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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2월, 새천년을 며칠 앞둔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 기자는 서 있었다.
기자는 자신이 목격한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며칠후, 기자는 중국어 수업을 하던 도중 나간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은 선생님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연수를 온 사람들은 ‘파룬궁’에 대해 떠들었다. 심지어 어떤 이는 ‘무서운 사람’과 공부를 한 탓에 중국에서 추방될까 불안해 했다.
사람들은 ‘민주화 운동가’와 ‘파룬궁’을 구분지어 생각하고 있었다.
1989년 6월4일, 중국 베이징 심장인 천안문광장은 민주화를 갈망하다 의문의 심장마비로 숨진 정치인 후아오방 추모 시위로 뜨거웠다.
훗날 6.4 천안문 사태는 피의 광장으로 기억됐다. 정치개혁 이상이 심각한 좌절을 겪게 되고 정치적 논의의 기반이 철저하게 제한됐다.
2011년 2월, 중동 민주화 사태에 이어 천안문 광장에서 도보로 5분 거리인 왕푸징거리에서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다.
이들은 10년 전의 힘없고 조용한 시위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외신들을 통해 조국을 위해 무언가를 이야기 하려했다.
왕푸징은 후진타오 중국국가 주석을 비롯한 중국 당정 최고 지도부의 거주지인 중난하에서 약 2km가 떨어진 곳이다.
사슬은 많은 고리들로 이뤄져 있다. 똑같은 모양의 고리들이 이어졌지만 하나라도 끊어지면 사슬 전체가 무력해진다.
중국 정부가 우려했던 중국인들의 시도는 시작됐다. 여러 악재를 안고 있는 중국의 고리가 사슬 밖으로 떨어져 나갈 위험이 다분하다.
중국 붕괴 여파는 북한까지 이어질 것이다. 경제·이념적 지주가 무너진다면 북의 위험천만 도발은 불 보듯 뻔하다.
바로 지금, 우리 외교는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민주화 바람을 의식해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를 좀 더 점검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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