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직원 평균 연봉이 1000만엔(8460만원)을 넘는 대기업이 늘고 있다. 인력 확보 경쟁과 실적 개선이 맞물려 기본급과 상여금 인상이 잇따른 결과다. 특히 반도체 공장 건설 수요가 늘면서 전문 기술을 갖춘 공조설비 업체들의 평균 연봉은 1200만엔 안팎까지 높아졌다. 다만 업종과 기업 규모에 따른 격차가 크고, 고물가 탓에 생활 형편이 나아졌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29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자회사를 제외한 직원 수가 1000명 이상인 일본 상장사 741곳의 2025년도 평균 연봉은 819만엔으로 전년보다 4.1%(32만엔) 늘었다. 평균 연봉이 1000만엔 이상인 기업은 76곳으로 30%(18곳) 증가해 조사 대상의 10%를 넘어섰다. 토요타와 후지쓰, IHI, 다이와하우스공업, 일본항공 등이 새로 이름을 올렸다. 조사는 유가증권보고서를 바탕으로 했으며, 2025년 7월부터 2026년 6월 사이에 결산기를 맞은 기업을 2025년도 조사 대상으로 삼았다.
평균 연봉 1위는 공장자동화 기기 업체 키엔스로 2178만엔(약 1억8424만원)이었다. 미쓰비시상사가 2112만엔, 미쓰이물산이 2058만엔으로 뒤를 이었다. 평균 연봉이 2000만엔을 넘은 곳은 이들 3곳뿐이었다.
특히 반도체 공장에 필요한 설비를 공급·시공하는 업체들이 대표적이다. 반도체용 수처리 설비 업체 오르가노의 평균 연봉은 1036만엔으로 14% 늘었다. 이 회사는 대졸 초임을 지난해 월 26만9000엔으로 약 20% 인상한 데 이어 올해는 32만5840엔까지 올렸다. 전 세계적인 인공지능(AI) 붐 속에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이 크게 향상되면서 해당 기업 임직원들의 연봉 역시 크게 늘어난 모습이다.
공조설비 공사 업체인 산키공업의 평균 연봉도 14% 증가한 1228만엔에 달했다. 같은 업종의 다카사고열학공업과 다이단도 1200만엔 안팎으로 임금 수준이 크게 올랐다.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클린룸은 시공에 전문 기술과 노하우가 필요하다. 수요가 늘면서 관련 업체들이 발주처와의 가격 협상에서 유리해졌다. 산키공업은 지난해 겨울 평균 상여금을 191만엔으로 전년보다 28% 늘렸고, 현장과 근무지 등에 따른 수당도 확대하고 있다.
중공업 업체들도 임금과 인사제도를 함께 손보고 있다. IHI의 평균 연봉은 23% 증가해 1000만엔에 도달했다. 가와사키중공업은 15% 늘어난 910만엔이었다. 두 회사는 지난해 춘계 노사협상(춘투)에서 노조 요구를 전액 수용해 월 기본급을 1만5000엔씩 올렸다. IHI는 젊은 직원과 중견 직원이 빠르면 1년 만에 승진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60세 이후 재고용된 직원도 같은 직책을 유지하며 정년 전과 같은 급여 수준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실적 회복이 상여금 확대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평균 연봉 증가율이 가장 높았던 스미토모파마는 27% 늘어난 905만엔을 기록했다. 치료제 판매 호조로 2023년도 3149억엔의 순손실에서 2025년도 1068억엔의 순이익으로 돌아서면서 실적 개선을 상여금에 반영했다. 증가율 2위인 DeNA도 게임 사업 호조에 따라 실적에 기여한 직원에게 특별보상금을 지급하면서 평균 연봉이 27% 늘어 1117만엔이 됐다.
그러나 임금 상승의 온기는 고르게 퍼지지 않았다. 조사 대상 직원 수가 10만명 이상인 업종 가운데 평균 연봉이 가장 높은 건설업은 982만엔으로, 소매업의 574만엔보다 약 400만엔이나 많았다. 소매업에서 평균 연봉이 1000만엔을 넘은 기업은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1250만엔) 한 곳뿐이었다. 서비스업의 평균 연봉도 599만엔에 그쳤다.
다이이치라이프자산운용경제연구소의 신케 요시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건설업은 전문직이 많고 공사에 따라 시공할 수 있는 기업이 제한돼 임금을 올려 인력을 확보할 필요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소매·서비스업에 대해서는 "경쟁이 치열해 가격을 큰 폭으로 올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임금을 올리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같은 업종 안에서도 실적에 따라 격차가 벌어졌다. 자동차업계에서는 토요타의 평균 연봉이 2022년도 895만엔에서 2025년도 1006만엔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경영 재건을 추진 중인 닛산자동차는 850만엔에서 857만엔으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임금 상승 폭은 기업 규모에 따라 달랐고, 생활 형편이 나아졌다는 체감도 제한적이었다. 일본 국세청에 따르면 중소기업을 포함한 지난해 정규직 평균 연봉은 559만엔으로 전년보다 2.6% 늘었다. 이번에 조사한 대기업보다 연봉 수준과 증가율 모두 낮았다. 제조업 주요 노조가 가입한 금속노협의 가네코 아키히로 의장은 "모든 근로자가 임금 상승의 혜택을 실감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고물가 속에 일본은행의 9월 설문에서도 1년 전보다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는 응답은 4.5%에 그쳤고, 여유가 줄었다는 응답은 54.4%였다. 지난해 9월의 4.5%, 56.1%와 비교하면 큰 변화가 없었다.
올해 춘투에서도 기본급과 대졸 초임을 올리는 기업이 잇따른 가운데 일본 최대 노조 조직인 렌고는 내년 춘투에서 임금 인상 요구 수준을 '6%를 중심으로 5% 이상'으로 제시해 올해보다 높였다. 임금 인상을 이어가면서 업종과 기업 규모에 따른 격차를 얼마나 좁힐 수 있을지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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