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그룹이 하이닉스 예비 인수제안서 접수 마감인 지난 달 30일 제안서를 제출하지 못하고 채권단에 시간을 더 달라고 요청하면서 하이닉스 매각이 장기화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채권단은 이번 주 효성의 최종 입장을 들어본 뒤 효성의 요청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하이닉스 매각을 다시 추진할 지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세계 2위의 메모리 반도체 업체의 운명이 이번 주 결정되는 셈이다.
최근 하이닉스는 반도체 시장이 살아나면서 D램 등의 가격 상승으로 지난 3분기에 매출 2조1180억원, 영업이익 2090억원을 기록하며 8분기 만에 흑자로 돌아서는 등 실적이 개선돼 기업 가치가 상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도체 시장조사기관인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램 주력 제품인 DDR2 1Gb 800㎒의 10월 하순 고정거래가격은 2.06달러로 14개월만에 2달러를 돌파했고, DDR3 1Gb 1066㎒ 고정거래가도 1.94달러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낸드플래시 주력제품인 16Gb MLC 고정거래가도 5.18달러로 지난해 6월 이후 처음 5달러를 넘어섰다.
이 같은 메모리 가격 상승세는 4분기까지 이어질 전망이어서 하이닉스의 4분기 흑자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하이닉스는 지난 2년간 사상 최악의 반도체 불황을 겪으면서도 전체 매출의 10%를 R&D(연구개발)에 투자해 D램과 낸드 플래시 메모리 분야에서 반도체업계 최고인 삼성전자 못지않은 기술력과 생산성을 보유한 경쟁력 있는 업체로 변신에 성공했다는 것이 반도체 업계의 평가다.
김종갑 하이닉스 사장이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혹독한 시간 속에서 하이닉스는 경비절감과 기술리더십을 확립, 외부 자금조달에 연명하는 ‘애물단지’가 아니라, 반도체 경기 사이클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꿀단지’로 변하기 시작했다”고 자신감을 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국내 M&A업계의 관계자들은 정부와 채권단이 하이닉스 매각을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와 관련 한 M&A전문가는 “하이닉스 매각을 서두르다 보면 자칫 하이닉스의 기술력을 노리는 해외 사모펀드나 중국 기업들이 뛰어들어 투자는 안하고 기술만 빼가는 쌍용차나 BOE하이디스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KKR, 블랙스톤 같은 미국계 사모펀드들은 메모리 반도체 경기가 상승세에 진입하면서 하이닉스 M&A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최근 증권가 일각에서 ‘매각이 지연되면 하이닉스의 경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며 하이닉스 매각을 서둘러야 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은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다.
하이닉스가 매각작업이 진행되고 있어 하이닉스 경영진이 내년 경영전략을 세우는 데도 한계가 있고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것이 이 같은 주장을 펴는 이들의 논리인데, 일리있는 말이긴 하지만 이미 하이닉스 경영진이 채권단 관리 하에서도 회사를 정상화 시키는 등 뛰어난 경영능력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주장은 큰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실제로 하이닉스 경영진은 이미 내년에 약 1조5000억원 가량을 설비증설에 투자할 계획을 세워 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정부가 채권단은 ‘기업의 주인을 빨리 찾아 주어야 한다’는 강박에 쫓겨 하이닉스의 장기적인 발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이에게 회사를 팔아넘기는 우(愚)를 되풀이 하지 않길 바란다.
아주경제= 이형구 기자 scaler@ajnews.co.kr
(아주경제=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