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개각’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공직자의 도덕성 문제가 어느 때보다 엄격하게 다뤄진데다, 딸 특별채용 문제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던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즉각 자진사퇴하면서 그간 반신반의했던 여야 정치권도 ‘공정 사회 구현’을 더 이상 정치적 수사로만 여겨선 안 됨을 실감하고 있는 것.
한나라당이 ‘성희롱’ 파문을 이유로 강용석 의원을 당원에서 제명한 것이나, 민주당이 강성종 의원의 국회 체포동의안 처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여야는 “공정사회를 위한 개혁에 정치권이 솔선수범해야 한다”는데 공감하면서도 그 방향과 파장을 쉽게 가늠키 어렵다는 점에선 내심 고심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실제 여권 내에선 “‘공정’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정리하지 않은 가운데 ‘마녀사냥’식 여론전이 전개될 경우 결과적으로 ‘자기 발목잡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 아울러 정치권 일각에선 ‘공정 사회 구현’이 정·관계를 포함한 사회 전반에 대한 대규모 사정(司正) 정국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은 일단 유 장관 딸의 특채 논란에서 불거진 현 공무원 채용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공정 사회 구현’을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쪽에 향후 정국 대응의 방점을 찍고 있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공정 사회의 개념이 추상적이고 광범위해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며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그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공직자 채용과정이 투명해야 공직자도 떳떳하고 국민도 정부를 신뢰할 수 있다”면서 앞서 논란이 되고 있는 행정고시의 단계적 축소 등 개편안에 대해 당·정 협의를 거쳐 조정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정두언 최고위원도 “현재의 ‘공정 사회’는 총론만 있고 각론이 없다. 이 각론을 당이 주도해야 한다”면서 행시 개편안 외에 대학의 입학사정관제와 관련해서도 “공정한 기회를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고흥길 정책위의장은 “정기국회에서 공정 사회와 관련한 법안을 우선적으로 처리하겠다”고 전했다.
이에 맞서 민주당은 “‘불공정한 사회’를 만든 책임은 현 정부와 여당에 있다”며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대통령이 연일 공정한 사회를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청와대와 정부, 권력이 공정하지 못한데 문제가 있다”면서 “유 장관 딸 문제 하나를 해결한 것으로 마치 공정한 사회를 이룩한 것처럼 얘기하는 건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또 박영선 의원은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 등과 관련, “‘공정 사회’란 말이 나오게 된 배경엔 본인은 법을 지키면서 국민에겐 강요하는 검찰의 불공정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이처럼 여권에 ‘불공정 사회’에 대한 책임을 제기한 배경엔 야당 몫의 논점인 공직자의 공정성·도덕성 문제를 선점당한데 따른 위기감도 일정 부분 반영돼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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