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사고가 모든 정치 현안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된 모습이다. 사건 발생 13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실종자 구조는 물론 원인 규명에도 난항을 겪고 있는데다 이 같은 상황이 앞으로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 6·2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운 탓이다. 천안함 사태가 지방선거 과정에서 불러올 상당한 파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에 세종시 수정안을 비롯한 4대강 사업, 사법제도 개혁안, MBC 인사개입 공방 등 각종 현안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전망이다.
7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는 천안함 침몰사고와 관련, 안보 문제 등을 둘러싼 여야의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은 정부와 군 당국이 천안함 사고의 진실을 감추고 있다며 민간 주도의 진상조사단 구성과 국방장관 등 책임자 문책을 요구했다. 또한 현 정부의 안보공백과 위기대처능력 부재 등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이에 맞서 한나라당은 야당이 지방선거를 의식해 정치공세에만 나선다고 일축, 실종자 구조 및 투명한 원인 규명에 매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이날 대정부질문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사안은 천안함 침몰에 대한 북한 관련 여부였다. 유독 정부가 북한 개입 가능성에 대해선 모호한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은 “최근 공개된 사고 정황 때문에 북한 개입 가능성이 제기되는데 남북의 첨예한 대립 속에 이와 관련 섣부른 예단은 문제”라며 “또한 이를 차단하는 것도 스스로 안보를 포기하는 셈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의 개입이 사실상 추정되면 북측의 사과요구와 더불어 DMZ 대북선전방송재개, 북한 선박의 영해 및 NLL 통행 제한 등 가능한 조치에 대해 미리 검토해줄 것”을 요구했다.
류근찬 자유선진당 원내대표도 “북한의 공격 가능성을 배제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군이 교신일지와 KNTDS(해군전술상황통제체제), 생존자 증언 등 핵심 정보를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은 북한 개입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박병석 민주당 의원은 “군 당국도 사실상 북 개입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는 이를 저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군과 청와대 간 사고원인에 대한 시각 차이가 무엇인지 답변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정운찬 총리는 “기본적인 입장에선 차이가 없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조사해 원인을 규명한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 기본입장”이라고 답했다.
이성헌 한나라당 의원은 청와대가 최근 외국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천안함 침몰사고의 원인을 찾겠다는 입장을 밝힌데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이 의원은 “이미 국내 전문가들이 북 개입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을 내린 상황에서 굳이 국외 전문가의 도움을 받겠다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지적했다. 최근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해양심층공학과 신영식 교수가 천안함 침몰 원인과 관련해 어뢰 공격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그는 “북한 군인 타격이 컸던 연평해전(1999) 뒤 3년 후 보복하겠다는 북의 예고대로 2002년 우리 군이 타격을 받았고 지난해 대청해전 이후 틈만 나면 보복관련 발언을 해 온 북한 군 경고대로 최근 키 리졸브 훈련이 끝나고 천안함이 침몰된 것”이라며 “북한군 도발임이 명백하다”고도 주장했다.
한편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 특별법과 혁신도시 건설·지원 특별법, 산업입지·개발법, 기업도시개발 특별법, 그리고 조세특례제한법 등 정부의 세종시 관련 5개 법률 개정안이 이미 지난달 23일 국회 제출과 동시에 소관 상임위인 국토해양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회 등에 회부됐다. 다만 일부 중진협의체 참여 의원들은 이 같은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천안함 사고가 정치권 대형 이슈가 되면서 천안함 사고에 다른 주요한 현안이 묻힐 것이란 일각에서의 예고가 사실화 됐다는 것이다.
아주경제 차현정 기자 force4335@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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