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하 산은경제연구소 경제조사팀장 |
연일 내림세를 이어가는 원/달러 환율 얘기다. 진씨는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올해 미국 소재 대학에 진학한 아들을 두고 있다. 그에게 원화 강세는 누구보다 반갑다.
이런 추세라면 내년에는 아들에게 다니러 갔다 올 수도 있을 것이란 희망에 차 있다. 천안함 사태와 남유럽발 재정위기로 환율이 치솟던 지난 5월말을 생각하면 금석지감(今昔之感)이다
원화의 강세가 예사롭지 않다. 지난 7일 원/달러 환율 종가는 1114.50원. 8월말에 비해 83.70원이 떨어져, 최근 한 달 여만에 하락률이 7.0%에 달했다.
진씨 같은 수혜자가 있는 반면, 가슴이 타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정부 당국자들이 그렇다. '참다 못한' 정부가 이 날 드디어 시장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것도 국회 기획재정위 국정감사 업무보고라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다.
옛날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당국이 드러내 놓고 시장개입을 하겠다는 것은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일이다. 환율전쟁에서 밀려날 수 없다는 '출사표'를 던진 셈이다.
환율전쟁을 치르고 있는 나라는 비단 미국, 중국, 일본만이 아니다. 지난 달 일본의 외환시장개입에 따라 미국과 중국, 일본, 유로존 사이의 환율정책 대립은 불꽃을 튀기고 있다. 그 불똥이 아시아 국가들과 브라질 등으로 옮겨 가고 있는 양상이다. 이미 자국통화의 절하정책을 써오고 있는 미국과 중국을 넘어 세계 각국으로 확전(擴戰)되고 있는 것이다.
월 스트리트 저널(WSJ), 파이낸셜 타임스(FT) 등은 최소한 6~7개국이 자국통화 강세 방어를 위해 시장 개입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일본을 비롯,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대만, 브라질 등이 거론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개입이 상호공조 형태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해도 저마다 한 발 먼저 들여놓겠다는 계산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화강세의 흐름을 되돌릴 수 있을 가능성도 크지 않아 보인다. 달러화 약세가 현재로서는 대세(大勢)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다음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국채 매입 확대를 통한 양적완화(量的緩和)를 발표할 예정이다. 고만고만한 나라들이 자국의 통화가치 약세를 유지하기 위해 고작 몇 억 달러를 시장에서 사들이는 것은 '코끼리 비스킷'이다.
경쟁국의 국채 같은 자산을 매입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저 자국통화의 절상 속도를 낮추는 정도일 것이다. 그 뿐이다. 실속은 못 챙기고, 국가신용만 떨어뜨리게 된다.
환율전쟁은 승자(勝者)없는 전쟁이다. 모두가 패자(敗者)일 뿐이다. 외환시장 개입이나 타국 자산 매입은 사실 모두에게 손실이고, 모두가 가난해지는 근린궁핍(近隣窮乏) 정책이다. 시장개입의 비용은 차치하고라도, 주변국들의 자산버블을 키우게 된다.
중국이 우리나라와 일본의 채권매입을 통해 원화와 엔화의 가치를 올리는 작금의 경우를 보자. 일시적으로 중국자본이 국내로 유입되면 유동성이 증가해 한국과 일본의 자산가치가 오르게 된다. 버블을 키우는 것은 물론이고, 만일 자본이 일거에 빠져나간다면 더욱 더 큰 화(禍)를 일으킨다.
또한, 너도 나도 자국의 통화가치를 낮추는 것은 보호무역으로의 회귀에 다름 아니다. 이는 가장 강력하고 전방위적인 무역장벽이다. 금융위기 이후 자국이익을 위한 각국의 부분적 보호무역주의 및 반덤핑 부과 확산이 있었지만, 외환시장 직접 개입에 대해서 조심스러웠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이제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금융안정을 위협하는 여러 요인들 중 가장 심각한 것이 환율위험이다. 최근의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그나마 버티고 있는 신흥국들이 또다시 위기에 처하는 현실이 도래할지 모른다. 이들 국가들이 환율충격에 특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는 공조(共助)보다는 자국의 이익이 우선시 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나 먼저 살겠다는 생각은 모두를 공멸(攻滅)로 이끄는 길이다. 스스로 조금 더 자제하고, 한자리에 모여 다 같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이전투구(泥田鬪狗)의 거친 글로벌 경제 환경이지만 진정한 지혜와 용기는 어려운 시기에 더욱 빛을 발하는 법이다. 뻗을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 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