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아시안게임에서 단 1승도 올려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 부탄 복싱이 8강까지 진출하는 엄청난 쾌거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8강에 나간 씨기툽이 4강까지 진출한다면 부탄의 아시안게임 출전 사상 첫 메달의 주인공이 된다. 1990년 베이징 대회부터 출전한 부탄은 몰디브, 동티모르 등과 함께 아시안게임에서 한 개의 메달도 따지 못했다.
복싱은 4강에 진출하면 최소한 동메달이 확보된다. 하지만 씨기툽은 21일 살라마나 웨삼(시리아)과 8강전에서 1-6으로 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씨기툽은 지금까지 이룬 성과 만으로도 '부탄 복싱의 영웅'이 되는 성과를 거뒀다.
씨기툽과 함께 부탄의 복싱의 희망가를 써 가는 인물이 바로 한국인이라 눈길을 끈다. 주인공은 부탄 복싱 국가대표팀 김재휴(45) 감독이다.
김 감독은 인천시와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가 마련한 스포츠 약소국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작년 12월 부탄에 파견됐다. 인천시는 2014년 아시안게임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OCA-인천 비전 2014'을 만들어 스포츠 약소국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김 감독은 3명의 국가대표를 이끌고 이번 아시안게임에 참여했다. 부탄은 또 태권도에 8명 등 격투기에만 11명을 내보냈다.
사실 부탄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첫 메달을 따 줄 것으로 기대한 선수는 태권도의 펜조르 손암이었다.
손암은 올해 방글라데시에서 열린 서남아시아게임 태권도 80㎏급에서 동메달을 딴 기대주였다. 하지만 16강에서 중국의 인즈멍에게 0-8로 무참하게 패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복싱은 달랐다. 52㎏급의 길리겔센는 '예상대로' 첫 경기에서 필리핀의 사루다르 레이에게 1회 KO로 패했지만 센조왕디는 32강에서 승리를 거두고 16강에서 아쉽게 무릎을 꿇었다.
특히 씨기툽의 활약이 눈부셨다. 32강에서 키리키스탄의 아브딜다베크 울루 쉬미크를 5-4로 제압하더니 16강에서는 카자흐스탄의 툴레게노프 다니야까지 6-3으로 이겼다.
씨기툽의 승리 소식이 고국에 전해질 때마다 부탄은 열광했다.
김 감독은 "1970년대 챔피언 홍수환이 경기를 할 때 우리 국민이 TV를 보며 응원했던 분위기를 연상하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탄 국왕의 동생이자 부탄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인 지겔우겐왕축은 광저우까지 직접 찾아 격려했다. 지겔우겐왕축은 김 감독을 따뜻하게 포옹하며 승리를 기원한 뒤 20일 돌아갔다.
씨기툽은 이번 대회를 통해 영웅이 됐지만 '행복 지수 1위'의 나라 부탄의 국민답게 소박하기 그지 없다.
김 감독에 따르면 씨기툽이 메달을 딴 뒤 지겔우겐왕축 회장에게서 받고 싶어 하는 선물은 엉뚱하게도 '소 두 마리'다. 씨기툽은 소 두 마리를 부리며 농부로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김 감독도 부탄에서 씨기툽처럼 소박하지만 의미있는 꿈을 키워가고 있다. '부탄에서 선수로 이루지 못한 꿈을 지도자로서 펼치고 싶다'는 것이다.
인천체육고와 한국체대를 졸업한 김 감독은 1988년부터 1991년까지 국가대표로 뛰었다. 킹스컵 대회 등에서 동메달을 땄지만 아시안게임 메달과는 인연이 없었다.
인천남동중학교 코치, 용인시청 코치 등을 역임한 김 감독은 그래서 'OCA-인천 비전 2014' 측의 제안을 받고 흔쾌히 응하고 부탄행 비행기에 올랐다.
각오는 했지만 부탄 수도 팀푸에 도착해보니 복싱 상황은 훨씬 더 열악했다. 등록 성인 선수가 100여명에 불과했고 실내 복싱 체육관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김 감독은 운동장에 샌드백을 걸어 놓고 훈련을 지도했다. 훈련장 사용은 스포츠 아미(일종의 국군체육부대)의 도움을 받고 있다.
또 김 감독은 선수에게 동기를 부여하고자 훈련에 마인드 컨트롤 등 독특한 심리 기술을 사용해 기량을 끌어올렸다. 지난 6월에는 인천 등의 지원을 받아 인천에서 전지훈련도 하며 땀방울을 흘렸다.
또 부탄의 복싱 발전을 위한 청사진도 제시했다. 복싱 코치 아카데미, 복싱 서적 출판, 복싱 홈페이지 마련 등을 제안했고 주니어 선수를 위한 다양한 방안도 마련했다.
김 감독은 이번 아시안게임을 마치면 계약 기간이 끝난다. 김 감독은 1년 정도 더 머물며 부탄 복싱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추진하기를 원한다.
부탄 복싱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김 감독이 어떤 성과를 이룰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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