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경제연구원이 반도체가 초호황인 상황에서 내수는 뒷걸음치고 있다며 우리 경제에 대한 불안 요소를 꺼내 놓았다.
지난 8월 수출은 반도체 호조에 힘입어 1년 전보다 68.7% 급증했다.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5.9%에서 47.5%로 뛰었다. 같은 시기 7월 소매판매액지수는 전월보다 2.4% 줄었다. 정부 지원을 걷어낸 가계의 자체 소득 증가율은 1분기 -0.3%에서 2분기 -1.3%로 더 나빠졌다.
청년실업률은 6.8%로 1년 전보다 1.3%포인트 올랐다. 청년 취업자 수는 45개월째 줄고 있다. 반도체 수출만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우고 가계의 체감경기는 오히려 식고 있다. 이른바 'K자형 양극화'다. 그런데 이런 풍경은 낯설지 않다. 고도 성장 시기를 거쳐온 우리 경제는 특정 산업의 호황이 전체 경기를 가리는 착시를 이미 몇 차례 겪었다. 과거를 살펴보면 그 결말은 낙관하기 어렵다.
가장 뼈아픈 선례는 1994~1995년이다. 당시 반도체 3사는 평균 98% 성장률을 기록했다. 제조업 가동률은 85.4%로 사상 최고였다. 실업률은 1.9%까지 떨어졌다. 여기저기서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는 말이 나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2000년대 초까지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갈 것"이라 장담했다. 하지만 시장은 반대로 움직였다. 1995년 말부터 D램 가격이 꺾이기 시작했다. 반도체 가격은 1996년 51%, 1997년 65% 폭락했다. 환율과 주가마저 요동쳤다. 결국 그 해 말 외환위기가 터졌다.
당시 강만수 재정경제원 차관은 훗날 "반도체 호황에 눈이 멀어 다른 업종의 경기 추락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술회했다. 호황의 숫자에 취해 있었다. 위기의 신호는 쌓여갔다. 아무도 이 신호를 보지 못했다.
두 번째 사례는 지금과 판박이다. 최근 반도체 슈퍼사이클에서 상위 10대 기업의 수출 비중이 사상 처음으로 50%를 넘었다. 그런데 중견·중소기업 수출은 10% 안팎에 머물렀다. 반도체 산업의 고용유발계수는 10억원당 2명이다. 제조업 평균은 6명이다. 자동차·조선은 7명이다.
반도체가 잘 팔려 수출이 아무리 늘어나도 일자리는 늘지 않는 구조다. 코스피 상승분 대부분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두 종목에 쏠려있다. 개인 신용융자를 낀 '빚투'까지 두 회사에만 몰린다. 수출 초호황 착시가 자산시장까지 번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와 해외 배당소득은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같은 기간 가계 소비지출은 넉 달 연속 줄었다. "생활에 여유가 없다"는 응답은 55%에 달했다. 기업 장부는 화려한데 서민 지갑은 얇아지는 이 현상이야말로 K자 양극화의 전형이다.
세 사례가 공통으로 말하는 것은 하나다. 특정 산업의 호황 지표는 경기 전체의 건강을 보증하지 않는다. 그 격차를 방치하면 자산시장 쏠림이 심화한다. 가계부채 부담까지 맞물릴 경우 미래의 충격은 더 크게 돌아온다.
지금 한국은 세 사례의 위험 요소를 동시에 갖고 있다. 반도체 편중, 자산시장 쏠림, 가계의 실질구매력 정체. 물가·부채를 잡겠다고 통화정책을 급하게 조이기 어려운 이유다. 유류세 조정 같은 품목별 미시적 대응과 취약계층·중소기업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 개별 산업마다 세심하게 정책을 운용해 연착륙을 유도해야 한다.
1995년의 호황이 그랬다. 지표가 좋을 때일수록 그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과하다고 폄하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살피는 경계심이 필요하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