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외교에서 유머는 강력한 소통 수단이 된다. 농담 한마디로 상대방과 거리를 좁히고, 민감한 문제도 재치 있게 풀어낼 수 있다. 특히 미국 정치에서는 더 그렇다. 미국을 방문하는 외국 정상들은 유머를 공부하고 농담을 준비해 가기도 한다.
지난 4월 미국을 국빈 방문한 찰스 3세 영국 국왕은 품격 있는 영국식 유머를 선보였다. 백악관 국빈 만찬에서는 "우리가 없었더라면 여러분은 프랑스어를 쓰고 있었을 것"이라는 농담을 던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웃게 했다. 미국 독립전쟁 발발 전 영국과 프랑스가 북미 지역에서 벌였던 식민지 쟁탈전 역사를 빗댄 농담이다.
앞서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 동맹국을 향해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여러분은 지금 독일어와 약간의 일본어를 쓰고 있을 것"이라고 했던 농담에 대한 '응수'로도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의 농담을 기억해 뒀다가 몇 달 뒤 영국식 유머로 재치 있게 받아친 것이다.
역대 미국을 방문한 중국 지도자들도 유머를 선보였지만 그중에서도 주룽지 전 총리는 특히 기억에 남는다. 1999년 4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협상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그의 뼈 있는 농담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콜로라도주 덴버 시내 한 상점에서 미국 모자 두 개를 산 그는 당시 콜로라도 주지사가 마련한 만찬에서 "미·중 무역적자를 줄이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샀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이 웃음을 터뜨리자 그는 곧바로 "그런데 돈은 주지사가 냈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대중 무역적자 문제를 유머로 풀어낸 것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주 전 총리 부고 기사에서 그를 솔직한 화법과 냉소적인 유머로 유명했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유머 감각은 어떨까. 중국 공산당원망에는 2018년 6월 '시진핑의 유머 감각'이라는 글이 게재됐다. '유머는 지도자의 매력을 보여주는 요소 중 하나'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글에는 시 주석의 유머 일화 12개가 담겨 있다.
시 주석은 2014년 9월 몰디브를 방문했을 당시 "컵라면을 덜 먹고, 현지 해산물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말하며 해외에 나간 중국인 관광객들 행태를 농담 섞어 에둘러 지적했다. 같은 해 12월 호주를 방문했을 때는 연방의회 연설에서 "호주의 모든 주(州)를 둘러봤는데, 혹시 수료증을 주나요"라고 농담을 던졌다. 2014년 7월 아르헨티나 방문 당시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에게서 현지 명문 축구팀의 10번 유니폼을 선물받고 "이적료는 얼마에요"라고 물어 좌중의 웃음을 이끌어냈다. 음식과 여행, 축구처럼 친근한 소재를 활용해 현지인과 심리적 거리를 좁힌 것이다.
한국인에게 특히 기억에 남을 만한 시 주석의 유머는 지난해 11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나왔다. 중국 측에서 샤오미 스마트폰을 선물받은 이재명 대통령이 "통신 보안은 잘 되느냐"고 묻자 시 주석은 "백도어가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라"는 취지로 받아쳤다. 두 정상이 중국산 스마트폰의 보안 문제라는 민감한 이슈를 농담으로 받아넘긴 순간이었다.
시 주석은 오는 24일 전후 미국을 국빈 방문할 예정이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 의제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관세와 무역적자부터 반도체와 인공지능(AI), 희토류, 대미 투자, 대만 문제까지 풀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다.
유머가 필요한 순간은 오히려 긴장감이 가장 팽팽할 때일지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과 마주 앉은 시 주석이 어떤 '중국식 유머'를 꺼내들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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