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답답해진 건 현대건설이다. 내심 현대차그룹과의 협상이 시작하길 바라면서도 피인수 대상인 만큼 공식 의견도 내지 못한 채 지켜보고 있다. 현대건설의 한 관계자는 “애초에 (시비가 생길 일 없도록) 공정하게 심사했다면 이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 대로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매각이 장기 표류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게 그의 우려다.
사실 어느 쪽에 인수되야 현대건설 쪽에 유리한 지는 처음부터 자명했다. 바로 지난달 탈락한 현대자동차그룹이다. 이 그룹은 기아차, 한보철강 등을 차례로 인수한 지 10년 만에 유력 기업으로 키워놓은 전례가 있다. “그룹의 미래 3대 축을 자동차-철강-건설로 하겠다”며 2020년까지 10조원을 투자, 수주 120조원, 매출 55조원의 청사진을 내놓은 것도 이 그룹이다. 이 목표는 지난 2007년 기준 6~7배나 높은 것.
반면 처음부터 감정적 호소로 나선 현대그룹은 지금까지 이번 인수전을 ‘다윗과 골리앗’에 비유하며 시간끌기에 나서고 있다. 채권단의 거듭된 자료 요청을 거부해 놓고 법정에 선 이제서야 추가 자금확보 방안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당초 규정대로라면 브리지론 혹은 그와 유사한 단기 자금은 국내법상 허용되지 않는 방식이다. 현대차그룹 대변인이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도핑을 한 ‘벤 존슨’에 비유한 것도 이 까닭이다. 채권단 역시 “애초에 알았다면 순위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쯤 되면 현대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후 “현대건설에 2020년까지 2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말한 것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현대차의 두 배다. 현대그룹이 당장 인수금액 1조~2조원 마련에도 잡음이 나고 있는 실정에 이후의 투자금은 어떻게 마련하려 했을까.
업계는 채권단의 지체없는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법원 결정을 존중해야 할 필요는 있지만, 사실상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또다시 현대그룹에 부적격 판정을 내린 후 처음부터 매각 절차를 밟는 건 국가적인 손실이다. 이번 매각 절차에서의 잡음의 제 1 책임은 어디까지나 채권단에 있다. 자신이 벌려놓은 일은 자신이 수습해야 하는 게 도리다.
때마침 2차 심리가 열리던 24일 현대그룹은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에 대한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범 현대가의 현대중공업, KCC 등은 여기에 참여하지 않아, 지분률이 현 33.78%에서 2%포인트 이상 떨어진 31.53%으로 줄 전망이다. 범 현대가가 현대그룹의 경영권에 관심이 없다는 걸 확인한 셈이다. 이로써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 여부와 무관하게 경영권을 가질 수 있게 됐다. 모두가 ‘윈-윈’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남은 건 채권단의 빠른 결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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