문형남 숙명여대 글로벌융합학부 교수, 한국AI교육협회 회장]


1882년 뉴욕에 세계 최초의 상업적 중앙발전·배전 시스템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전기를 '조명기술'이라고 여겼다. 공장 주인들은 증기기관을 치우고 그 자리에 전기 모터를 놓았다. 도구만 바꾸고 공장 구조는 그대로 두었다. 전기가 진짜 힘을 낸 것은 30년쯤 뒤였다. 기계마다 작은 모터를 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공장이 나타나면서 생산 라인 전체가 바뀌었다. 전기를 잘 쓴 회사가 이긴 것이 아니라, 전기를 전제로 모든 것을 다시 설계한 회사가 이겼다.

인공지능(AI)도 지금 그 문턱에 있다. 생성형 AI가 등장한 지 4년 동안 우리는 'AI를 잘 쓰는 법'을 배우는 데 매달렸다. 전기를 램프로만 쓰던 시절과 닮았다. 2026년은 그 단계가 끝나는 해가 될 것이다. AI는 필요할 때 켜는 도구가 아니라, 켜져 있는 줄도 모르는 환경이 된다.

2027년이 되면 질문도 바뀔 것이다. 그동안 회의실의 화두는 AI를 어디에 쓸까였다. 2027년의 화두는 AI가 이미 들어와 있는 이 일에서 사람은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가가 된다. 앞의 질문은 비용을 묻고, 뒤의 질문은 책임을 묻는다. 본격적인 AI 대전환의 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필자는 42년간 AI를 연구·교육한 미래학자다. 2027년에 주목할 흐름을 키워드로 정리하니 10개가 되었고, 10개의 앞 글자를 늘어놓고 정리하니 뜻밖에도 'HUMAN DRIVE'(‘인간이 운전대를 잡는다’ 또는 ‘인간이 주도한다’)라는 한 문장이 되었다. 우연이라기에는 하려던 말과 너무 잘 맞는다. 열 개의 흐름이 결국 한 방향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운전대는 인간이 잡는다.

첫째 H는 휴먼-코파일럿(Human-Copilot), 사람과 AI의 동행이다. 비행기 조종석에는 기장(pilot: 사람)과 부기장(copilot: AI)이 있다. 둘은 같은 계기판을 보지만 책임은 기장에게 있다. AI는 자료를 모으고 초안을 써 주지만 제가 보증합니다라는 말은 하지 못한다. 그 말은 사람만 할 수 있다. 2027년 직장에서 가장 값나가는 말이 바로 이 한마디가 된다.

둘째 U는 초고속 컴퓨팅(Ultra-Computing)이다. 양자컴퓨터가 기존 컴퓨터를 대신하는 일은 2027년에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하나의 어려운 문제를 여러 조각으로 나눠, 조각마다 가장 잘 맞는 컴퓨터에 보내는 방식이 자리 잡는다. 당장 더 급한 일도 있다. 지금 쓰는 암호가 언젠가 양자컴퓨터에 뚫릴 수 있어, 금융과 통신부터 암호를 바꾸는 대공사가 시작된다.

셋째 M은 멀티모달(Multimodal), 보고 듣는 AI다. 새벽 공장에서 설비가 내는 미세한 소리, 흔들림, 온도 변화를 한꺼번에 읽고 베어링을 점검하라고 알려 준다. 지금까지 AI의 혜택은 문서를 다루는 사무직에 몰려 있었다. 이제 공장과 병원과 건설 현장으로 내려간다.

넷째 A는 에이전틱(Agentic), 스스로 일하는 AI다. 묻는 말에 답하던 AI가 시킨 일을 끝까지 해내기 시작한다. 관건은 어디까지 맡기느냐다. 답이 틀리면 사람이 고치면 되지만, 실행이 틀리면 돈이 나가고 계약이 맺어진다. 되돌릴 수 있는 일부터 맡기는 것이 원칙이다. 어느 회사의 운영팀장은 월요일 아침을 승인으로 시작한다. 주말 사이 AI가 처리한 400여 건 가운데 그가 직접 보는 것은 스무 건 남짓이다. 관리자의 일이 지시에서 규칙 설계와 예외 판정으로 옮겨간 것이다.

다섯째 N은 뉴로모픽(Neuromorphic), 뇌를 닮은 반도체다. 사람의 뇌는 전구 하나보다 적은 전기로 생각한다. 반면 큰 AI 한 번 학습시키는 데 도시 하나가 쓸 전기가 든다. 이 엄청난 차이를 좁히려는 것이 뉴로모픽이다. 메모리 반도체 강국인 우리에게는 판을 다시 짤 기회다.

