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이루지 못할 꿈이 있습니다. 시가 문학의 한 형식인 것을 벗어난 초문학적인 표현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시는 문학 또는 예술 이상입니다."
4일 단국대 죽전캠퍼스에서 열린 '2010 세계작가페스티벌' 제1차 포럼 기조강연에서 고은 시인이 '바다의 시 정신'을 강연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지금까지 존재한 시의 온갖 형식과 사조, 성취와 실패들을 다 불러들여 해류에 싣고 떠다니며 그것들을 파도치게 해야 한다"며 "그래서 세계 시 5000 년의 집적으로부터 새로운 시의 원년을 이루기를 열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의 인간 행위가 인류사적으로는 지상의 행위일지라도 그 행위의 어느 요소에는 반드시 저 아득한 바다의 전생이 인화돼 있을 것"이라며 "바로 이러한 시적 공간의 가없는 외연을 통해서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자아의 확대가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몇천 년의 시의 역사는 이제 바다 시의 시대를 맞이할 때에 이르렀다"며 "이는 지상의 시를 부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동안 시를 낳은 지상의 삶과 문화의 고착에 대응하는 바다의 유동과 교류의 시대에 시가 어떻게 올 것인가라는 새로운 시적 탐험을 뜻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시인은 대상을 제국의 내부에 편입하는 배타적이고 탐욕적인 육지사관에서 벗어나 지상의 모든 것들과 바다 위 천체 운행의 모든 것들이 수많은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나는 자연의 공적 장소인 바다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실 지구라는 이름은 오류며 수구(水球) 또는 해구(海球)여야 한다"며 "지구상의 6대주라는 육지는 5대양이라는 커다란 바다에 떠 있는 섬에 불과하다. 오늘의 인간은 기껏해야 섬의 인간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역사를 육지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바다에서 육지를 바라본다면, 거기에서는 어느 지역 어느 국가도 섬입니다. 하나의 섬은 이제 다른 섬들과의 관계사로서 존재합니다. 19세기 이래의 교통 통신 수단은 이제 멀티미디어와 인터넷의 첨단 정보가 됐고, 실로 밤낮이 없는 해류와 바다 기상의 진행과 우리의 현 문명은 일치되고 있습니다."
그는 이어 "바다의 시 정신은 육지의 단일적인 자아가 집착하는 밀실의 언어 조작의 질서를 넘어설지 모른다"며 "육지에서의 시들이 쌓아올린 것이 행여나 다른 시의 가능성을 억압한 것이 아닌지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같은 근원으로서의 바다가 이로부터 긍극으로서의 바다가 된다"며 "시는 인간의 것만이 아닌 것, 바다의 것 그리고 우주의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국대와 동아일보가 공동 주관하는 이번 행사는 '바다의 시 정신-소통의 공간을 노래하다'라는 주제로 6일까지 서울교육문화회관과 단국대 죽전ㆍ천안캠퍼스에서 열린다.
고은 시인을 비롯한 한국 문인 29명 외에 안토니오 콜리나스, 모옌, 크리스토퍼 메릴, 더글러스 메설리, 예지 일크, 고이케 마사요 등 해외 작가 11명이 초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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