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 라이트(earthlight)'. 가전업체 필립스가 1994년 개발한 기존 전구보다 전기를 75% 적게 쓰는 전구다. 야심차게 "어스라이트로 지구를 살리자"고 했지만 제품은 잘 팔리지 않았다. 6년 뒤, 똑같은 제품을 '마라톤 전구'로 이름 붙이고 "전기요금을 줄여주고 1만 시간 동안 지속되는 전구"라고 소개했다. 이 제품은 필립스의 전구 중 판매량이 가장 높은 제품 중 하나가 됐다.
최근 오리콤 브랜드전략연구소에서 소개한 그린마케팅 사례 중 하나다. '지구를 살리자'는 다소 추상적 명제보다는 소비자에게 혜택을 준다는 구체적인 내용에 초점을 맞춘 마케팅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마케팅으로만 볼 것도 아니다. 에너지효율을 높이거나 전력소모를 줄인 제품은 실제로 지구는 물론 소비자에게도 득이 된다. 가깝게는 전기세를 아낄 수 있고 멀리 보면 유지·보수비도 적게 든다. 일상생활 속에서 지구를 살리는 데 동참했다는 뿌듯함은 우수리다.
그렇다면 기업에는 어떨까? 답은 '기업에도 득'이다. 자원고갈과 온난화 등 전 지구적 이슈와 비용 절감을 원하는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제품을 출시함으로써 이윤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와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기술과 제품을 개발했다는 자부심은 덤이다.
유럽 등 선진국을 시작으로 에너지효율을 강화하는 움직임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15일 지식경제부는 에너지효율 기준을 상향조정한다고 밝혔다. 앞서 13일 미국정부는 가전제품 에너지효율마크인 '에너지스타'의 인증방식을 기존 제조사 자체 승인에서 미국 환경청 승인방식으로 변경했다.
새로운 기준에 맞춘 기술개발을 해야 하므로 당장 기업에는 부담이 되는 조치다. 일부에서는 우리나라 가전업체의 대미(對美) 수출전선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발빠른 조치를 취한다면 단기적으로 에너지 고효율 제품 출시로 시장 선점, 장기적으로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초석을 다지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가전업체들은 각 나라의 기준에 맞춘 제품 개발은 물론 스스로 조금 더 엄격한 기준을 만들자. 일종의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한 '최선의 시나리오'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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