여섯째 D는 오픈웨이트(Open-weight), 모델의 민주화다. 지금까지 기업은 AI를 빌려 썼다. 매달 사용료를 내고, 우리 자료를 남의 서버로 보냈다. 이제는 공개된 AI 모델을 내려받아 우리 회사 안에서 돌릴 수 있다. 빌려 쓰는 AI에서 사서 쓰는 AI로의 이동이다. 자료를 밖으로 내보낼 수 없는 병원과 은행, 공공기관에서 특히 중요하다. 한 제약사 이사회에서 대표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사고 있는 게 뭡니까. 3년치 사용료를 냈는데 회사에 남은 자산은 없었다는 뜻이다.

일곱째 R은 신뢰와 검증(Reliable & Verifiable)이다. 2027년 기업이 막히는 지점은 성능이 아니라 증명이 될 것이다. 이 AI가 무엇을 배웠는지,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지는지를 서류로 내놓지 못하면 아예 쓸 수 없게 된다. 어느 은행의 심사 회의에서는 성능이 아니라 이런 질문에 막혔다. 대출을 거절당한 고객이 이유를 물으면 무엇이라고 답할 것인가.

여덟째 I는 산업 특화(Industry-Specific)다. 가장 큰 AI가 이기는 시대는 끝났다. 우리 공장, 우리 병원, 우리 업종의 문제를 가장 정확히 푸는 AI가 이긴다. 27년 경력 검사원의 눈썰미를 배운 조선소의 AI는 세계 어느 거대 모델보다 그 조선소에서 정확하다. 그 조선소의 강재와 용접 방식과 실패의 역사를 아는 유일한 AI이기 때문이다.

아홉째 V는 바이브코딩(Vibe Coding)이다. 프로그램을 만들 때 문법을 배우는 대신 말이나 글로 설명하면 AI가 만들어 준다. 부산에서 수산물 도매를 하는 사장님이 사흘 만에 자기 가게의 시세 정리 프로그램을 직접 만드는 일이 특별한 뉴스가 아니게 된다. 회사 안에서도 마케팅팀이 자기 대시보드를, 인사팀이 채용 관리 도구를 직접 만든다. 전산실에 요청서를 올리고 몇 달 기다리던 관행이 사라진다.

열째 E는 에코-인텔리전스(Eco-Intelligence), 지속가능한 AI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지능은 결국 지속되지 않는다. AI가 쓰는 전기를 줄이는 일과, AI로 환경 문제를 푸는 일이 함께 가야 한다. 이미 데이터센터를 새로 짓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땅도 돈도 아닌 전기다.

그렇다면 우리의 과제는 무엇인가. 막힌 곳은 기술이 아니라 셋이다. 첫째는 데이터다. 우리 산업 현장에는 수십년 쌓인 자료가 있지만 정리가 안 돼 쓸 수 없다. 창고에 쌓인 원석은 아직 자본이 아니다. 둘째는 전기다. AI 모델은 몇 달이면 만들지만 송전선로는 몇 년이 걸린다. AI 계획과 에너지 계획이 따로 놀면 이 간격은 좁혀지지 않는다. 셋째는 제도다. 기업이 힘들어하는 것은 엄한 규제가 아니라 애매한 규제다. 무엇을 갖추면 되는지 분명하면 기업은 갖추고 앞으로 간다.

한국이 가장 큰 AI를 만드는 경쟁에서 이길 필요는 없다. 대신 이길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제조와 반도체, 조선과 배터리, 바이오와 콘텐츠라는 세계적 산업에 AI를 가장 깊이 붙이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전기를 적게 쓰는 반도체로 판을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AI를 검사하고 인증하는 신뢰 산업을 키우는 것이다. 셋 다 돈의 크기가 아니라 축적과 제도가 승부를 가른다.

개인에게는 세 가지 질문을 권한다. 나는 무엇을 보증할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AI에게 맡기지 않는가. 나는 무엇을 계속 배우는가. 도구는 여섯 달마다 바뀌지만, 문제를 정의하고 결과를 확인하고 위험을 알아채는 힘은 어떤 도구가 와도 값이 떨어지지 않는다.

2027년은 AI가 사람을 대신하기 시작하는 해가 아니다. 사람이 AI를 통해 자기 능력과 산업의 가능성을 어디까지 넓힐 수 있는지 시험하는 해다. 미래를 정하는 것은 AI의 속도가 아니라, 그 속도를 어느 쪽으로 이끌 것인가에 대한 우리의 선택이다. 운전대는, 사람이 잡는다.
 
필자 주요 이력

▷성균관대 경영학 박사 ▷매일경제 기자 ▷대한경영학회 회장(전) ▷지속가능과학회 회장(현) ▷숙명여대 글로벌융합대학 학장, 한류국제대학 학장(전), 융합국제학부 교수(현) ▷한국AI교육협회 회장 ▷한국바이브코딩협회 회장 ▷문형남 브랜딩연구소 소장 ▷AI한류연구원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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