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절대가치 ‘금값’ 거품단계로 성큼 성큼
제2회 빛나는 금의 경제사
제3회 꿈틀거리는 중국의 ‘금 전쟁’
<제3회> 꿈틀거리는 중국의 ‘금 전쟁’
중국이 ‘금(金)의 나라’로 변하고 있다. 중국인민은행은 물론 일반 중국인까지 금 사재기에 나서면서 세계 금시장에서 중국은 블랙홀과 같은 존재로 바뀌고 있다.
특히 중국이 인플레이션 압력에 맞서고 있는 가운데 저소득층의 생활고를 가중시켰지만, 중산층 이상에는 재산가치를 지키려는 ‘금 사재기 열풍’을 불러왔다.
세계금위원회의 통계를 보면 지난해 9월~올해 9월 중국의 금 소매 판매량은 153.2t으로 그 전 1년간에 비해 70% 급증했다. 중국의 올해 1~10월 금 수입은 209t으로 전해 같은 기간에 비해 5배 늘었다.
이는 국제 금값 상승세의 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외화자산을 미국 국채에 너무 많이 넣어놓고 있는 것에 우려를 나타냈다. 이후 중국이 금 보유 비중을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는 외신 보도가 잇따른 가운데 외환 보유액 중 금의 비중은 0.9%다.
국제금융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아편전쟁이 터지기 전 세계의 은(銀)이 청 제국으로 흘러 들어간 것처럼 조만간 금은 중국으로 빨려 들어갈지 모르겠다”는 말까지 나온다. 위안화를 국제 결제통화로 만들자면 더 많은 금을 보유해야 한다.
◇금 사모으기 열품에 빠진 중국
중국이 금 사재기에 나선 사실은 세계금협회(WGC, World Gold Council)의 보고서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중국 관영매체가 전하는 WGC의 ‘2분기 황금수요추세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각국 중앙은행은 9년 만에 처음으로 금 매입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각국 중앙은행은 지난 2분기에 14t의 금을 순매입했다. 금 매입 규모가 이처럼 늘어나기는 2000년 이후 처음이다. 세계금융위기에 따른 외환위기가 진정되면서 그동안 내다판 금을 다시 사들이고 있다는 뜻을 내포한 흐름이다.
그러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이런 흐름은 중국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중국, 홍콩, 마카오, 대만을 포함한 중화권의 금 수요는 지난 2분기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 정도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중국의 금 수요는 11%나 늘어난 89.6t에 달했다. 중국인민은행을 중심으로 사들인 금은 지난 1분기 16.1t에 이어 2분기에는 17.1t에 이르렀다. 2분기의 금 매입 규모는 지난해보다 47%나 늘어난 양이다.
중국 전문가들은 “중앙은행과 국영기업이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일반 장식용 금의 형태로 금을 사들일 수 있는 만큼 중국 정부의 금 매입량은 통계상 드러난 것보다 훨씬 많을 수 있다”고 말했다.
◇꿈틀거리는 중국의 ‘금 전쟁’
중국의 금 사재기는 미래를 위한 대비의 성격이 짙다. 한국에서도 인기를 끈 <화폐전쟁>의 저자 쑹훙빙(송홍병, 宋鴻兵)은 “실물에 기반하지 않는 화폐는 붕괴한다”며 금 보유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청두(成都)상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가진 총부채는 2008년 이후 57조 달러나 늘어났으며 연 이자율을 6%라고 가정하면 40년 뒤 미국의 총부채액은 586조달 러에 이르게 된다”고 말했다. 갚기 힘든 빚을 짊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국내의 한 중국전문가는 “경제흐름에는 여러 요인이 개입되는 만큼 미국의 경제미래를 쑹훙빙처럼 단정짓기는 힘들다”며 “그러나 그의 말에서 중국이 금 매입에 나서는 배경을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달러화의 가치 하락에 대비, 금을 사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 위안화의 힘을 키우겠다는 야심도 배경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정부의 금 보유액은 지난 3월 말 현재 1054t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반해 미국은 중국보다 7.7배나 많은 8133t에 이르는 금을 보유하고 있다. 금 보유량으로 따지면 미국은 황새요, 중국은 뱁새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 중국 전문가는 “위안화를 국제결제통화로 만들기에 안간힘을 쓰는 중국이 금 매집을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 세계적 흐름에 뒤처진 한국의 ‘금 보유량’
금값 강세는 안전자산 선호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부터의 초강세 흐름은, 미국경제의 추락과 이에 따른 달러 가치의 추가 하락 가능성 때문이라고 시장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이런 분석을 반영하듯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의 금 보유 비중은 조금씩 늘고 있다.
세계 최대 금 보유국인 미국은 지난해 말 현재 8133.5t을 보유하고 있다. 2000년 말 8136.9t에 견줘 3.4t 감소했지만 같은 기간 외환 보유액내 비중은 55.9%에서 76.5%로 높아졌다. 유럽 국가들의 외화 자산내 금 비중도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반면 이런 국제시장의 흐름과는 동떨어진 한국의 금 보유 실태다.
한국은 경제 규모에 견줘 매우 작은 규모의 금을 보유하고 있다. 국제 시세에 맞춰 늘리는 움직임도 찾아볼 수 없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국제통화기금에 보고하는 자료를 바탕으로 세계금위원회(WGC)가 추산한 바로는, 2008년 12월 현재 한국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금은 14.3t이다. 외환 보유액의 0.1% 수준이며, 몇 해째 제자리걸음이다. 보유량으로는 세계 55위(국제기구 포함)이고, 외환 보유액내 비중은 금 보유를 보고한 106곳 가운데 100위권으로 최하위 수준이다.
한은의 금 보유량은 아시아 국가인 대만(422.4t) 필리핀(138.1t), 싱가포르(127.4t), 타이(84t), 인도네시아(73.1t), 말레이시아(36.4t)에도 못미친다.
한은의 이런 금 보유 실태는 요즘 금융권에서 자주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미국 달러화의 세계 기축통화 지위가 점차 무너지고 있는데, 너무 안이하게 대응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금값은 변동성이 크고, 경제위기 때 금값이 오르지만 위기는 100년 가운데 몇 년이기 때문에 이때를 대비해 금 보유량을 늘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의 대규모 금 보유는 금본위제의 산물일 뿐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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