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신성’ 이승훈(21ㆍ한국체대)이 또 한 번의 기적을 일궈냈다.
이승훈은 24일(한국시간) 캐나다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m에서 12분58초55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 14일 남자 5000m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던 이승훈은 이로써 모태범(21ㆍ한국체대)에 이어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사상 두 번째로 2개의 메달을 목에 거는 영광을 차지했다. 특히 이승훈은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장거리 종목인 1만m 금메달을 목에 걸며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1만m 출전이 겨우 세 번째인 이승훈은 지난달 10일 일본 홋카이도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자신이 세웠던 한국기록 13분21초04를 불과 45일만에 21초49나 단축시키는 놀라운 상승세를 보였다.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한 지 불과 7개월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기록이다.
주요 외신 또한 일제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AP통신은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스벤 크라머가 실격당하면서 이번 대회에서 가장 예상하지 못했던 금메달이 이승훈에게 돌아갔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충격적인 승리’라는 부제목을 붙여 1만m 레이스에 세 번째 출전하는 이승훈의 이변을 상세히 기술했다.
5조에서 반 데 키에프트 아르젠(네덜란드)과 함께 레이스를 펼친 이승훈은 출발부터 여유가 넘쳤다. 400m 트랙을 25바퀴나 돌아야 하는 ‘빙판의 마라톤’에서 첫 바퀴를 돌자 중간 순위 1위였던 스베레 하우글리(노르웨이)의 기록을 0.69초 앞당기더니 2000m를 돌 때는 2초나 앞섰다.
가속이 붙은 이승훈은 이후 한 바퀴를 돌 때마다 하우글리의 기록을 1초씩 앞당겼다. 마지막 바퀴를 남기고는 함께 레이스를 펼친 아르젠을 한 바퀴 이상 추월했다. 결국 7년간 지속된 올림픽 기록(12분58초92)을 0.37초 앞당기는 새로운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레이스를 마친 이승훈은 초조하게 남은 선수들의 레이스를 지켜봤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 10000m 우승자인 봅 데 용((네덜란드))이 13분06초73에 그치자 동메달을 확보한 채 마지막 주자 스벤 크라머(네덜란드)의 레이스만이 남았다.
이번 대회 5000m에서 금메달을 땄던 크라머는 역시 10000m에서도 세계기록 보유자답게 놀라운 스피드를 앞세워 2,000m 구간부터 이승훈의 기록을 조금씩 앞서기 시작했다.
크라머는 이승훈에 4.05초 앞선 가장 빠른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할 때만 하더라도 이번 대회 스피드스케이팅 5000m에 이어 2관왕을 차지한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하지만 크라머는 믿기지 않는 실수로 금메달을 놓치고 말았다. 크라머는 8바퀴를 남긴 상황에서 코너로 진입할 때 아웃코스로 나가려다 게라드 켐케스 코치가 황급하게 외치는 지시를 듣고 갑자기 방향을 틀어 인코스로 진입했다. 그러나 원래 들어가야 했던 자리는 아웃코스였기 때문에 인코스를 두 번 탄 크라머는 당연히 실격되고 말았다.
크라머가 실격될 것이라는 상황을 일찌감치 확인한 이승훈은 김관규 감독과 뜨거운 포옹을 나누며 생애 처음 출전한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자축했다.
이승훈보다 빠른 4초 이상 빨리 결승선을 통과한 크라머는 결국 코스를 잘못 탄 탓에 실격되자 고글을 집어던지며 불만을 표시했지만 심판진의 결정은 명확했다.
크라머는 경기 뒤 “지금 너무 힘들다”며 “바른 선택을 하려고 했는데 코너를 돌기 직전 코치로부터 얘기를 듣고 결정을 바꾸었다”며 코치에게 잘못을 돌렸다.
그는 이어 “너무 화가 난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아주 짧은 순간에 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며 “경기의 집중에 관한 문제였는데 내 실수는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크라머는 “얼음 위에 있었던 선수는 나였다”며 “이 때문에 내가 잘 탔어야 했다”고 체념했다.
크라머는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 때도 팀 추월 경기 준결승에서 레인 마크를 건드려 실격됐던 전례가 있었다.
한편 2위는 스코브레프(러시아ㆍ13분02초07)가 차지했고 동메달은 봅 데용(13분06초73)에게 돌아갔다.
아주경제= 인동민 기자 idm81@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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