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10대 소년ㆍ소년의 바둑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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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11-22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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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보러 온 친구 따라 왔다가 제가 그만 돼버렸어요."
    유명 연예인의 데뷔 동기에 대한 단골 코멘트다.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친구의 부탁으로 오디션에 따라왔다가 불쑥 자신이 발탁됐다는 것이다.

   평범했던 프로기사 이슬아(19)는 지난 8일 열린 광저우아시안게임 한국선수단 결단식 때 벼락스타가 됐다.

   친구따라 간 오디션에서 심사위원 눈에 띄어 덜컥 합격해버린 연예인처럼 이슬아는 수영스타 박태환과 사진 한장 찍겠다고 기다리다가 오히려 기자들의 집중 플래시 세례를 받고 당구의 차유람, 수영의 정다래 등과 함께 하루 아침에 유명인이 되었다.

   이슬아는 이미 연구생 때부터 젊은 남자 프로기사들 사이에서 '입단희망 1순위'로 주목받았다.

   귀여운 외모에 쾌활한 성격의 '이슬같은' 여중생 연구생은 바둑만 두어온 '젊은 늑대'들에게 공동의 목표물이었다.

   이슬아의 외모는 어려서부터 돋보였다.

   2005년 현대바둑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중학교 2학년 연구생 이슬아는 흰색 미니스커트 정장을 입고 나왔다.

   청바지에 운동화차림으로 식이 빨리 끝나기만 기다리던 다른 연구생들과 달리 화사한 웃음으로 끝까지 자리를 지켜 점잖은 '바둑 동네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고교 1년생인 2007년 4월 정식 프로기사가 돼 입단 인터뷰를 할 때는 긴 가발을 쓰고 나타나 주위를 놀라게 했다.

   성숙하게 보이고 싶었고 프로로서 처음 팬들과 만나는 자리인 만큼 차림새에 당연히 신경을 써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2008년에 열렸던 제1회 월드마인드스포츠때 이슬아는 선수단 기수로 선정됐다는 통보에 치마 저고리를 차려입고 나섰다.

   비록 주최 측의 미숙한 운영으로 1시간 내내 관중석에서 피켓을 들고 대기만 하다가 돌아서야 했지만 아름다운 한복을 입고 있던 동양 미녀는 대회 관계자들 사이에 큰 화제가 됐다.

   그러나 이슬아는 가녀린 외모와는 달리 '독한 승부사'다.

   목표물을 발견했을 때 폭발적인 힘을 낸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지독한 녀석이에요"
    같은 도장에서 오랫동안 이슬아를 지켜본 한종진 8단의 평가다.

   기재는 뛰어나지만 놀기를 좋아하던 이슬아는 입단 전 한때 연구생 2조 8위까지 떨어진 적이 있었다.

   전체 48명중 20위였으니 입단은 커녕 퇴출을 걱정해야 할 성적이었다.

   자신의 바둑공부를 위해 여수에서 서울로 이사 온 가족들에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마음을 잡고 본격적으로 입단을 목표한 이슬아는 사람이 달라졌다.

   이후 불과 1년 후에 기적적으로 20계단을 상승하며 연구생 내신 1위로 입단에 성공한다.

   프로가 되고 나서 이슬아는 유독 국제전에 강했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입단 첫해에 정관장배 세계여자대회 한국대표로 선발된 후 본선에서 선봉장으로 나서 우메자와 5단, 왕판 초단을 연파하며 2연승했다.

   데뷔하자 마자 강한 인상을 심으며 10여년간 이어진 루이나이웨이-조혜연-박지은의 `3강 구도'를 허물 선두주자로 부각됐다.

   피아노, 기타, 영어를 배우며 자신을 즐기던 이슬아는 바둑이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첫 국가대표라는 목표가 생기자 또다시 사람이 달라졌다.

   동갑내기 라이벌 김미리 초단과 `정관장의 영웅' 이민진 5단 등에 밀릴 것이라는 주위의 평가를 뒤엎고 42승19패의 가장 좋은 성적으로 제일 먼저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러나 아시안게임 첫 국가대표가 이슬아의 최종 목표는 아니었다.

   "훈련이 끝나고 상비군 훈련장에 들렀다가 문이 잠겨있어서 열쇠로 열고 들어갔습니다. 슬아가 혼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더군요. 뭔가 일을 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대표팀 양재호 감독은 진작부터 마음 속에 대표팀의 비밀병기로 이슬아를 담고 있었다.

   '바둑 얼짱'의 금메달은 친구 따라 갔다가 된 '우연한 합격'이 아닌 목표를 향해 치밀하고 독하게 훈련해 얻어낸 '필연의 결과'였다.

   아시안게임에서 이슬아의 유명세에 밀렸지만 박정환(17세) 8단은 이창호, 이세돌에 못지않은 스타다.

   바둑 입문 8개월만인 6세에 한국여성바둑연맹회장배 어린이 대회 우승하고 13세에 프로 입단한 천재였다.

   또한 마스터스 챔피언십 우승으로 이창호(14세1개월)에 이은 역대 최연소 2위인 14세10개월만에 프로대회에서 우승했고 16세에는 오픈기전인 십단전에서 우승했다.

   2006년에 인터넷 바둑업체가 프로기사 106명을 상대로 한 '이창호-이세돌의 뒤를 이을 유망주' 설문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설문조사는 12월에 했고 박정환은 5월에 입단했으니 불과 7개월차 풋내기의 어깨에 한국바둑의 미래를 걸쳐버린 셈이다.

   작년에는 3살 위인 김지석과의 차세대 경쟁에서 승리하며 천원 타이틀을 획득했고 올 1월에는 '돌부처' 이창호를 쓰러뜨리며 십단전 2연패에도 성공했다.

   박정환은 형과 12살, 누나와 10살의 터울이 지는 늦둥이 막내다.

   집에서도 그랬듯이 바둑계에서도 늘 막내였다.

   이제는 단위도 8단이고 프로생활도 5년차라 제법 많은 후배를 거느리고 있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정환은 늘 막내로 인식된다.

   그러나 막내는 이미 '타도 중국'의 핵심으로 성장했다.

   중국의 차세대 선두주자이자 자신의 천적으로 부상하던 천야오예 9단과의 한중천원전에서 승리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번개같은 수읽기와 상대에게 끊임없이 굴욕을 강요하는 집요함은 이세돌을 연상시킨다. 존경하는 프로기사 이세돌이다.

   이슬아-박정환은 혼성복식의 B팀이었다.

   안정적인 전력의 최철한-김윤영 조가 A팀으로 실질적인 에이스였다.

   그러나 양재호 감독은 10대 콤비의 파괴력에 기대를 많이 걸었고 당찬 신세대는 갈수록 신바람 바둑을 구사하며 염원의 금메달을 따냈다.

   이번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이슬아에게는 실력과 미모를 겸비한 진정한 '얼짱 스타'로 발돋움했고 박정환은 바둑계 최초의 '체육 병역특례자'가 됐다.

   대표팀의 남녀 10대 막내들은 '최초의 아시안게임 바둑 금메달'이라는 영예를 합작하며 바둑계에 큰 획을 그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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