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정은 기자) 진정으로 꿈꿔왔던 일을 하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다. 자신이 가진 지식과 재능을 온전히 사회를 위해 쓰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국제여성인권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우미선(33)씨는 행복한 사람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갈고 닦은 지식과 재능을 사회에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여성 법률지원 국제기구인 아시아태평양 여성 법과 개발 포럼(APWLDㆍAsia Pacific Forum on Women, Law and Development)에서 간사로 일하고 있다. 1986년 발족된 APWLD는 여성들이 사회변혁과 정의ㆍ평등ㆍ개발 그리고 평화를 이루는 데 법을 수단화하도록 장려하고 있는 국제기구다. 우 간사는 이곳에서 여성의 인권상황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국제 인권법 및 정책을 감독하고, 여성인권 향상을 위해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일을 맡고 있다.
우 간사는 이화여대 법학과 재학시절부터 난민문제, 특히 탈북자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대학시절 "과연 법이라는 제도가, 법학이라는 학문이 실제적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탈북자 인권에 관심 많았던 여대생은 미국 뉴욕대 로스쿨에서 여성인권에 보다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미국 내 무슬림을 상대로 법률상담을 하고 북한인권시민연합에서 간사로 일하면서 탈북 여성들을 만나게 된 게 계기가 됐다. 우 간사는 "탈북 여성들의 이야기가 마음으로 다가오는 특별한 경험을 통해 그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법학 공부를 10년을 넘게 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도움 수단은 법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로스쿨을 마치고 박사 과정 진학과 미국 변호사 시험을 동시에 준비하면서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우 간사는 "내 마음이, 내 학문적 소양이 실제적인 경험에 근거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과연 무슨 변화를 유도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에 실무 경험을 더 쌓기로 마음 먹게 됐다고 했다.
APWLD와 인연이 닿게 된 그는 현재 이 국제기구 본부가 있는 태국에서 치열하게 현장과 부딪히고 있다. 국내법과 국제법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법과 현실의 괴리는 없는지, 있다면 어떻게 어떤 절차를 거쳐 간격을 메울 수 있는지 등 그의 고민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우 간사는 국제 인권전문가로 일하며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으로 2008년 유엔여성차별철폐특별보고관 및 유엔원주민인권특별보고관과 함께 한 회의를 꼽았다. 당시 그는 파푸아뉴기니에서 온 원주민 여성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들어줘서, 또 여성 및 모든 사람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쓰는 활동가들을 만나 큰 힘이 됐다"는 그녀의 말을 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 간사는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 또 너와 내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시작이자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원주민 여성이 그가 이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 줘 너무 행복했다는 얘기이다.
우 간사는 한국의 여성인권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있는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제도나 여성인권운동의 영향력이 월등하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그는 여성의 인권을 위해 한국이 보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우 간사는 또 우리나라 여성인권운동의 당면과제로 법과 제도의 올바른 이행, 평등사회를 이루기 위한 지속적인 교육과 인식변화를 꼽았다. 특히 탈북여성과 이주여성노동자, 장애여성 등 소외계층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상황개선을 위한 노력을 당부했다.
우 간사는 아울러 남성위주의 조직문화를 바꾸려면 사회ㆍ제도적 노력은 물론, 근본적으로는 개인의 시각과 태도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잘못된 관습에서 비롯되는 여러 가지 억압과 차별, 사회적 편견 등 제도적인 노력만으로는 치유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들이 있다"며 "이는 모두 개개인의 마음가짐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이어 "다른 사람을 나만큼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와 노력이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첫 걸음이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덧붙였다. 사람의 마음이 먼저 바뀌면 제도나 사회적 변화는 당연히 뒤따라 오게 돼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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