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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금융시장팀장 |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새천년 세계경제의 '게임의 룰'을 근본적으로 재편시킬 계기로 평가된다. 즉 그동안 현대 금융, 나아가 경제를 끌어 온 패러다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위기를 계기로 주류 경제학 전반에 대해 광범위한 반성이 일고 있다. 일단 세간의 관심은 효율적 시장가설이나 합리적 기대, 또 이에 기반한 각종 계량 모델에 맞춰진다. 하지만 진정한 초점은 그 이상이다. 1990년대 이후 미국경제의 부활 과정에서 세계 경제학계를 주름 잡은 새케인즈주의, 나아가 '아메리칸 스탠더드'의 새로운 판본인 신자유주의에 대해서까지 다각도의 성토가 이뤄지고 있다.
미국이 주도한 세계경제의 지배적 패러다임은 신자유주의다. 그런데 이것이 항간에서 이해되는 것처럼 시장 맹신론은 아님에 주의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1970~80년대 시장원리주의적인 보수주의의 부상, 다시 말해 레이거노믹스나 대처리즘과 같은 신보수주의 사조의 부흥에 대응한 근대적 자유주의의 변신이다. 즉 대공황의 교훈에 입각한 근대적 자유주의의 한계, 혹은 (신)케인스주의의 한계에 대한 신보수주의의 도전을 흡수한 결과다. 케인스의 얼굴을 띠면서도 통화주의나 새고전파의 문제제기를 적극 흡수한 새케인스주의는 신자유주의의 경제학이다.
실제로 신자유주의의 경제정책 강령이라고 할 '워싱턴 컨센서스'는 미국 클린턴 정부 시절 민주당의 씽크탱크였던 국제경제연구소(IIE)에서 만든 것이다. 단 근대적 자유주의가 강조한 정부의 능동적인 역할은 중앙은행의 시장친화적인 미세조정으로 재편됐고, 보수주의의 본령 고도금융(high finance)은 투자은행 혹은 유니버셜뱅크로 흡수됐다. 이러한 새고전파와 새케인즈파 간 새로운 동맹의 축은 리플레이션(유동성 팽창)이었다. 1990년대 이후 금융시장의 반복적인 버블·붕괴는 이 때문이었고, 2000년대 증시 버블 붕괴에 맞선 주택 버블 부양은 그 절정이었다.
그러나 이번 위기로 인해 신자유주의에 파산선고가 내려진다. 이런 가운데 다양한 대안들이 새로운 모델로서 경합을 벌이고 있다.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이른바 '베이징 컨센서스'다. 위기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의연한 행보를 이어왔던 중국의 위상을 반영해 점차 세를 키우고 있는 이 모델은 기본적으로 고용과 성장을 중시하는 비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성장 전략을 의미한다. 반면 선진국형 모델로는 일본과 독일의 '생태지향적 모델'이 있다. 이는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테마 하에 환경과 사회를 중시하는 축소지향적 성장 모델이다. 그 외에도 북구의 금융위기 극복 경험에 주목해, 노동과 복지를 결합한 '노르딕 모델'도 점차 각광 받고 있다.
한편 신자유주의 하에서 금융화와 세계화를 결합시킨 금융세계화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이런 가운데 '포스트 금융세계화' 시대의 새로운 쟁점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금융 민주주의'는 로버트 쉴러 교수가 주창한 것으로, 단순히 금융기관의 수익 극대화가 아니라 진정 금융서비스의 소비자 입장에서 '개개인의 삶에 적용된 리스크 관리'로서 금융의 위상을 재설정하려는 노력을 지칭한다. 개개인의 직업이나 가정의 가치에 대한 리스크, 우리 사회의 생명력이나 국가 경제의 견고성에 대한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미국 오마바 대통령이 취임연설을 통해 공론화 시킨 '공정무역'은 본래 개발도상국에 대한 불공정 교역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나온 개념이나, 점차 미국 등의 부채에 의존한 소비 남용을 제어하기 위한 차원에서 각광 받고 있다.
그 외에 최근 회자되는 '토빈세'도 이 두 가지 측면에서 관심을 끈다. 토빈세의 본래 취지인 핫머니 위주의 국경간 자본흐름에 대한 통제는 세계화의 공과를 분명히 가리자는 것이며, 최근 쟁점화 되고 있는 금융 부문의 과잉에 대한 규제 차원에서의 은행세는 금융의 위상을 재조명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모두 아직 광범위한 반향을 얻고 있지는 못하지만, 금융 및 세계화의 순기능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을 반영한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금융시장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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