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문제를 둘러싸고 날선 공방을 이어가며 정면충돌하고 있다. 대법원장이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에 대해 공문상 명확한 사유가 없다며 거부 의사를 밝히자, 청와대는 대법원장이 대통령의 헌법상 임명권을 무력화하고 사실관계를 호도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박했다.
여기에 여야의 정치적 공방과 법조계의 찬반양론까지 더해지면서 헌정사상 유례없는 사법부와 행정부 간의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청와대 "명확한 공문 호도" vs 조희대 "명확한 사유 제시해야"
갈등의 발단은 지난달 28일 청와대가 대법원에 보낸 공문으로부터 시작됐다. 청와대는 퇴임한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조 대법원장이 제청한 손봉기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를 거부하고 후보자 재제청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장기간 침묵을 이어갔던 조 대법원장은 지난 22일 재제청 요청 공문에 명확한 법적 근거와 사유가 적시되지 않았고, 언론 등을 통해 거론된 제청 과정에서의 절차적 흠결 주장도 수긍하기 어렵다며 거절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청와대는 즉각 입장문을 내고 대법원장의 주장을 재반박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은 것 자체가 임명할 의사가 없음을 밝힌 명확한 거부 표시이며, 이것이 곧 재제청을 요청한 사유"라고 설명했다.
또한 법원조직법에 따라 후보추천위원회로부터 적법하게 추천받은 후보자들에게 대법원이 개별 연락 사퇴 의사를 물은 점도 지적하며 "이는 적법한 후보를 제청 대상에서 배제하려는 중대한 절차적 흠결이자 공정성을 훼손한 시도"라고 비판했다.
청와대는 특히 대통령의 임명권이 가지는 헌법적 의미를 강조했다. 대법원장이 특정 후보를 제청하면 대통령이 그대로 따라야 하는 형식적 권한으로 본다면, 이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의 임명권을 무력화하는 위헌적 해석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의 이 같은 입장은 과거 헌법 제정 경위와 헌법재판관 지명권과 비교, 대법관 임명에 있어 대통령에게는 실질적인 거부 권한이 존재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야 정면충돌…여당 "내란적 태업" vs 야당 "삼권분립 파괴"
정치권의 대립도 격화되고 있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민주당 소속인 서영교 법제사법위원장 등 여당 의원들은 지난 23일 대법원을 항의 방문해 조 대법원장을 강하게 규탄했다.한발 더 나아가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사상 초유의 위헌·위법·내란적 재제청 거부는 국민을 무시하는 태업"이라며 국회 차원의 현안 질의, 국정조사, 특검 추진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고강도 대응을 예고했다.
반면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이 끝내 김민기 대법관을 고집해 본인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내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여당의 대법원 항의 방문에 대해서 "누가 헌정질서를 흔들고 삼권분립을 무너뜨리고 있는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고 맞섰다.
국민의힘은 앞서 이 대통령의 임명동의안 미제출 및 재제청 요구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도 청구한 상태다.
법조계도 찬반양론…한변 "헌법 수호" vs 민변 "상호 협력 파기"
이번 사태를 두고 법조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보수 성향의 변호사 단체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은 지난 23일 성명을 통해 "대통령과 민주당은 헌법이 정한 대법관 임명절차를 존중하라"며 조 대법원장의 재제청 거부를 지지했다.
한변은 "대법원장의 재제청 거부는 지극히 당연한 헌법합치적 판단이자 사법부 수장으로서 헌법 수호의 결기를 보여준 결단"이라며 "대법원장 제청권은 결코 대통령 임명권에 종속된 권한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비영리 변호사 단체인 '착한법 만드는 사람들' 역시 "헌법기관장의 정당한 권한 행사를 두고 탄핵까지 거론되는 현실을 깊이 우려한다"며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근거가 없는 재제청 요구를 철회하고 이미 이뤄진 제청에 따라 임명동의안을 지체 없이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진보 성향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대법원장의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했다. 민변 사법센터는 논평을 통해 "대법관 제청은 대법원장의 헌법상 권한인 동시에 의무"라며 "대법원장이 제청 관련 절차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헌법정신을 위배할 뿐만 아니라 삼권 간 상호 협력적 임명절차를 형해화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기관 간 권한 다툼으로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가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헌법재판소로 넘어가나… '제청권 vs 임명권' 경계가 핵심 쟁점
이번 갈등이 전례 없는 정면충돌로 치달으면서 헌법상 '대법관 제청권과 임명권의 경계'를 둘러싼 법적 논란은 헌법재판소의 판단 영역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졌다.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대통령의 임명권 행사 범위와 대법원장 제청권의 침해 여부를 두고 해석이 갈린다. 헌법 연구관 출신 법조인들은 대체로 대통령에게 실질적인 임명 거부권이 존재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지만, 대통령이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중간에서 반려한 행위는 국회의 동의권을 침해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다만 대통령이 명시적 근거 없이 국회 동의 절차 자체를 차단하거나 특정 후보 제청을 유도한 형태의 재제청을 강요한 것은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형해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는 헌재가 이번 사건의 본안 판단에 이를 수 있느냐다. 핵심 변수는 '청구인 적격' 여부다. 과거 헌재는 2015년 WTO 정부조달협정 사건 등에서 국회의 권한 침해를 개별 국회의원이 대신해 다툴 수 없다며 각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비록 지난해 마은혁 헌법재판관 미임명 사건에서는 국회 자체가 청구해 본안 판단이 이뤄졌으나, 이번 사안은 국회의 동의 절차 자체가 개시되지 않은 상태라는 차이가 있다.
만약 헌재가 청구인 적격을 인정한다면, 대통령이 제청받은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할 헌법상 의무가 있는지 규명해야 한다. 그러나 절차적 요건 부족으로 각하 결정이 내려질 경우,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 사이의 경계에 관한 본질적인 판단은 미뤄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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