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환율이 오르게 되면 수출은 잘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지만 고환율이 장기화되면 수입물가가 오르게 된다. 또 환율이 과도하게 오를 경우 이를 방어하기 위해 정부가 보유 외환을 풀 경우 외환보유액 축소로 이어져 국가신용도가 떨어지는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올해에도 정부가 인위적으로 수출경기 상승을 유지하기 위해 고환율을 유지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내년에도 이 같은 우려는 여전히 진행형이 될 공산이 커졌다.
◆조선수주 걸림돌, 경상흑자 축소 전망
정부는 이른바 거시건전성부담금이라는 이름으로 '은행세(Bank levy)'를 도입하겠다고 한 배경을 서구 선진국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9일 은행세 도입방안을 발표하면서 은행세 도입 국가로 프랑스·독일·스웨덴·영국 등 주요 서구 선진국들을 꼽았다.
그러나 정작 환율전쟁의 주역인 미국이나 중국, 일본 등도 아직 도입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한국이 왜 이렇게 서둘러 관련 제도를 마련했는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주요 20개국(G20) 의장국으로서 갖는 일종의 의무감 때문이라는 해석마저 내놓고 있다. 은행세가 기금 형태로 부과되기 때문에 이중과세 협약에서 자유롭다고 하지만 외국인들의 국채·통안채 투자에 대해서도 이자 및 법인세를 물릴 계획이어서 각국과의 이중과세 논란이 식지 않고 있다.
더욱이 형평성 차원에서 국내 은행채 투자에도 이자 및 양도소득세를 물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정부의 외자규제 방침이 확고한 상황에서 은행들의 선물환 헤지 수요로 조달되는 단기외채 규모는 현격히 줄어들 수 있다. 이는 곧 조선사들의 자금부담으로 이어져 경상수지 흑자에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그렇지 않아도 내년 경제운용방향에서는 경상수지 흑자 한도가 150억 달러 가량으로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환율상승→수출증가라는 이분법이 적용될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환율방어 노골화되나
정부는 지금껏 외환시장에서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경우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을 통해 외환시장에 개입해 왔다.
20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한때 20원 이상 폭등했지만 장 막판 변동폭을 줄일 수 있었던 것도 외환당국의 힘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외개방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수출증대를 위해 고환율 정책이 실효성이 있지만 내년 최대의 경제정책 과제로 떠오른 물가에는 부담이 높아질 수 있다.
정부가 환율급변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 개입이 잦아들 수 있다는 전망도 이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천안함 사태에 이은 북의 연평도 도발로 국내 외환시장에 불안감이 증폭돼 있는 상황이다. 지금이야 안정을 되찾고 있지만 남북간 긴장이 상당기간 지속될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오석태 SC제일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정부의 외자규제 의지가 너무 확고해 말하기가 부담스럽다"면서도 "외국은행의 국내지점(외은지점)들의 영업이 갈수록 힘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무감만으로 국익 담보될까
이번 외자규제 조치는 지난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신흥국에 과도한 외자가 들어올 경우 규제할 수 있다는 합의사항을 실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외환보유액 기준으로 세계 5위 수준인 우리 경제가 한단계 도약하려면 금융시장 개방도를 더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자본시장통합법 개정으로 국제금융거래의 선진화를 추구해 오던 정책이 이번 규제로 퇴색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시티 글로벌 국채지수(WGBI) 편입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허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국제금융팀장은 "금융시장 개방도를 선진화해야 한다는 명분이 외자규제 조치로 바랠 수 있다"며 "가급적 외환시장 개입을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주경제 김선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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