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한 근육질 몸매에 날렵한 동작으로 실감나는 액션 장면을 대역 없이 직접 소화하는 전쯔단은 또 다른 중화권 스타 리롄제(李連杰)와 쌍벽을 겨루는 무술연기의 달인이다. 전쯔단, 리롄제 모두 1963년생으로 나이도 같다.
▲ 무예와 음악을 사랑한 남자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서 태어난 전쯔단은 2살 때 가족과 함께 홍콩으로 갔다가 1974년 미국 보스톤으로 이주했다.
그의 모친 마이바오찬(麥寶嬋)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태극권 '고수'로, 중국 전통우슈 연구기관으로 잘 알려진 '중국우슈연구소'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무술가인 어머니를 둔 덕에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순간부터 태극권을 비롯한 중국 전통 우슈 기술을 익힐 수 있었던 전쯔단에게 있어 음악은 삶에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또 다른 안식처였다.
보스톤의 차이나타운에서 그의 취미는 역시 일억만리 떨어진 고국의 쿵푸 영화를 구해보는 일이었다.전쯔단은 특히 리샤오룽의 자유롭고 세련된 동작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아들의 천부적인 재능을 엿본 전쯔단의 어머니는 아들을 1978년베이징 스차하이(什刹海) 체육운동학교에 입학시킨다. 그리고 2년여간 홍콩에서 생활한 뒤 82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미국 현지 우슈대회에서 우승컵을 거머쥐며 국내외 우슈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 스타 제작자의 탄생
홍콩을 거쳐 미국으로 돌아가던 길에서 전쯔단은 지인의 소개로 당시 최고의 감독이었던 위안허핑(袁和平)과 만나게 된다. 신예 쿵푸스타를 찾고 있던 위안허핑에게 전쯔단의 등장은 커다란 수확이었다. 그리고 위안 감독과의 만남으로 전쯔단 또한 스크린에 데뷔하며 본격적으로 은막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1990년대 쿵푸영화가 침체기에 빠지게 된 이후 전쯔단은 다시 홍콩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영화 홍희관과 TV 드라마판 정무문이 크게 히트를 치면서 전쯔단은 전성기를 맡게 되었다. 특히 리샤오룽과 청룽, 리롄제 최고의 스타들이 한번씩 연기했던 정무문의 진진(陳眞)을 훌륭하게 소화하며 팬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자리잡았다.
"관중의 감정을 이끌어낼 수 없다면 그것은 실패한 것이다"
1997년 영화 전랑전설(戰狼傳說)을 시작으로 전쯔단은 영화 및 드라마 제작에 뛰어들었다. 특히 그의 처녀작인 전랑전설은 제작비가 50만 달러도 안되는 저비용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제작자로 참여한 두 번째 영화 메신저(殺殺人, 跳跳舞)가 흥행한 뒤에는 연기자로서 뿐만아니라 제작자로서도 호평을 받았다. 이 작품으로 1998년과 1999년 일본영화제와 제 5회 홍콩영화평론학회대상에서 최고 감독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이후 1999년에는 독일의 베를린으로 날아가 드라마 '대호:미주표(Codename:Puma.The pilot)'의 무술감독으로 참여했다.
2010년 국무원 신문판공실이 시작한 국가이미지 시리즈 홍보물 제작에 참여하면서 '중국국가이미지홍보대사(中國國家形象宣傳人)'로 선정된바 있다.
토론토 미스차이나 1위이자 홍콩 모델 출신의 왕스스(汪詩詩)와 2008년 결혼해 슬하에 1남1녀를 두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