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동계스포츠에서 아시아의 맹주로 떠올랐다.”
17일간 지구촌을 흥분시켰던 동계올림픽을 마무리하며 전세계의 언론들은 한국이 금메달 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2개로 일본, 중국을 제치고 아시아를 대표하는 동계스포츠 강국으로 부상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최근 FT(파이낸셜타임스)가 ‘한국은 더 이상 패배자가 아니다(South Korea is no longer the underdog)’는 칼럼을 통해 일본, 중국의 기세에 눌려있던 한국이 세계의 리더국가로 빠르게 도약하고 있다고 보도하는 등 이번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을 평가하는 해외의 시각도 달라지고 있다.
실제 그랬다. 한국은 조선 말기까지 3000여년간 중국의 변방으로, 중국의 영향력 아래 명맥을 유지해왔다. 특히 조선 600년은 중국의 속국 처지였다.
구한말 열강들의 한반도 쟁탈전에서 승리한 일본은 지금부터 꼭 100년 전인 1910년 한국을 강제합병하기에 이른다.
강제합병 당시 한국 관료들의 모습을 한 역사서는 ‘자 만큼 깊은 물이 마르려 하니 고기들이 앞다퉈 도망가고, 뼈다귀 한 조각을 던지니 개들이 서로 다투더라(尺水將盡魚先亡, 一骨手投犬共生)’고 평가했다.
조정의 대신과 고위 관리들이 역사적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도망가고, 기회주의자들은 일제가 던져주는 뼈다귀(이권)를 얻어먹기 위해 암투를 벌였던 것이다.
해방과 6·25전쟁을 거쳐 산업근대화운동을 전개하는 동안 일본은 대한민국이 쫓아가야 할 교과서 그 자체였다.
◆ '공포의 대상'에서 '친구이자 경쟁자'로
일제 통치를 기억하는 우리 60~70대에게 일본은 ‘공포’의 대상이요, ‘경제 일본의 위력’을 느끼며 성장한 40~50대에게 일본은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한·일 스포츠경기에서 숱한 승리를 경험한 20~30대에게 일본은 ‘붙어볼 만한 상대’, 친구이자 경쟁자다.
지난 24일 피겨 스케이팅 쇼트 프로그램에서 아사다마오가 73.78점이라는 빼어난 성적으로 경기를 마치자 김연아는 ‘어이쿠, 큰 일 났다. 졌구나’하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더 잘하면 되지 뭐’ 하는 자신감으로 경기에 임해 세계기록(78.50점)을 깼고, 연거푸 세계 신기록을 내며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빙속 1만m에서 금메달을 딴 이승훈, 500m에서 금메달을 딴 모태범과 이상화 모두 ‘우리는 동양인이니까 빙속에서 금메달은 불가능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까짓 거 해낼 수 있어’ 하는 자신감과 노력으로 대파란을 낳았던 것이다.
빙상 저변 인구나 국가적 지원 등 모든 면에서 한국이 일본과 중국을 앞설 것으로 생각한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지만 우리 젊은이들은 보란듯이 해냈다.
◆ 아직도 머나먼 일본, G2 지향하는 중국
이제는 스포츠와 함께 경제를 세계5강 반열에 올려놓아야 한다.
반도체와 전자, 조선 등 일부 분야는 일본을 추월하고 있지만 아직도 일본을 이기려면 피나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GDP(국내총생산)는 일본 4조9107억달러, 한국 9287억달러(2008년 현재)로 5.3배 차이가 난다. 1인당 GNI(국민총소득)는 일본 3만9726달러, 한국 1만9231달러로 2배에 달한다. 거래소 시가총액(올 2월 25일 현재)은 일본 3조5791억달러, 한국 7905억달러로 4.5배의 격차가 있다.
한국의 대일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연간 250억~300억달러에 달한다. 전세계에서 벌어들여 고스란히 일본에 갖다 바치는 구조다.
미국과 함께 G2(2대강국)를 꿈꾸는 중국은 발전 속도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빠른 상황이다. 초일류 다국적기업들이 중국에 뛰어들어 기술을 이전하고 13억의 인구가 소비하면서 자동차, 전자, 생활용품 등 전 산업분야 제품의 품질력이 급격히 향상되고 있다.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앞으로 30년 후 중국이 세계 최대 경제국가가 될 것이라는 진단도 내놓고 있다.
결국 한국이 일본-중국에 낀 ‘샌드위치’의 위치에서 벗어나 아시아를 리드하는 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전 국민이 똘똘 뭉쳐 ‘경제강국’을 향해 총력전을 전개해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바이오, 환경, 에너지 등 차세대산업 분야에서 앞서나가야 하고, 경직된 노동시장도 개선해야 한다.
그러나 나라의 정책을 이끌어야 할 정치권은 3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세종시’ 문제를 둘러싸고도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합리적 토론과 다수결’의 원리가 아닌 ‘떼쓰기와 패거리’ 논리로 해결하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지긋지긋한 정치권 논쟁으로 ‘세종시’ 말만 나와도 신물 난다. 세종시를 아무렇게나 해도 좋으니 빨리 논쟁만 끝내라’는 냉소적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화는 무엇인가. 세계인의 사고 패턴, 행동 패턴, 소비 패턴과 맞추는 것이다.
우리 경제와 스포츠는 이미 글로벌 톱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정치는 구태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
우리 젊은이들이 보여준 ‘세계 5강’의 가능성을 정치와 경제에서 현실화 시켜야 한다. 정치가 경제를 리드하는 시대로 나가야 한다.
나라 경제를 이끌기는 커녕, 오히려 짐만 되는 정치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박정규 편집국장 sky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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