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이필주 특파원) 친구! 북한에서 연평도에 포탄을 퍼 붓던 지난달 23일, 난 엄청난 배신감에 떨어야 했네. 천안함이 격침된 지 얼마나 됐다고. 더구나 이번엔 백주대낮에 보란 듯이 민가를 포함해 무차별 폭격을 해 댔고 1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뉴스는 내 가슴을 미어지게 했고 온 국민의 공분을 샀다네. 유엔과 세계 각국에서도 우려를 표하고 북한의 도발을 규탄했었지.
그 사태후 만난 자네는 진심으로 우리를 걱정해 주었네. G20 정상회의 직전에 서울에 들렀을 땐 자네가 통일전망대엘 꼭 가보고 싶다고 해서 내가 안배했었지. 그리고 입대를 앞둔 아들녀석이 자네 통역까지 맡았던 일이 아직도 생생했던 터라 우리 가정사까지 염려해 주었지. 참으로 고마웠네.
자넨 이런 말을 했네. 남북관계는 마치 ‘착한 아이(好孩子)’와 ‘못된 아이(壞孩子)’가 어울려 사는 관계 같다고. 못된 아이는 성에 차지 않으면 수시로 착한 아이를 괴롭히지. 배가 고파도, 어딘가 불편해도, 샘 나는 일이 생겨도 그리고 뭔가 뜻대로 되지 않는 일만 생겨도 착한 아이를 못살게 굴지. 그러나 착한 아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감해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이니. 그럴 사한 비유라고 생각했네.
그런데 말일세. 우리가 더 서운한 것은 한 동네에 사는 다른 친구들이 그런 못된 짓을 모른 체 하거나, 오히려 못된 아이를 두둔하는 것이라네. 한번도 아니고 몇 번씩이나 정의롭지 못한 변명을 하면서. ‘공정’하지도 ‘공평’하지도 않은 어정쩡한 입장에서 방관자적 자세를 보일 때, 자네가 말한 착한 아이는 한 없이 억울하고 속상하다네. 게다가 정말 화가 나 한대 쥐어박기라도 할라치면 절대 안 된다고 펄쩍 뛰니 난감할 수 밖에.
친구! 나는 그 친구가 선의로 그럴 거라고 생각하네. 최소한 악의는 없다고 믿네. 또 그럴 수 밖에 없는 처지라는 것도 이해한다네. 우리 탓도 있음을 인정하네. 그런 못된 행동이 되풀이 돼도 우린 그 동안 바보처럼 큰 소리만 쳤지 한번도 제대로 본때를 보여주지 못했으니까.
나는 그날 자네에게 중국과 우리 한국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을지 물었네. 자네는 한참을 고민하다 이렇게 충고했네.
우선 현실적으로 중국은 남과 북 어느 한편만을 지지할 수는 없다고. 북한이 못된 아이이고 매우 귀찮은 존재임을 잘 알면서도 한반도가 미국의 완전한 영향력아래 놓이는 것은 원치 않으니까. 게다가 중국으로선 북한을 압박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도 인정했네. 일정 이상의 압력은 반발을 불러오고 예측 불허의 북한으로 하여금 도리어 엉뚱한 행동을 할 빌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이었지.
그리고 한국에는 이렇게 충고했지. 먼저 집권당이 중국 공산당과의 관계를 아주 긴밀히 해야 한다고. 사실 중국 공산당과 한국의 정당은 여러 가지로 다른 점이 많고 영향력 측면에서 비교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정당간 교류가 보다 긴밀해야 한다고 충고했지. 그리고 군사교류를 강화할 것도 권했네. 특히 고급 장교가 서로 상대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마련하면 좋겠다는 말도 했네. 아마 한국이 너무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점이 마음에 걸렸던 탓일 거라 믿네.
친구! 우리가 만난 지도 어느덧 19년째로 접어드네. 수교직후인 1992년 겨울에 만났으니 말일세. 강산이 두 번 바뀐다는 그 긴 세월 동안 우리는 변함 없이 우정을 쌓았으니… 우리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친구가 진심 어린 걱정을 해주고 충고를 해 준 점 고맙게 생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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