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대포폰(명의도용 휴대전화)’ 논란 등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심의를 거부해왔던 민주당은 이날 원내·외 병행투쟁으로 방향을 바꿔 예산심의에 복귀할 방침이었다.
전날 밤 ‘원내복귀’를 결심한 손학규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를 잇달아 열어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국회 정상화 방침’을 선언할 예정이었다. 박지원 원내대표도 이 같은 의견에 동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등 여권 핵심부가 국조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예산심의 거부에 따른 국회파행이 지속될 경우 ‘야당이 예산을 정쟁의 볼모로 잡았다’는 비판여론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때문이다.
손 대표와 박 원내대표가 “의원은 국회를 지켜야 한다”는 원내 투쟁론자란 점도 이 같은 결정에 한몫을 더했다.
게다가 자유선진당이 이날 ‘예산심사 무조건 참여’를 선언한데 이어 창조한국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다른 야당도 이를 검토키로 함에 따라 민주당의 부담이 한층 커졌다.
그러나 손 대표의 예산심의 복귀 결정은 곧바로 정동영·정세균·천정배·박주선 최고위원 등의 반대에 부딪혔다.
정부·여당으로부터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한 채 예산심사를 재개할 경우 대포폰 국조를 강제할 만한 수단이 없어진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특히 정 최고위원 등은 “예산심의도 중요하나 민간인 사찰은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국기 문란 행위인 만큼 반드시 국조를 관철시켜야 한다”며 전면적인 장외투쟁을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의 고민이 거듭 깊어지는 가운데, 한나라당은 “예산심의 지연은 곧 서민들의 피해로 돌아간다”며 예산심사 복귀를 재차 압박하고 나섰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 지도부가 바뀌어도 연말 예산 발목잡기 행태가 전혀 달라진 게 없다는 건 우리 정치의 비극이고 부끄러운 모습”이라고 지적했으며, 김무성 원내대표도 “국회는 야당 활동의 장(場)이다. 야당은 국회에서 정부를 견제, 비판하며 존재가치를 부각시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이군현 원내수석부대표는 “내년 예산 309조원 가운데 86조원이 복지예산”이라며 “(야당이) 예산심의를 빨리하지 않으면 서민·복지예산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이날 김황식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들이 출석한 가운데 한나라당 주도로 전체회의를 열어 내년도 정부 예산안 등에 대한 종합정책질의를 진행했다.
한나라당 소속의 이주영 국회 예결위원장은 “국민의 살림살이를 살피는 예산심의는 정치적 쟁점과 연계시켜선 안 된다”면서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고 여야 간 정치적 여건 때문에 어렵긴 하지만 법정시한(12월2일)내 예산안을 처리한다는 목표는 그대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force4335@ajnews.co.kr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