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글로벌 기업들의 신제품 '테스트베드(Test-Bed)'로 급부상하고 있다. 까다로운 취향을 가진 한국 소비자들의 눈에 든 제품이라면 전 세계 어디서나 통한다는 게 이들이 한국을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뉴욕타임스(NYT)는 10일(현지시간) 한국 소비자들이 최근 글로벌 기업들의 신제품 개발 최종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프랑스 화장품업체 로레알과 네덜란드 가전업체 필립스와 일본의 니콘 등은 신제품을 세계시장에 내보내기 전에 한국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기호와 수요를 바탕으로 제품의 성패를 가늠하고 있다.
리처드 심버그 로레알 코리아 사장은 "한국에서 호응을 얻은 제품은 다른 아시아 지역 국가는 물론 세계시장에서도 똑같은 반응을 얻을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을 최적의 테스트베드로 평가하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표본 인구가 넉넉하다. 특히 인구 5000만명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수도 서울에 살고 있어 신제품에 대한 반응을 취합하기 유리하다. 또 서울 인구의 상당수가 한 해 평균 3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기 때문에 생활수준이 선진국 국민들에 비해 뒤쳐지지 않는다.
특히 삼성이나 현대 같은 경쟁력 있는 기업이 만드는 제품과 훌륭한 소비자 서비스는 이미 대다수 한국인들의 기대치를 충분히 높여놨다. 또 90%가 넘는 광대역인터넷 보급률은 소비자 트렌드를 급속히 전파시켰다.
김상훈 서울대 마케팅학 교수는 "한국 소비자들의 높은 기대치에 맞추려는 노력은 소비자 서비스 방면에서 기업들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소비자들의 매서운 눈을 거친 기업들의 제품은 해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소영 필립스 코리아 홍보매니저는 "소비자들이 너무 빨리 더러워진다며 다리미 코드의 색깔을 흰색에서 검정색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한 것을 계기로 코드 색을 바꿔 출시한 '패션아이언'은 2008~2009년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았다"고 말했다.
한국 소비자들의 취향을 높이 평가하기는 카메라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 카메라시장에서 한국시장 비중은 2%에 불과하지만 한국인들은 가장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SLR클럽' 등 관련 웹사이트에 올라오는 온라인리뷰와 코멘트의 양은 미국에 비해 10배나 많다는 설명이다.
김동국 니콘 마케팅소통팀 매니저는 "인물사진을 찍을 때 인물은 선명하게 찍으면서 배경은 흐리게 찍는 것을 선호하는 한국인들의 취향을 반영해 '카페렌즈'를 선보였다"며 "이 렌즈는 한국 이외의 지역에서 AF-S DX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로레알도 '파우더룸'과 '글래스미러' 같은 웹사이트를 통해 화장품의 텍스처나 입자에 대한 한국 소비자들의 평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로레알은 한국 내 68개 백화점에 이례적으로 많은 900명의 판매 대표들을 두고 있다.
로레알은 한국인들이 촉촉한 느낌의 질감을 선호하면서도 유분이 많은 것을 싫어한다는 데 주목해 덥고 습기가 많은 한국의 여름환경에 맞춘 젤에센스를 출시하기도 했다.
리처드 심버그 로레알 코리아 회장은 "한국인들은 요구 조건이 많지만 이들의 불평은 매우 건설적인 방식으로 제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은 기자 nvcess@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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